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5일
서울 코엑스에서 성황리에 개최된 키아프를 방문했다. 국제 미술전으로 자리잡은 키아프는 아카데미 영화제나 칸느영화제처럼 대중들에게 키아프라는 단어가 일상 곁에 있음을 보여 준 전시로 거듭나고 있다. 2002년 부산에서 최초로 시작해 2003년부터 COEX로 장소를 옮겨와 매년 전시하고 있는데 올해도 8만명 이상 방문 기록을 세웠다. 2025년 키아프에서 거래된 미술작품의 총액만 천억이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되며 방문 규모나 자본을 넘어 영화나 음악 시장과 같은 한국의 위상처럼 한국 미술계가 세계적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 전시로, 특히 신진 작가들의 예술적 감각과 상상력,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가 별처럼 빛났다.
▲조각안고 있는 건.
▲서가와 욕조옷을입은채 풍덩
키아프는 국제 아트 페어의 일환으로 역사적 최초 미술대전은 1667년 파리에서 시작 되었다. 프랑스의 아케이드와 발달과 함께 성장한 아트 페어는 일종의 종합적인 공개 전시다.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한 공간에 모아 보여주는 형태로, 아트페어로 가장 유명한 전시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아트 바젤'이다. 아트 바젤은 세계적인 현대미술 시장의 최정점을 보여주며, 명성있는 컬렉터들이 메이저리그의 스카우터처럼 작품들을 살피는 세계의 내노라하는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최정상급 무대다.
▲윤관선으로 그려진 그림소녀
유럽 예술계의 흐름이 황혼기에 근접 했다면 상대적으로 한국 예술계는 이제 막 해가뜨는 벨 에포크-좋은시절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한국 미술가들의 진출 소식이 런던-파리-뉴욕등에서 들리며 더 나아가 세계무대에서 초대되고 각광받고 있다. 작가의 시간이라는 긴 터널을 통과해 표현된 작품은 세상이라는 무대에 막을 올리기까지 수많은 실패와 고민이 담겨있다. 한 예술가의 탄생된 작품은 보통 특정 갤러리에서 보여지기 마련이지만, 일년에 한번 있는 키아프 같은 아트 페어 에서는 다양한 화풍을 선 보이는 수많은 신진 작가의 수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장소로서도 의미가 있다. 미술작가들과 셀러와 바이어, 관람객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관람의 장이자 축제의 장이다.
▲해피니스바다에서
전시관 한쪽에서 여덟아홉살 정도로 보이는 머리를 뒤로 단아하게 묶은 여자 아이가 잭슨폴록 스타일의 물감이 흩뿌려진 그림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엄마, 여기." 인파가 많아 모녀의 대화가 거의 들리지 않지만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올라온다. 아이는 그림과 엄마 얼굴을 번갈아 교차시키며 자신이 살펴본 부분을 이야기한다. 엄마에게는 그림을 보는 아이가 한평생 바라보는 예술작품일 것이고 어떤 삶을 살아도, 어떤 화풍을 보여줘도 응원할 것이다. 그림과 미술에 대한 이런저런 것이 교차하는 사이, 젊은 부부처럼 보이는 커플도 한 그림의 같은 곳을 바라 보고 있다. 손을 맞잡은 그들은 시간이라는 한정된 것을 뚫고 추억의 공간을 창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좋은 그림은 기억에 사진을 찍는 효과가 있다.
▲개인적인 선호귀엽고 밝은 그림은 미소를 일으킨다. ⓒ 노태헌 관련사진보기
폐막일 오후 키아프에 붉은 스티커(팔린 그림)가 꽤 많은 작품에 마킹되어 있다. 몇 시간 후면 그림은 벽에서 조심스럽게 때어져 미지에의 세계로 가게 될 운명이다. 그림을 하나라도 더 눈에 담으려는 분주한 관람객들 사이로 한 여성이 녹색 풍경이 배경인 그림 앞에 오랫동안 서있다. 그녀의 눈빛이 온화 해진다. 화면의 녹색 물결이 회색으로 스며드는 장소를 깊은 눈길로 담아낸다. 신비한 녹색과 흰색의 결이다. 지나가는 몇 사람들도 궁금해졌는지 그녀의 옆에서 작품을 바라본다. 작품을 깊게 보는 자의 눈은 신비롭다. 무언가가 발화될 준비-입밖으로 표현될 준비를 하는 모습이다. 한껏 호기심을 담은 신비로운 눈동자의 조리개가 위치를 계속해서 바꾼다. 그리고 한 발짝 물러나고 두발짝 앞으로 나아간다. 다채롭게 표현된 녹색 풍경이 바다인지 하늘인지 꿈속 어딘가 이국인지 상상의 저변을 자극한다. 보는 행위는 사고나 언어보다 늘 먼저 일어난다. 관찰자는 그림속으로 빠져들고 침묵하고 말보다 먼저 감각이 떠오른다.
▲녹색과 흰색의 물결한 여성이 이 그림 앞에 오래 서있으니, 다른 관람자들이 연달아 그림 앞에 서서 그림을 바라본다.
갤러리마다 작품에 대한 부연 설명이 없는 것은 키아프의 아쉬운 부분이다. 대부분 작가, 제목, 제작년도가 작품의 오른쪽 하단 구석에 흰색 바탕의 종이에 작은 글씨체로 스티커처럼 붙어있다. 그림에 집중하라는 의도 일수도 있을것이고, 미술을 잘아는 관람객들이 대부분이라 그럴수도 있겠지만 수많은 미술작품, 특히 난해한 포스트 모던 이후의 추상 예술과 같은 작품은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작가 라던지 그림에 대한 장황한 서술식 코멘트까진 아니더라도 그림과 함께 곁들이는 짧은 설명 이라던지 작가에 대한 간단한 필모를 기재해주면 좋겠다. 개인적 견해일수 있지만 8만명이 넘는 관객들이 짧은시간에 무수히 많은 그림과 작가의 이름만 보고 마음으로 조우한 작품을 기억하기에는 한계가 있기에 조금더 친절한 설명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외국에서 참가한 갤러리에서 가져온 그림몬드리안과 로스코의 어느 사이 지점
일상에서 볼 수 없는 그림의 향연이 매년 키아프에서 펼쳐진다. 바다와 같은 전시장에서 그림이라는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와 각자의 내면에 말을 건다. 우리는 작품 앞에 마주 서서 보여지고 있는 그림 앞에 서있는 자신을 보기도 한다. 어떤 그림은 내면에 무언가를 불러 일으킨다. 어떤 그림은 계기를 만든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감정에 대한 솔직한 표현을 대체적으로 아끼는데, 때론 감격스러운 그 무엇을 그림에서 느꼈다면 글로 적는게 도움도 되니 한번 시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내 감정은 소리와 표현으로 나아가지 않고 내면에 묻어두고 발화할때를 기다리곤 한다. 우내 사회에서 그런 점을 에티켓 같은 것으로 배워왔다. 그러나 그림은 예술작품은 그런 자아에게 말을 건다. 하고 싶은 것을 해도 괜찮다고. 표현하는 것이 살아있는 것이라고.
▲창가의 사람쓸쓸함. 회환. 추억. 파도와 바람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