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넬리의 울게하소서를 요즘 종종 듣는다. 신이 위대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존재의 바깥의 영역에서 모든것에 초연하게 있다는 이 존재가 모든 생명에 조금씩 깃들여 있다면 우리에게도 발화되지 않은 신성이 있다는걸 조금씩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면에서 ‘울게하소서’ 라던지 투란도트에 나오는 ‘아무도 잠들지 말라’같은 음악은 그런 신성에 다가가고 근접하게 들리려는 목소리의 방향으로 보인다. 존재와 똑바로 마주서서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라고 분명히 이야기하는 것이 삶의 어떤 근원적인 부분이라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무수히 많이 퍼져있다. 지구상에 모래알처럼 퍼져있는 저 마지막 아이까지에게도.
따뜻하게 올라오는 개나리의 노란 신성을 느끼는 계절이다. 모순과 부조리를 뚫고 피어나는 생명의 신성함.
봄이다. 따뜻한 봄을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