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바통을 이어

2025년 10월 21일

by Taehun Roh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이후 밤 아홉시 라디오의 한 채널에서 한강 작가 특집을 한적이 있다. 거기 나온 패널들은 부러우면서도 안쓰럽다는 뉘앙스를 담아 말했다. 그토록 고생한 작가의 시간이 상으로 보답 받았다고. 그런 고통스런 글쓰기는 자신들은 할 수 없다고. 그때 나는 작가의 책을 읽을 리스트에 올려 두었다. 틀림없이 그곳엔 아름다운 문장이 있고, 서사가 있고, 삶을 꿰뚫는 본질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선명한 아픔과 보이지 않는 어둠의 분위기를 감지했다. 그후로 시간이 1년 정도 흘렀다.


내가 보는 일간지 신문의 금요일 부록에는 책과 사람들에 관련된 특별 매거진이 매주 실린다. 좋아하는 피디나 작가가 글을 기고하기도 한다. 매거진의 헤드기사는 매번 새롭고 볼것도 많아 기사를 읽으며 출근하는 금요일 아침이 즐겁기까지 하다. 얼마전 금요일의 기사에 실린 기고문에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가 언급되었다. 작가가 책을 쓰는 내내 눈물을 멈출수가 없었다는 말과 함께. 정확히는 세네줄을 쓰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다잡으면서 썼다는 집필과정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일년전 라디오에 들었던 밤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시간은 늘 우연을 동반하며 때론 운명적으로 다가온다. 세상에 펼쳐진 수많은 책들 중에 한 책과 조우하는 것도 운명적 만남이라 생각된다.


책. 한 작가의 정제된 정신과 영혼이 담긴 이야기와 지식. 실랄하고 냉소적이며 폭력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작가도 때론 있지만 대부분의 작가는 따뜻하고 친절하게 손과 심장의 온기를 부드럽게 건낸다. 지혜를 깨닫고 성취한 이야기나 본인이 생을 걸고 습득한 지식을 때로는 메타포적으로 때로는 정보 그 자체로 전달한다. 한사람의 지성과 인생의 폭 넓은 광역대를 한권의 책에 담는데, 이 책에는 수천년의 인류의 지혜에도 빚이 있다. 온기와 지성을 읽는 독자들은 현실에서 보이지 않는 작가와 마주한다. 책을 매개로. 현재라는 각자의 상황에서 문장을 받아들이고 상상하며 정신을 구동시키기 시작한다.


내겐 친형 같은 형이 있다. 2012년 여름에 인연을 쌓아고 만날때마다 우리를 둘러싼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판다. 얼마전 라디오와 신문 이야기를 하며 한강 작가의 책을 읽어야 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다음날 올림픽공원의 테니스장에 책을 세권 들고 나타났다. 책들의 제목을 한번 보고 그의 얼굴을 응시하고 다시 책을 보았다. <소년이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세권의 책. '소년이 오면 작별하지 않는다' 라고 나는 속으로 속삭여 보았다. 그리고 연달아 '소녀가 오면 작별하지 않는다' 라고도.


그렇게 <소년이 온다>를 마주했다. 215라는 숫자가 마지막 페이지인 소설이다. 긴 호흡의 양은 아닌데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한다. 내안의 유년시절과 조우되는 사건들도 있다. 그 시절 물을 데워 했던 세수. 어른들의 목소리. 조금더 가까웠던 너와 나의 거리. 한강 작가는 일리아드, 오딧세이 처럼 책에 등장하는 인물의 주변부를 묘사하며 생명력을 준다. 주인공들 각각의 삶, 가정과 소중하게 경험했던 추억을 아픔과 교차 시킨다. 그러다 그날이 온다. 그날 전후로 모든 것은 변한다. 동호는 소년의 이름이다. 엄마는 자신의 삶이 끝날 때까지 동호를 그리워한다. 동호내 집에 세들어 사는 오누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누나는 주경야독을 했다. 밤에 들어와 차가운 물에 남은 밥을 말아먹고, 아무리 힘들어도 동생의 이마를 쓰다듬거나 이불을 덮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평화롭게 사는 그들에게 그날이 왔다. 그날은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 금기였다.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변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과 그 시대에 어둠과 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이 생겨 버렸다. 그들은 삶이라는 궤적에서 그날에 희생된 사람들을 짊어지고 기억에 깊이 담고 살아왔다. 아픔에 대동소이가 있다고 하지만 어둠에는 깊이가 없다. 어둠을 똑바로 응시하고 심장의 박동을 조율하며 주먹에 힘을 주는 용기를 내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인류가 인류로 살아온 가장 숭고한 가치가 그 힘에 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론 그 숭고한 가치는 힘을 발휘하지 못할때는 잠시 어둠을 뒤로한채 다음시대로 바톤을 넘겨준다. 아무도 모르게. 광명이 밝아올때쯤 그 피가 베여진 바통이 다시 넘겨지고 씻겨져 힘차게 살아내고 있음을.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나치를 경험한 독일인들이 한강 작가를 좋아한다는 말은 의미 심장하다. 시적 초혼을 넘어 인간의 근원에 다가가는 한강작가를 늘 응원한다. 그리고 나직히 한 소년의 이름을 소리없는 장소에서 다시 불러본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뜨거움을 안겨주는 소년의 이름을.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다는 걸 증명한거야."


"나라면 너처럼 숨지 않았을거야." 그녀는 또박또박 말했다. "나 자신을 지키는 일로 남은 인생을 흘려보내진 않았을 거란 말이야."


"네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 속에 넣어놨다이. 낮이나 밤이나 텅 빈 집이지마는 아무도 찾아올 일 없는 새벽에, 하얀 습자지로 여러번 접어 싸놓은 네 얼굴을 펼쳐본다이.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 동호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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