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4일
베르그송은 지성이 (마치 영사기가 돌아가기 시작할 때 이미 영화의 결말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미래를 현재 속에 말아 넣음으로써 시간과 자유를 부인했다고 비난했다. (……) 과학자들은 체험된 시간을 측정할 수 있으며, 그렇게 측정된 시간의 간격을 비교하여 변화의 법칙을 도출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틀렸다. 자신의 생을 부채처럼 펼쳐서 한눈에 다 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오류인 것처럼.
실제 우리의 생은 시간에 있어서 매우 상이하게 펼쳐진다. 베르그송은 이를 <창조적 진화> 도입부에서 이렇게 표현하였다. “내가 만일 설탕물 한 잔을 준비하고 싶다면 어쨌거나 설탕이 녹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사소한 사실의 중요성은 실로 엄청나다.” 내가 줄곧 기다려야 하는 그 시간은 수학적으로 측정 가능한 간격과는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그 간격은 측정이 이루어지기에 앞서 이미 완성되어 있으며 따라서 내가 살아내야 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체험하는 시간은 ‘나의 마음 졸임’과 합치한다.” 그 기다림이야말로 체험된 시간의 본질을 이루고 나의 자유를 보장한다. 기다림이 없다면 미래는 기지(旣知)의 것처럼 펼쳐질 수 있고 우리는 결정론에 갇히고 만다. 과학은 법칙을 발견하고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지만, 인간의 경험은 시간 속에서 사건들이 불확정적으로 연쇄되어 가는 것이다.
- 스티븐 컨, 박성관 역,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