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삶을 낙관하거나 비관하지 않는 이 문장은 사람의 존재를 균형 위에 놓인 하나의 순간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시어의 연결을 구사하는 시인 최승자의 자전적 산문집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은 시인이 바라보고 겪은 세상사 이야기로 가득하다. 책은 에세이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특정한 시기와 사건의 경험을 사유를 통해 재구성된 삶의 의미찾기로 보인다. 나는 이 에세이집을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받았는데, 시인의 시집 『빈 배처럼 텅 비어』를 지니고 다니던 나를 지켜보더니 이책을 건냈다. 일독 후 저녁 무렵 거리의 가로등이 한꺼번에 켜지는 것처럼 환하게 이 책의 소중함과 작가와 책을 줬던 사람의 따뜻함이 가슴속 어딘가에 베이게 되어 책을 소개해볼까 한다 .
1952년 충남 연기에서 태어나 고려대에서 독어독문학을 공부한 최승자 시인은 1979년 계간 『문학과지성』에 「이 시대의 사랑」 외 4편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했다. 시집 『이 시대의 사랑』(1981)을 시작으로 최근 시집 『빈 배처럼 텅 비어』(2016)까지 8편의 시집을 발표했다. 그녀는 아름다움의 서정성이나 여성성보다는 가부장제나 자본주의적 폭력의 감각을 "몸"의 언어로 대체하여 구사한다. 단순한 우울이나 부재의 감각을 넘어 사람의 존재나 삶의 의미를 끝까지 몰아붙인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을 생각나게 하는데 시어를 최대한 건조하고 뼈처럼 가다듬어 거친 감각을 드러낸다. 사라질 듯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존재를 계속해서 끌고 온다. 그러다 시인은 이천년대 이후 허무가 사라지지 않으면서도 생을 완전히 폐기하지 않겠다는 따뜻한 울림, 가능성의 열린 시각을 새롭게 보기이기도 한다. 절망의 바닥을 통과한 뒤 도달한 생의 끝자락에서 어둠을 뚫고 올라오는 빛의 감각처럼.
화려한 문단 활동보다 시 속에서 삶의 의미(역으로는 죽음의 의미)를 찾는 스타일을 지닌 작가의 초반기 시는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보다는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시 속 화자를 통해 어떤 지점에 천천히 멈춰서서 존재의 밑바닥에 고인 슬픔과 허무를 들여다보는데, 대상을 향해 상황에 맞는 단어나 표현을 찾아 수면 위로 슬픔을, 현실 위로 허무를 끌어올린다. 때론 절절함이 가득 담긴 시에 마음 한쪽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 칼날 같은 시어의 아름다움은 최승자 시인을 한국 최고의 시인이라는 칭호를 주기에 손색이 없다. 시인이나 소설가, 화가나 음악가로 대표되는 예술가들은 멀티태스킹이나 복잡함을 요구하는 현대의 직업과 달리 하나에 하나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책에서 시인은 에세이 형식으로 일기와 경험을 혼합시키는데 자기 미화나 꾸밈이 없고 잘쓴 에세이가 그렇듯 솔직함으로 무장한다. 인생의 각 시기에 겪었던 사건들은 그녀의 시에서 다뤘던 어둠과 죽음의 세계와는 다르게 일상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살아간다는 것은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마음이 수편의 글에 녹아있다.
에세이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는 1976년부터 1989년까지의 총 3부(1부-배고픔과 꿈, 2부-헤매는 꿈, 3부-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와 1995년부터 2013년까지의 이야기인 4부(모든 물은 사막에 닿아 죽는다)로 구성되어 있다. 젊었던 시인은 오로지 물욕만을 따라 외곬으로 뻗어가는 광기를 바라보며, 한밤에도 이를 갈며 깨어 일어나 미친 시대를 마주 보며 앉는다고 말한다. 배고픔 속에서 꿈을 찾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시작해야겠다고 결기한다. 사회나 세상은 자신을 향해 꼬박꼬박 받아야 할 이자가 있다고 말하지만, 자신은 충분히 빚을 갚았고 원금을 갚는 것은 불가해 보이는 광기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정말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사회나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도덕률의 강압적인 힘을 거부하고 브레이크를 일단 걸겠다고 선언한다. 따뜻함과 흐릿함을 기억하기 위한 인생의 추억들을 이야기하며, 소중했던 친구 맹희와의 학창 시절,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결과 자신은 죽음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시인에게 미래는 언제나 무(無)였고, 남아 있는 것은 언제나 밑도 끝도 없는 현재라는 수렁이었지만,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무차별적인 불행의 이상화 대신 굳고 단단한 어머니와의 추억, 따뜻했던 시간과 경험의 질량을 발판으로 파괴의 쾌락을 생산의 쾌락의 가능성으로 시선을 옮겨가겠다고, 적어도 노력은 해나갈 것이라 담담히 이야기한다.
그녀는 자신이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실은 본인도 실체를 알 수 없었다고 솔직히 시인한다. 작가는 불안하게 기다리고 있는 그것 자체를, 불안과 어둠 자체를 명확하게 활자화하기를 늘 꿈꿔왔는지도 모르겠다고. 존 스타인벡은 우리가 어디를 향해 떠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어디로부터 떠나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떠난다는 것은 그것이 정신적 현실로부터 떠나는 것일 때 몹시 어렵다. 예를 들면 사랑. 그러나 주저앉아 있는 것, 정지해 있는 것, 고여서 흐르지 않는 것은 시간의 누적과 더불어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히 굳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떠난다는 것은 필요한 일이며,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자기 자신 속의 현실로 돌아오기 위함이다. 끝과 시작처럼 떠난다는 것과 되돌아온다는 것은 하나이고, 기다리다가 찾기 위해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나면서 결국 자신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속삭인다. 그렇다면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기에 그 말을 어딘가에 깊고 단단하게 새겨 넣을 수 있을까.
최승자의 자전적 이야기의 막바지, 이야기가 끝날 무렵 바닷가에 서 있음을 느낀다. 앞으로 스스로 떠나가는 것인지, 떠나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시인의 시선과 시어를 담아 부둣가에 선다. 멀리서 밀려오는 푸른빛을 띠기 시작하는 하늘 꼭대기와, 그 밑의 불그스름하게 물든 하늘 밑바닥과 바다를 바라본다. 그리고 파도가 물살에 밀려 흘러오는 풍경에 삶과 사람을 담는다. 한 편의 시가, 한 편의 글이 인간에게 무엇이 될 수 있을지,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지, 그녀에게 무엇이 될 수 있을지, 내게 무엇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파도는 바람에 실려 답한다. 혼신을 다해 잘 살아가라고. 물과 바람과 사막 사이로 때로는 함께, 때로는 고독하게 걸어가며 있었던 일을 소중히 간직하라고. 그것이 살아내야 할 본질 중 하나라고. 문학과 예술은 그 언저리 내가 향하는 어딘가의 길 주변에서 반짝이고 있으니 그 길을 잘 따라가라고 안내한다.
"나는 시를 쓸 때마다 내 자신이 죽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를 다 쓰고 나면 내가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됩니다." - 최승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