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5일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책을 연이어 읽고 있다. <영웅의 여정>에 이어 책 <신화의 힘> 마지막장 '8장 영원의 가면'을 읽는 중이다. 조셉 캠밸은 학계의 이단아라고 불리어질 정도로 대담한 신화론을 펼쳤다. 그는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신화를 연구했다. 종교계와 학계는 캠벨의 이론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를 오랫동안 가져왔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이론보다 인류와 인간의 본질을 깊숙이 꿰뚫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책에서 그는 설명할 수 없는 세계 너머에 있는 것들과 논리나 이론으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를 신화를 빌어 구술해 나간다. <신화의 힘>은 캠벨과 모이어스의 대담으로 엮여 있다. 켐벨은 모이어스와의 대화에서 '모든 종교는 하나의 근원적인 신화에 이른다.' '역사 속의 교황은 탐욕스러운 권력자였고, 교황이라는 위치는 신과의 가교 역할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라는 거침없는 의견을 펼친다.
20세기 초반에 태어난 그는 컬럼비아 대학과 유럽의 여러 대학에서 공부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학업을 이어 가거나 생계를 위한 일자리를 찾았지만 세계 대공황 시대에 직면했고, 캠벨은 이를 계기로 5년 동안 책만을 읽었다.
그의 대담집에서 그는 아무것도 안 하고 책만 읽는 시간을 통해 삶의 정수 같은 것을 희미하게 알게 되었고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캠벨은 세러 로렌스 대학 문학부에서 38년 동안 교편을 잡으며 신화에 대한 방대한 연구를 하고 관련 책을 펴낸다. 인류의 역사는 신화의 역사였고, 종교는 신화 속의 정수를 차용해 그들만의 것으로 만들어 나갔다고 덤덤히 구술한다. 여러 종교들은 놀라울 정도로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수십 권의 저서를 통해 서술해 나간다.
캠벨에 따르면 신화의 역할은 명확하다. 신화는 개개인 역시 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실제의 세계에서 열어놓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예를 드는 것이 영웅의 탄생과 그의 여정이다.
영웅은 신화에도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라는 것. 개인의 삶 안쪽 깊숙한 곳에는 영웅의 알이 부화 전의 상태로 품어져 있다. 그 알이 언젠가 깨어난다. 그리고 신화가 될 수 있는 여정은 가슴이 알려 준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다 현세에서 신화나 영웅이 될 수 있다.
어느 날 울림을 듣고 영웅의 길을 따라 떠날 수 있다면. 시련을 겪고 극복하는 여정을 겪어 나갈 수 있다면. 만일 그럴 수 있다면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하나의 신화가 된다. 많이 알거나 잘 모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자체로 그 되어감 자체로 여정에서 깨달음을 얻고, 희열을 얻고, 실패하고, 성공한다는 것이다.
그 여정은 구속된 상태나 강제된 상태에서 해 나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가지고 하는 것들이 아니며 그들만의 소명을 찾아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소명은 천명과 같은 울림으로 가슴이 틀림없이 알려 준다.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지고 이기는 것은 상관이 없다. 승자일 수도 있고 패자 일 수도 있다. 영웅의 길을 떠난 사람들. 신화가 되려는 사람들은 그 모험과 실패와 성공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여정에서 신을 본다.
신은 하나의 에너지다. 그 힘은 우리의 삶에 충만한 에너지가 되어 계승된다. 인류의 삶에 충만한 에너지가 된다. 신은 일종의 초월이고 투명한 것이다. 없음으로 꽉 찬 모든 것이다. 그것이 종교가 되어 사람을 그 너머의 세계로 이끈다. 신은 에너지를 사람에게 돌려준다. 최초의 종교는 죽음을 인지하기 시작한 인류의 조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무덤에 사람을 묻고 제를 행했다.
동물은 죽음을 인지 못한다. 인류는 죽음을 알고 싶어 했다. 죽음을 인지하며 저 너머의 세계를 궁금해했고, 이에 대한 해답이나 목소리를 구했다. 그렇게 제의가 시작되었고 종교가 세계 곳곳에서 생겨났다. 어떤 이의 삶은 죽음을 넘어 신화가 되었다. 부처와 예수의 삶은 신화의 궁극적 형태 중 하나인데 수많은 그 전의 이야기들-신화가 차용된 사례가 부처와 예수의 삶 곳곳에 보인다. 혹은 놀랄 만한 우연으로 겹치는 것이다. 그들의 삶 하나하나 신성과 신화를 닮아 있기에 겹쳐질 수밖에 없다. 캠벨은 부처와 예수의 이야기를 신화에 겹쳐 놓는다. 2600년 전에 왕자로 태어난 사람과 성모에게서 태어난 사람의 신화와 종교를 교차시킨다.
철학, 예술, 심리학, 역사등 다방면을 언급하며 캠벨은 신화의 세계로 나아간다. 그가 지금 살아 있다면 신의 가면 시리즈 외에도 계속해서 저술을 해나갔을 것이다. 신화와 인류의 여정과 삶의 본질을 탐험해 나갔을 것이다. 엄청나게 방대한 자료를 이용해 그에 따른 서술을 그만의 시선으로 풀어냈을 것이다. 나는 신화와 종교와 인류를 바라보는 그의 절대적으로 깊은 세계를 먼발치에서 보았다. 하나의 공연으로 친다면 맨 끝 관람석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무대의 공연이 끝날 때까지 곧 끝날 것을 알아차리면서 언제까지나 이어지길 바라는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캠벨이 말하는 일화 하나하나는 짧게는 수백 년에서 길게는 수천 년 동안 각색된 신의 이야기이다. 모든 것은 하나로 이어진다고 했다. 하나로 이어진 원이라고 했다. 그의 모든 저술은 저편을 향하는 신들과 영웅들의 이야기다.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세계로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옆의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곧 나의 이야기 이기도 하다.
자신의 인생에 자신의 신화가 되는 것보다 벅찬 일이 있을까. 가슴이 대답하고 알려 준다는 간단하면서도 묵직한 울림. 투명한 저 너머의 것에 우리는 누구나 도달할 수 있고 각자가 바라는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준다. 천일 야화처럼 들려준다. 예술이나 본질에 관련된 것은 일반적인 것을 뚫고 난 후의 모습이다.
예술과 본질은 최상의 것, 극단의 것들을 보여준다. 그래서 설레기도 하지만 닿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사랑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같은 감정을 남긴다. 하지만 신화가 되는 것은 과정이고 생 자체다. 여정은 길게 느껴지지만 다다르면 짧다. 언젠가 우리 역시 여정의 끝에 서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글과 이야기를 얼마 전부터 쓰기 시작했지만 실제 링에 올라가기에 연습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이지 않는 스파링 상대가 끊임없이 무형의 잽을 날려온다. 때론 스스로 스텝이 엉켜 넘어진다. 시계를 들여다본다. 저 멀리 흰 타월이 보인다. 때론 던져 버리고 싶다. 뭔가를 만들고 표현하기에 시간과 연습이 턱없이 부족하다. 프로 작가는커녕 아마추어 작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때 <영웅의 여정>과 <신화의 힘>을 읽었다. 좋은 책은 울림을 준다. 캠벨은 신화라던지 영웅의 여정은 저편 너머에 가는 길을 보여줄 뿐이라고 말했다. 본인도 그 시간 안에 들어가 연습하고 시도하고, 시도하고, 시도할 뿐이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모든 저술은 자신이 가르쳤던 학생들과의 공동 저술이고 그들에게 책을 빚졌다고 언제나 겸손하게 말했다. 캠벨은 자신이 아는 분야에 대해서, 깨달은 바에 대해서, 연결이 확실한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너만의 신화가 돼라"라고.
그러기에 흰 타월을 보지 않고 시간 안에 하는 일을 쌓아 간다.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간다. 다시 체력을 쌓는다. 연습량을 늘리고 잽을 맞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난다. 넘어지고 일어나는 주기를 줄여 나간다. 조금씩 조금씩 덩어리였던 것이 형체가 만들어진다. 다시 실패를 하지만 전보다는 일어나는 속도가 빠르다. 신화가 나를 본다. 나도 저편 너머를 어렴풋하게 느낀다. 아직 가보지 못한 세계로 한발 한발 다시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