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서

2025년 1월 5일

by Taehun Roh

한해 시작의 나날들이다. 비관하거나 낙관하지 않으려 해도 올해 작년과 같이 쉽지 않은 한해가 될 것 같은 생각 잠시. 경제적 번영과 물질적 풍요를 우선 가치로 삼아 왔던 우리 사회는 여러 분야에서 크고 작은 사건이나 불협화음이 많았다. 작년 가을 명상을 목적으로 여러곳을 찾아보다 우연 찮게 '템플스테이'(2024, 9/27~9/29)를 하게 되었다. 삶을 잠시 비껴서 보았던 시간을 소개해 보려 한다. 경험했던 명상과 수련의 시간에서 삶의 본질 찾기와 되돌아 봄의 시간이 내안에 어딘가 남아 힘이 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 세상을 살아가며 삶이라는 시간을 채운다. 그 시간은 좋기도 힘들기도 하다. 수많은 기억들과 함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라는 시간의 소용돌이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모두 평화와 안정이라는 균형을 이루는 삶을 바라지만 시련은 늘 예고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시련은 누군가 대신해서 겪어 내거나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해결 된다면 시련을 시련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힘든 시기를 살아내고 이겨내는 각자만의 방식이 있고 누구나 시련이 닥치면 그것을 극복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경험상 힘들때 고민과 생각은 생각을 잠식하게 만든다. 특히 경험의 어둠의 깊이가 깊을수록 헤쳐 나가기가 쉽지 않다. 뫼비우스의 띠 처럼, 시시포스의 돌 처럼 끊임없이 반복되고 이어진다.

석가모니는 이와 같은 고뇌와 스스로 만든 시련의 시간을 "두번째 화살" 이라 했다. 현명한 사람이든 보통 사람이든 살아가다 보면 시련에 부딪힌다. 보통 사람은 고뇌와 시련을 스스로 떠안고 경험의 포로가 되거나 집착하고 되내이지만, 현명한 사람은 시련에 집착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이겨낸다. 보통 사람은 두 번째 화살을 맞고 상처에 그것이 꽂힌 채로 살아가는 시간이 길고, 지혜로운 사람은 두 번째 화살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고뇌와 시련의 회복과 치유에 탄력적으로 대응 한다.

사찰에서 돌아봄의 시간을 선택 했을 때 깨달음까진 아니라하더라도 방향전환 정도는 할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봉은사니 접근성도 좋았다. 기간이 2박 3일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금요일 저녁에 입실하여 일요일 오전에 끝나는 프로그램이라 일정에도 큰 무리가 되지 않았다.

사찰의 시간은 명상과 수련, 비워냄과 무소유의 시간으로 구성 되어 있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종교적인 색채를 거의 느낄 수 없었다. 스스로의 삶의 뒤돌아봄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어떤식으로 바라보아야 할지 소중한것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 명상과 수련은 비우고 그 비움속에 일렁이는 따뜻함을 일으켰다.

첫째날 폰을 반납하고 입문한다. 세상과 연결됨을 끊어 버리니 허전하리 만큼 단절된 느낌이 생겼지만 이를 기꺼이 감내하고 지나간 삶에 불필요한 고민과 걱정을 비우고 삶의 본질을 찾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다.

둘째날, 사찰에서 의복을 입고 스님의 지도하에 명상, 참선, 백팔배, 포행등 수행과 정진에 들어갔다. 스님은 중간 중간 자신이 겪어온 세상과 따뜻한 인생의 지혜를 말해 주었다. 저녁에 모든 일정이 끝나고 차와 함께 스님의 인생과 입적한 계기, 그리고 공부와 수행을 담담히 말해 주었다. 참가한 사람들은 개인적 고민과 이야기를 하나씩 해나갔다. 스님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따뜻한 눈빛으로 이해한다는 모습을 보이기만 했는데도 고민이라는 딱딱한 덩어리가 점차 부드러워짐을 느꼈다.

셋째날, 새벽 네시에 일어나 불자들이 새벽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본다. 그 사이에 앉아 어떤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다 생명들에게 나만의 기도를 올려 보았고 경건하게 임한다. 이어지는 세속적인 질문. 들리나요? 아주 조금만 이라도 근접한 답을 들려주면 안될까요? 침묵.

마지막 백팔배에서 다섯번째 절을 하는 순간 내면에서 알수 없는 감정이 올라온다. 머리를 땅에 대는 행위. 사람이 지닐 수 있는 가장 낮은 자세. 간절한 마음. 반복되는 끊임없는 절의 연속 속에 정확히 그것을 무엇이라 표현 하긴 어렵지만 따뜻하고 가슴 벅찬 마음의 자세가 나를 부드럽게 감싸 준다.

사찰에 무엇을 찾으러 간 것일까? 비움을 원하면서 무언가를 찾고 채우려고 간 것이 아닐까? 비워내길 원했다면 도대체 무엇을 비우러 간 것일까? 내안의 이기심? 욕심? 하나하나 층층으로 이루어지는 시간의 사이와 여러 겹의 삶에 사건들. 좋은일만 있을수는 없는 일이다.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이어질 삶 속에서 지금 가지고 싶은 작은 해답을 말해본다. 마음의 평화.

나는 여태껏 현재의 대차대조표 만을 계산하고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였을까.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그때의 마음을 시작하는 한해에 되새긴다. 그리고 그 다정함과 따뜻한 에너지를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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