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에곤실레

2024년 12월 12일

by Taehun R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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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 전시에 다녀왔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모처럼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천천히 그림 한 점 한 점을 들여다 보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레오폴트미술관과 협력하여 19세기 말 비엔나에서 변화를 꿈꿨던 예술가들의 활동의 일부를 전시하고 있었다. 세기말 새로운 예술의 자유를 표현하고자 했던 구스타프 클림트와 동료들이 창립한 비엔나 분리파의 작품들이었다. 회화, 드로잉, 포스터, 사진, 공예품 등 유명 그림도 포함되어 있었다.

줄을 서서 천천히 들어갔다. 평일임에도 고속도로의 상습 정체 구간처럼 그림 한 점 한 점을 보기위해 사람들이 브레이크를 밟으며 천천히 나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어느 정도 스킵할 그림은 스킵하자는 마음으로 조금 멀리 떨어져서, 어떤 작품은 그림에 돋보기처럼 다가가기도 하면서 감상해 나갔다.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선 꽤 오래 시간을 들여 그림 앞에 서서 그림의 세세한 부분들을 마음 속에 담아냈다. 백 여년 전 화가의 시대와 화가의 생각과 화가가 표현한 한점 한 점의 의미와 색감을 느껴 보았다.


어떤 장면, 어떤 질감과 디테일은 조금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날카롭게 표현한 크로키가 눈에 담긴다. 그림의 배경 설명이 인상 깊었던 작품들.


클림트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보는 즐거움이 생긴다. 그림 중 어떤 작품들은 그의 최고가 되고, 어떤 작품들은 그의 노멀한 작품이 되었다. 최고의 작품에는 그가 감각하고 표현한 깊은 어떤것이 담긴다. 그것을 정확하게 무어라 표현하긴 쉽진 않지만 그만의 신성, 신화, 사랑과 삶을 관통하는 본질일 것이다.


그 본질적인 것을 조금이라도 감지하고 내 속 어딘가에 담아낸다. 이 포인트가 예술을 보는 즐거움이다. 책을 읽고 언젠가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책의 세부적인 내용을 기억하기 힘든 것처럼,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가슴속 어딘가에 담아내도 언젠가 이 그림의 이미지와 현장감은 기억속에서 희미해질 시간이 올 것이다. 그럼에도 그림을 보는 이 순간 작품이 나와 연결되는 삶의 이미지와 생각들은 그 시간 자체로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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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에곤 실레의 자화상들을 본다. 독특한 시선의 구도다. 그가 바라 보는 세계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자화상은 하나의 세계이며 철학이며 생각이며 이상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 같기도 하며 아래에서 위로 보는 느낌도 든다. '내가 보는 세계를 볼 수 있겠어?'라는 다소 당찬 시선.


천재 예술가 였던 에곤 실레의 그림들은, 특히 이번에 전시된 그림들은 대부분 이십대 후반의 그림들이다. 에곤 실레는 스페인 독감으로 운명했다. 하지만 그가 그렸던 자화상과 여성들과 크로키는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이 되었다. 그의 사후부터 계속되는 그의 전시를 에곤 실레는 알지 못할 것이다. 사후 시대에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알게 된다면 제법 뿌듯한 생각을 가질지도 모른다.


팔짱을 끼고, 자신이 보았던 세계를 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차분히 눈을 반짝이고 있을 에곤 실레를 전시장의 한 구석에서 생각해 본다. 그의 자화상에는 현 시대 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모던한 감각이 있다. 에곤 실레는 모던함이라는 그 시대의 현대적인 감각으로 시대를 앞서 갔다. 백년이 흐른 지금에도 모던한 감각이다. 또 백년이 흐른 뒤에는 클래식 음악처럼 예술계의 클래식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에곤 실레는 어떤 것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 자신과 세계 사이에서. 그의 시선에 중간 지대는 없어 보인다. 시선은 그림을 보는 관람객의 심장을 향한다. 그의 모습은 머릿속 세계에서만 구동하지 않는다. 그 시선은 아무도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볼 수 없었던 세계를 그 혼자 보고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 준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세계를 다녀온 사람의 시선. 그리고 그 색채의 춤. 색은 가볍기도 무겁기도 하다. 눈발에 흩날리는 장미꽃과 같은 색감이다. 너무 하얗지도 너무 빨갛지도 않은 흩날리는 색 들이다. 따뜻하거나 차갑지 않지많 명료한 세계다.


그의 눈은 우주를 보는 창이다. 그의 눈속은 지구이며 그의 눈 밖은 탐험되지 않은 세계다. 개개인은 각각의 우주다. 나라는 존재가 없다면 우주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보고 있는 장면은 소수의 사람 들에게만 허락되지는게 아닐까? 나와 같은 예술적 감각이 평범한 사람들이 경험할 수 없는 세계.


어떤 이들에게는 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일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를 감각하기 위한 여정에 나설 것이다. 그만의 길을 찾을 것이고, 그만의 스타일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그만의 우주와 그만의 철학과 그만의 세상이 열리게 될 것이다. 어느 순간 문을 열면 알려지지 않는 세계가 펼쳐지는 것처럼.


태어나서 죽음으로 향하는 인생의 여정에 화가가 자화상을 그리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주요한 이유의 한 축을 이루는 부분. 그것은 삶의 유한함에서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가는 인생의 그것과 같아 보인다. 인생이라는 항해와 삶의 의미와 본질 찾기. 하나의 끝맺음으로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우리의 인생은 수만편의 에피소드가 있는 하나 하나의 이야기가 모인 것이다.


그림 역시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이며 에피소드며 희극이며 비극이다. 자화상은 그 이야기의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 이야기를 보여준다. 가장 근원적인 부분을 숨겨 놓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 마음에 드는 그림을 천천히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세부적으로도 붓칠하나하나도 살펴본다.


거기에는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가끔 나의 인생과 조우한다. 어떤 한 접점에서 메모리의 한부분을 건드린다. 나는 그림을 보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음악이 귀에 들어와 나에게 좋으면 좋듯 그저 이 그림이 모던 그림이던 난해한 추상을 담아내는 그림이던 내 감각의 어떤 부분을 건드리면 그것으로 의미있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흐름을 알고 역사를 알고 스타일을 알고 화가를 알고 주제를 알면 더 좋겠지만 그것이 예술 감상의 필요 충분 조건은 아니다. 백사장에 펼쳐진 수많은 자갈돌 속에서 나와 조우하고 선택된 자갈돌이 있듯 그림도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발견은 그것 자체로 계기가 된다. 사랑으로 건네진 조약돌처럼 그림으로 건네진 화가의 마음은 소중한 하나의 따뜻함도 된다. 내게 그림을 보는 것은 그런 것이다. 에곤 실레의 자화상에서 나를 보고 오는 것. 그리고 과거와 현재, 이윽고 미래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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