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6일
토크빌이 살았던 시대는 자유보다 평등에 무게 중심을 두는 생각이 아직 완전히 인정받지는 못하던 때였다. 토크빌이 첫 번째로 지적한 것은 '다수'혹은 '여론'이라는 독재 역시 다른 형태의 독재만큼이나 폭력적이라는 것이었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한 개인의 사고에 가해지는 다수의 정신적 압박"으로, 시민들의 "행동의 자유"에 대해 민족이나 집단정신이 가하는 압박으로 풀이될 수 있을 것이다.
몽상의 가능성.
느림과 인내의 실천이라는 측면.
속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일종의 트랜스 상태. 예상치 못한 풍경의 갑작스런 출현을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그 나른하면서도 환히 깨어 있는 의식 상태 속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측면도 있다.
비행기 여행이 시간과 거리를 파괴하고, 어떤 과정을 거친건지도 모르게 우리를 곧장 도착지점으로 데려다주는 여행이라면, 그리고 기차라는 것이 프루스트의 말마따나 어떤 노력이나 단계적 변화 없이 파리에서 피렌체 혹은 어느 다른 곳까지 요술처럼 우리를 옮겨주는 '마술적'수단이라면, 이 여행, 자동차로 떠나는 이 길고도 아늑한 여행, 시간과 공간상의 어떤 우연한 사건들과도 맞닥뜨릴수 있는 이 여행은 여행자로 하여금 풍경들과 얼굴들의 유한성과 결합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의 양식인, 유한의 양식을 체험하게 한다.
어디 그뿐인가. 여행자에게 장소들의 중력과 거리에 대한 감각을 되돌려주고, 곧바로 마주치게 되는 광막함에 대한 감각 역시 되돌려주고, 수평선처럼 다가갈수록 저 태평양까지 자꾸만 달아나는 어느 경계를 좇아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사막들이며 산들, 사람이 살기도 하고 살지 않기도 하는 평야들, 거대한 도시들, 임시 촌락들, 다시 나타나는 사막, 인디언 보호구역, 국립공원 등을 차례로 거치고, 그리하여 오늘날의 현대식 여행 양식에서는 그저 하나의 불가능한 추억으로 밖에 존재하지 않는 자유의 맛을 물리도록 흠씬 맛보게 하는 이 자동차 여행은 미국의 건국 신화들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까지 덤으로 제공해주는 장점이 있다. 약속의 땅이자 사람들의 발길을 거부해온 땅, 탈주선들, 가물거리는 수평선들, '태평양의 벽', '아메리칸 드림'등 수세기에 걸쳐 사람들이 저마다 아메리카를 발견하면서 맛보았던 그 통과의례 같은 체험의 향기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이 세상 유일의 땅에 대한 기억 말이다.
우발적인 사건, 별 의미 없는 사소한 사고, 이제는 미국의 도로가 그저 미친 듯이 '계속 가야 하는' 장소가 되었음을 일러준 어느 경찰, 흔히 보게 되는 장소의 기이한 낯섦.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삶의 한 장면,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일상의 들것"이라 불렀던 어느 초라한 시골장터들과 마주친 날도 있었다.
반유대주의를 신봉하는 인디언 추장을 만나고, 어쩌다 대통령이 된 어린아이 같은 선동 정치가를 만났고, 장차 대통령이 될지도 모를 여성을 만나고, 정치인처럼 말을 하는 헐리우드 스타, 자신을 인디언으로 여기는 작가,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영화감독, 낮은 목소리로 바에서 자신의 저주받은 처지를 노래하던 웨이트리스, 실업계의거물, 뉴올리언스의 백인소수자, 임박한 대홍수를 예고한 루이지애나의 기자, 복음주의 광신도, 모르몬교회의 엄격한 고위 책임자 등등 아메리카라는 이 웅장한 희극의 주인공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여간해서는 막을 내릴 것 같지 않은, 영구히 계속될 이 거대한 스펙터클의 화려한 주인공들을 만난 날들도 있었다.
그밖에, 그저 무와 대면한 날도 있었다. 어떤 느낌, 어떤 인상, 분홍빛 하늘에 떠 있는 등불처럼 시애틀의 하늘위에 치솟아 있던 어느 마천루의 환영, 서배너의 친근한 유령들, 샌디에이고에서 만난 젊은 여인의 그 꿈결 같은 관능, 끝없이 이어지는 로스엔젤레스 고속도로의 불빛, 죽음의 계곡 언저리에 둥지를 튼 어느 시골 유곽에서 나눈 대화, 금을 찾아 나선 어느 광부의 망령, 흔적 없이 사라져 거의 찾을 수 없게 된,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마음으로 찾으러 다녔던 피츠제럴드나 헤밍웨이의 망령, 뉴올리언스에서 들었던 재즈 한 곡, 플로리다의 태풍, 시민권을 위해 투쟁하던 때를 추억하며 눈시울을 붉히던 버밍엄의 어느 목사, 멤피스에서 옆 교회까지 떠들썩하게 울려 퍼지던 어느 성가대의 소란스런 합창, 쓰다 만 문장 한 토막, 해독되지 않은 기호 하나...... 기적적이거나, 심술궂거나, 또 때로는 행복의 순간들 같았던 이 모든 아무것도 아닌 것들, 그저 내가 말로 포착하고자 했고, 덕분에 이번 여행의 또 다른 보상이 되어준 것들과 마주친 날들도 있었다.
길이 있어 사람들이 다니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다녀서 길이 만들어지는 것일까? '율리시즈'에서 레오폴드 블룸은 디덜러스에게 그렇게 물었다. 어떻든 이 책은 길이 만들었다. 미국의 초상이라는 불가능한 작업을 해나가는 방법이 되어준 것은 바로 길이다. 이제 가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