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8일
여기저기 마음이 있었다. 그 흘러 다님 속에 본질이 무엇일지 생각한다. 좋아하는 것, 잘할수 있는 것. 자본이라는 것도 흘러다닌다. 그것도 하나의 마음일 수 있을까. 아니면 유혹인가. '여기 이런것이 있어. 좋은 것이야. 다들 이걸 좋아해.' 내가 좋아하는 것은 원래 좋아했던 것이었을까. 관계. 마주하고 있진 않지만 영향을 미치는 그 사람의 실루엣. 여기저기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 속에 나도 통과하고 그도 그녀도 통과한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장대함 속에 각자의 의미 찾기. 투명한 안대를 투과하는것이 빛인지 어둠인지 그리움인지 의문이 든다. "하루에 좋은 것을 채워 넣어요."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시간을 채우는 것은 무엇일까.
하루키 잡문집에서
.. 나는 지금도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조용했던 그 흑인 병사를 자주 떠올린다. 멀리 떨어져 고국을 그리며 카운터 한쪽 구석에서 소리 죽여 흐느껴 울던 남자의 모습을. 그 앞에서 조용히 녹아들던 온더록의 얼음을. 그리고 멀리 떠나간 그를 위해 빌리 홀리데이를 들으러 왔던 여성을. 그녀의 레인코트 냄새를.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젊고 필요 이상으로 내성적이며, 그런 주제에 두려워할 줄 몰랐던 나 자신을. 그러면서 누군가가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적절한 말이라곤 도무지 찾아내지 못하는, 거의 속수무책이었던 나 자신을.
"재즈란 어떤 음악인가요?"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이런게 바로 재즈지"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 재즈란 그런 존재다. 꽤나 긴 정의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재즈라는 음악에 대해 이보다 더 유효한 정의는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