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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로 걷기 Dec 11. 2023

모스크바의 봄이 오면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업무와 교육 등으로 30여 개국 넘는 나라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나라는 역시 러시아가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 누구를, 무엇을 위한 전쟁인지 명분도 없이 국제적으로 고립되어가는 러시아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제가 러시아를 방문한 것은 지난 2016년 6월이었는데 그때쯤부터 러시아가 잘못 끼운 첫 단추로 인해 자꾸 빠져나오기 힘든 수렁으로 향하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정치도 외교도 이념도 잘 모르지만 당시 제가 그곳에서 보고 느꼈던 단편적인 것들을 리마인드 해 이곳에 옮겨 봅니다.


아래 사진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공식일정을 마친 어느 저녁,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과 함께 러시아 최고의 발레 및 오페라 공연 극장인 마린스키 극장에서 발레 '지젤'을 관람하고 커튼콜을 받은 지젤 역 발레리나와 알브레히트 역 발레리노를 찍은 사진입니다. 저의 최애 사진 중 하나이고 그동안 제가 찍은 사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생 사진입니다. 2막에서 하얀 드레스를 입은 지젤이 ghost가 되어 출연합니다. 무대 앞쪽에서 관람을 하며 특별한 조작 없이 스마트폰으로 찍었는데 마치 투명한 모습의 천사처럼 보여 신비한 사진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러시아가 떠올라 함께 포스트 해 봅니다.


                                                      마린스키 극장에서 지젤공연 후 커튼콜     

                                                           …………………………………………………………


러시아 방문을 통해 어느 나라이건 역사는 승자의 전리품이고 진실은 패자의 무덤 속에 영원히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는 평소의 의구심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한편으로 역사적 사실 등은 보는 이의 입장과 시각에 따라서도 많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그간 미국 중심으로 설명된 세계사를 접하며 살던 저희 세대가 알지 못했던, 어쩌면 잘못 알고 있었던 러시아의 굴곡진 역사들과 예술 등을 깊이 있지는 않지만 잠깐 동안이나마 접하게 되고 그로 인해 여러 가지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 이번 여행의 큰 의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러시아에 머무는 기간 내내 냉전시대 한 축을 담당하던 나라였던 대국 러시아가 최근 많은 어려움에 있다는 걸 여러 곳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침 러시아에 도착한 날 호텔 로비에서 러시아의 격투기 영웅 표도르의 복귀전이 생중계로 펼쳐지고 있었는데 상대는 표도르의 명성에 비하면 대적할 만한 상대가 아닌 브라질 선수였음에도 1라운드에 표도르는 상대의 펀치에 거의 실신 직전까지 몰리는 졸전을 펼치고 2, 3라운드에도 만회를 위해 헛손질만을 날리며 경기가 끝났습니다.


어린아이가 보아도 분명한 상대의 승리가 예상되었지만 결과는 표도르의 승리였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각본에 짜인 대로 레퍼리에 의해 승리의 손이 올려지는 표도르의 표정은 승리를 얻고 그간 쌓아온 가장 중요한 명예를 잃어가는 안타까운 모습이었고, 마치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승리를 거두었지만 서방의 경제제재 시작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된 당시의 러시아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듯싶었습니다.


러시아를 방문하기 전후로 공부하며 그리고 단지 며칠 동안 머물면서 듣고 알게 된 러시아의 역사, 문화 및 예술 등에 숨겨진 진실은 알 수 없겠지만 그간 너무 다른 시각에서 러시아를 바라보았던 제가 알게 된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러시아는 그 면적만큼이나 대국이고 곳곳에 그 크기만큼이나 아름다움을 간직한 나라라는 사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러시아에서의 첫 번째 감동은 백야로 인해 늦은 밤이 아니면 볼 수 없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야경을 접하면서부터 시작했습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차를 타고 도착한 상트 역에서 다시 버스로 이동하면 늦은 시각 처음으로 맞이한 상트는 화려한 조명의 옷을 입고 도시 전체가 거대 박물관 같은 웅장함과 화려함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1703년 표트르 1세가 유럽 각국의 유명 건축가들 도움을 받아 건설하였다는 계획도시이며, 200여 년 동안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다는 상트...


그러나 보이는 모습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도시의 아름다움을 지켜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세계 제2차대전 시 상트는 일명 “레닌그라드 봉쇄”라고 불리며 독일군에 의해 봉쇄가 되었는데 당시 이 아름다운 도시를 지키기 위해 대부분이 민병대로 구성된 시민들이 배고픔과 추위를 견뎌내며 무려 900일 동안 1백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내고 상트를 지켜냈다고 합니다.


또한 상트의 외곽에 있는 러시아의 베르사유궁전으로 불리는 여름궁전도 2차대전 중 급박한 전쟁 상황 속에서도 예술품을 지키기 위해 호박방 등 궁전의 유물 등을 뜯어서 후방으로 이동시키거나 땅에 파묻어 많은 유물을 보존할 수 있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러시아 여행을 통해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많은 예술 대작들이 비극 속에서 탄생되었다는 명제입니다. 러시아에서 부분적으로 접하게 된 건축물, 문학, 미술, 음악 및 발레 등의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보며 이러한 대작들은 죽음, 아픔 및 고통 등을 양분으로 먹어야 피어날 수 있는 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건축물의 경우를 보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러시아 건축의 기념비적 성당, 양파 모양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308점의 모자이크 벽화로 만들어진 내부 벽화로 유명한 ‘그리스도의 부활 사원(피의 사원)’이 있습니다. 농노해방을 실시한 알렉산더 2세가 그곳에서 폭탄 테러에 의해 암살을 당하고 이를 추모하기 위해 건축되었는데 그러한 사건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붉은 광장에 우뚝 서있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건축물의 하나로 분류되는 성 바실리 성당은 잔혹한 황제 이반 4세가 카잔 왕국을 몰아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습니다. 그런데 현존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의 하나로 남을 수 있던 것은 황제 이반이 건축가 야코블레프가 외국으로부터 사원 설계 요청을 받자 다시는 같은 모양의 건물을 짓지 않게 하기 위해 그의 눈알을 뽑았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만일 그가 유사한 건물을 여러 개 설계했다면 그 아름다움은 희소성이 없어 퇴색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문학작품에서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문호인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아내 나탈리아를 탐하는 프랑스군 장교인 단테스로부터 사랑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대결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푸쉬킨이 대결에서 패하고 총상을 입은 채 3일 동안 죽음 직전 쓴 시라고 합니다. 만약 이러한 사건이 없었다면 그리 아름다운 시가 탄생했을까요?


또한 도스토옙스키의 경우도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에 빠진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쾌락주의자였으며 급기야 정치적 사건에 휩싸여 사형대에 오르며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섭니다. 그러나 극적으로 사형은 면하고 시베리아에서 강제 노역을 하며 탄생시킨 소설이 ‘죄와 벌’이라고 합니다. 만일 도스토옙스키가 이러한 일련의 시련들을 겪지 않았다면 과연 '죄와 벌'이라는 대작이 탄생했을까요?


미술작품 중에서는 에카테리나 여제에 의해 수집되어 에르미따쥐 박물관에 전시된 네덜란드 출신 렘브란트의 진품 “돌아온 탕자”룰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부와 명예와 아름다운 아내까지 가지고 있던 렘브란트가 사랑하는 아내 사스키아를 잃고 곧 그녀와 함께 부와 명성도 잃게 되면서 자신의 고독한 상태를 관통하는 작품을 그립니다. 이것이 세계 3대 미술관의 하나인 에르미따쥐를 대표하는 작품인 ‘돌아온 탕자’입니다. 이 또한 만약 작가가 아내와 모든 것을 잃고 슬픔과 고통의 상황에 빠지지 않았다면 탄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음악에서도 러시아의 슬픈 전통가요인 까마귀는 전장에서 죽어가는 군인이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며 주위를 맴도는 까마귀에게 자신의 육신은 뜯어 먹혀도 정신은 영광스럽게 하느님께 간다라는 슬픈 독백을 노래로 만들었다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 영화 모래시계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던 ‘백학’이라는 명곡은 2차대전에서 죽어간 수많은 체젠 유목민 전사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배경으로 지어진 노래라고 합니다. 만약 비극적인 전쟁이 없었다면 국적에 관계없이 심금을 울리는 이러한 곡들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상 여행 기간 동안 알게 된 단편적이고 얄팍한 지식으로 살펴본 러시아의 예술작품 등의 탄생 배경 등을 보면서 비약이겠지만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예상치 못한 사건과 불편들이 멋진 예술작품처럼 가끔은 우리에게 오래 기억될 추억 등을 만들어 주기 위한 우연이 아닌 필연의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러시아 방문 중에도 이러한 일들이 몇 번 있었던 것 같습니다. 출발일에 환승 항공이 결항하는 바람에 예정에 없이 독일의 허름한 호텔에서 1박을 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그간 유럽 방문 경유지로 잠시 동안 머물기만 했던 프랑크푸르트의 구시가를 구석구석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상트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가 연착되어 일정이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했지만 그 대신에 당초 일정에도 없었던 러시아 여행의 백미, 모스크바강 유람선을 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모스크바강 유람선에서 보는 모스크바 야경은 그간 어떤 나라에서 경험했던 것보다 아름다운 광경이었고 더구나 그걸 직접 영상에 담아 남길 수 있게 되어 더욱 뜻깊은 추억으로 남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러시아인들은 남에게 약해 보이고 우스워 보이기 싫어 낯선 사람들에게는 웃지 않는다 합니다. 늘 강해 보이고 싶어 하는 그들이 꿈꾸는 제국의 영광이 다시 돌아올지 모르겠지만 영문도 모르고 희생되었거나 되고 있는 수많은 누군가의 남편, 아빠 그리고 자식들을 생각하며 ‘백학’이라는 러시아 민속 가요를 되뇌어보고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을 것 같은 소중한 배움과 추억들을 마무리해 봅니다.


다음 동영상은 모스크바 강 유람선에서 직접 야경을 찍은 동영상인데 촬영내내 백학이라는 노래와 가사에서 나오는 장면인 전쟁에서 고향을 그리며 죽어가던 병사들을 생각하였습니다.(화면에 백학의 가사를 삽입해 보았습니다.)

모스크바의 야경

마지막으로 러시아를 방문하는 동안 여러 사람들로부터 러시아는 한번 발을 들이면 꼭 다시 오게 되는 나라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 말을 믿고 싶고, 언젠가 모스크바의 봄이 오면 다시 한번 그곳을 방문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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