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주유소에서

단편선

by Taehun Roh

얼마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었다. 막상 회사를 그만두니 시간이 뒤섞여 버렸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어렸을 적부터 좋던 싫던 가야할 곳이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과 마음으로 서로에 대해 무신경 하면서도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나역시 그런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 보고 무언가를 이야기 한다. 그리고 한편으론 그것이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오랫동안 이어지다 보니 내안에 무언가가 끊어지고 있었다. 소중한 것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 끊어짐을 연결시키고 소중한 것을 찾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막상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하루가 혼돈으로 가득 찼다. 가야할 곳도 만날 사람도 살아가야 이유 같은 것도 부유했다가 사라지는 일들이 계속 되었다. 한가지 이유가 더 있지만 그것은 나중에 말하려 한다. 그리고 밤에 잠이 오지 않기 시작했다. 밤을 새는 날들이 이어졌다. 뜬 눈으로 밤을 새는것은 생각이란 것을 동반하기에 힘든 일이다. 그리고 이 생각은 주로 좋지 않은 생각이나 쓸데 없는 생각의 파도로 한번 밀려들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한밤에 주유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검은색 세단 차량을 타고 온 한 커플이 차안에서 실랑이를 벌이다 급기야 여성이 차 밖으로 뛰어나와 주유소 사무실로 들어왔다. 여성은 한쪽에 있는 간이 소파에 팔짱을 끼고 앉더니 물을 달라고 했다. 당돌한 기운에 물을 가져다 주었다. 남성은 차안에서 창문을 내리고 이쪽 편을 잠시 보더니 질렸다는 표정으로 한참을 응시했다. 한밤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 표정까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차를 출발 시키지도 그렇다고 주유를 요구하지도 않고 가만히 이쪽을 응시하는 것을 보니 그런 느낌이 들었다. 몇분이 지나고 남자는 차를 그대로 출발 시켜 밤의 적막 속으로 사라졌다. 한밤의 주유소 사무실과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으로 그녀는 그 자리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갑자기 몇대의 차가 들어와 주유를 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자세와 표정의 변화없이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녀는 첫눈에 보아도 무척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차들이 빠져 나가고 정막이 흘렀을때 그녀는 단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랑했던 남자 였어요.”

그리고 침묵이 잠깐 이어졌다. 시간은 한밤의 도로에 움직이는 차가 거의 없어질 만큼 흘러가고 있었고 밤의 어둠은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그 사람과 저는 한 직장에서 만났어요. 첫 눈에 호감이 드는 그런 남자였습니다. 지금은 냉정한 사람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더 없이 친절한 남자였어요. 저의 말에 No라고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 직장에 있던 바깥에 있던 어떤 일이 있던 제 말을 기억하고 들어 주었어요. 늘 함께 했고 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둘이 있으면 단 한번도 지루한 적이 없었어요. 우리는 늘 붙어 있었고 늘 함께 했죠.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세상에는 우리둘만 있었답니다. 배경은 사라졌어요. 눈을 감을때도 눈을 뜰때로 서로로 가득했어요. 저만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우리는 미래를 꿈꿨죠.”


평소 같으면 ‘택시를 불러 드릴까요’ 라던지 소리치는 소장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가셔야 합니다’ 라는 말을 했을 터이지만 새벽이 가까워지는 시간 이었고, 이 시간에 낯선 사람이 말을 건네는 경우는 드문일에다 아름다운 여성이 한밤의 주유소에서 본인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신기했기때문에, 정확히는 미인이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를 나누는 회사를 그만두고 처음 있는 일이어서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들키지 않을 정도로만 거리를 두고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와는 반년만에 만났어요. 저는 해외에서 살아가고 그는 이제 이곳에 있죠. 세상은 둘의 세계와 그 바깥 이었던 적이 있었는데 언젠가 부터 그 경계가 희미해져 갔어요. 우리는 서로를 간절히 사랑했던 시기가 있었죠. ”

건네 준 작은 생수통의 물이 1/3정도 비어갔다. 그녀는 명화의 눈을 가진 여성이었다. 갸름한 얼굴에 가지런히 한쪽으로 정리된 머리결도 인상적이었다. 투명 하리만큼 정갈한 브라우스에 검은색 치마와 연녹색 카디건을 걸치고 살색이 비치는 검은색 스타킹에 에나멜 빛이 띄는 검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나 역시 주유원치고 정갈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검은색 진에 검은 티셔츠를 입고 하얀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묘하게 그녀의 옷과 매치를 이루는 것처럼 내겐 느껴졌다. 그건 그렇고 그녀는 왜 지금 이 시간에 여기에 앉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나는 얼마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었다. 다들 재미없는 얼굴에 재미없는 이야기와 그저 그런 것들을 미래로 삼고 있었다. 실제 이미 그들은 그런 인생의 나선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자격증이 어떻고, 취업한 친구는 어떻고, 직장을 못 구한 사람은 어떻고, 집은 어떻게 장만하고 등의 이야기가 주위에 흘러 다녔다. 그런 공간에 속해 있었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최대한 피하며 홀로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그저 그런 말과 삶이 화자 되지 않는 공간을 찾았다. 삼삼오오 같이 몰려 다니는 일들을 피했다. 나는 더이상 그런 세계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집으로 가실 수 있게 택시를 불러 드릴께요.”

새벽의 시간은 차가 없는 시간이고, 나는 보통 그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도록 해왔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그녀는 아름다웠고 내앞에 있는 그녀의 존재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녀가 일어나서 천천히 내게 다가와 내가 거동을 삼는 반경에 방해하지 않고 밤의 도로가 보이는 유리문 앞에 팔짱을 끼고 섰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에 말을 건네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정면으로 마주하기 힘든 아름다움 이었다.

“괜찮아요.”

“밤이 늦었습니다. 지금 시간에는 버스나 전철이 다니지 않아요. 어디쪽으로 가는지 알 수 있을까요. 택시를 불러드릴께요”

“한밤에 혼자 일하는게 무섭거나 외롭지 않나요?”

한결 누그러진 표정으로 그녀는 말을 건냈다.

“무엇이든 익숙해져요. 시간을 들이면. 그게 무엇이든.”

그러자 그녀는 조금 뜸을 들이고 나서 말했다.


“익숙하게 사랑을 해왔던 것 같아요. 사랑해서 같이 있는것인지, 같이 있어서 사랑 인건지 이제는 뒤바뀌어서 알수가 없어요. 더이상 솔직한 마음의 침묵을 견딜 수 없었어요. 그 차안에 그와 같이 있으면 소리를 지르고 평소에 하지 않는 행동을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차에서 내렸어요. 방해해서 미안해요. 곧 가볼께요.”


그녀에게는 현실적인 말의 울림이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솔직한 감정을 터놓고 있었다. 순서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문득 나의 이야기를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는 얼마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었어요. 사랑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하지만 하고 싶은 것고 하기 싫은 것에 대해서는 알아요. 다들 자신의 삶을 정당화 하고 있어요. 열심히 살아가다보면 원하는 것을 가지거나 할 수 있다구요. 그것이 진실일까요? 저는 사기 위해서 팔려야 됨을 느껴요. 팔기 위해선 사야 되는거 그런것이 싫었어요. 다들 합리화와 거짓을 말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역시 언제까지 싫다고 안 할수는 없죠. 그리고 지금도 밤에 잠도 오지 않아서 이렇게 일을 하고 있어요. 몸으로 느끼는 감각을 가지고 싶었어요. 두손으로 노동을 하고, 그 노동의 댓가로 살아가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차도 모를 정도의 속내의 말들이 육성으로 흘러 나왔다. 나는 말하는 동시에 스스로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름다운 그녀 앞에서. 그런 내말을 듣고 난 후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 거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밤의 정막으로 나아갔다. 에나멜 구두소리가 멀어져 갔다. 머뭇거림 없이 그녀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얀색 세단이 들어왔다. 다시 현실이 나를 부르고 있다. 잠시 꿈을 꾸었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문득 그 꿈을 잡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현실속에서. 그녀와 함께 있으니 꿈을 잡는 다는 현실이 도처에 펼쳐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도 있어도 될까요?” 그녀가 묻는다.

나는 너무 빨리 대답한다. “얼마든지 있어도 되요.” 시간은 새벽 한시를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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