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키니안 스킴-웨스앤더슨

2025년 6월 14일

by Taehun Roh

페니키안 스킴 (The Phoenician Scheme)

기억은 스틸 컷이고, 누군가의 웃음이고, 눈물과 같은 감정들이며 미소다 - 기억속 나와 타인을 기억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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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꿈 그리고 인생은 어딘가에서 연결되고 맞닿아 있다. 조금 과장하면 기억은 영화의 스틸컷과 같다. 스틸컷은 누군가의 웃음이고 눈물이다. 분노이자 아름다운 미소다. 그렇다면 기억은 나와 소중한 사람이 존재하는 나만의 장소다. 영화는 그 시공간을 응축하여 표현된 매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각자의 인생이 영화처럼 전개될 때가 있다. 빠르고 느리게. 인생에서 잊혀지고 지워진 것들이 갑자기 이유없이 부상 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며 배경이 바뀌기도 하고, 아무 이유없는 고뇌와 고통이 시작된다.

우리는 행복한 순간을 붙잡기 위해 한없이 그것을 향해 가기도 하는데, 때론 그것을 간단히 명명하기 힘들다. 손에 닿지 않는 세상. 삶에서 겪었던 이미지, 영화같은 장면, 꿈 같은 기쁨처럼 인생에 선명하게 기억되는 장면들.


그 장면에서 누군가를 기약없이 기다리기도 하고 간절히 원했던 사람이 사라 지기도 한다. 너무나 보고싶은 사람을 이생에서 절대 볼수 없는 상황속을 마주하기도 한다. 부재와 떠오름, 상실과 만남이 혼재된다.


시간의 카오스. 시간의 질량을 인생에서 무겁게 겪어내었다고 해서 그 삶이 무겁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꿈과 영화라고 해서 짧고 가볍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 <페니키안 스킴, The Phoenician Scheme>에는 볼거리가 많다. 우디 앨런 영화 스타일의 현대 버전 같은 웨스 앤더슨 감독은 그만의 가지고 있는 영화에 대한 해석을 스크린에 확장시킨다다. 신작 <페니키안 스킴>은 웨스 앤더슨만이 가지는 철학의 확장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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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유명한 전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파스텔톤 색감과 완벽한 대칭, 미니어처 세트를 기억하고 좋아했던 관객은 이번 영화에서도 그 특유의 미장센을 오프닝 장면부터 볼 수 있다. 전작이 동화적 이면서도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 냈다면, 이번 영화는 유쾌하고 흥미진진한 두 주연 배우의 표정 연기가 압권이다. 화면을 넘어 관객을 보는 듯한 눈 빛 그리고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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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키안 스킴> 주연배우 미아 트리플턴(여주인공)과 베니치오 델 토로(남주인공)의 앙상블의 움직임과 카메라가 담고 있는 배경을 교차해서 따라가다 보면 그들의 움직임이 연기인지 실제인지 모를 만큼 몰입된다. 그밖에 명성 가득한 조연역을 하는 배우들(톰 행크스, 빌 머레이, 베네딕트 컴배비치, 스칼렛 요한슨 등) 역시 미니멀한 감정 표현과 절제된 대사를 선보인다. 정상급 배우들의 미묘한 표정연기와 깊은 눈빛을 보는 재미도 가득하다.


영화다운 미장센이 가득한 화면안에서 이 영화는 비현실의 경계에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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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영화 같은 장면우여 곡절끝에 영화는 클라이막스로 향한다. 인생도 언제나 클라이막스를 향한다. 죽음이 오기 전까지.


미아 트리플턴은 겉으론 단단하고 무심해 보이지만, 카메라가 클로즈업 되면서 미세한 표정 변화를 선보이며 복잡한 내면과 성장의 갈등을 섬세하게 전달한다. 베니치오 델 토로는 명성답게 무표정한 얼굴과 느릿한 시선 처리로, 말보다 눈빛 그리고 표정의 여백 속에 인물의 고독과 인생과 영화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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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딸둘 사이의 레드카펫. 둘의 기호. 둘의 복장. 둘의 기묘한 분위기. 피는 물보다 진한가?


감독은 영화속 기묘한 정서와 분위기를 우리 마음속에 안착 시키는 것에 성공한다. 가족이라는 의미, 사람과의 만남이 가지는 의미 속 서사와 철학적 깊이는 어느 순간 우리 안에 작은 폭풍을 일으킨다. 갈등이 고조되고 해결되는 과정의 다양한 변주가 곳곳에 흐른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인간 심리의 복잡성과 내면의 갈등을 디테일한 설명 없이, 섬세한 장치없이 보여준다. 주인공은 여섯 번의 비행기 추락 사고를 겪는다. 적들이 자신을 노리는 불확실한 세계에서 자신의 삶과 관계를 재정립 하려는 시도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의 초반 그는 수녀 수련 중인 딸과 만나게 되는데 무려 십수년 만이다. 부녀 관계에서 십년 이상 떨어진 시간은 어떤 시간일까.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가상의 국가 '페니키아'라는 영화 속 시공간 안에서, 보고 있는 나와 보여지는 나의 현실의 세계는 과연 영화를 다보고 나면 선명 해질까 흐릿 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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