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ndtrack
현존 최고의 재즈 피아니스트로 불려도 부족함이 없는 전설, 허비 행콕(1940~)은 하드밥 또는 모달 재즈의 괄목할 만한 피아니스트였습니다. 행콕의 음악 여정은 동시대의 재즈 변화를 따르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통하여 선구자적인 면모를 보였습니다. 그가 이끈 퓨전 밴드 헤드헌터스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콕이 재즈 퓨전을 시도하기 전 모달 재즈 중심의 솔로작 일곱편을 1962~69년 블루노트에서 발표하였습니다. 1960년대는 행콕의 찬란한 솔로 재즈 경력이 펼쳐지는 시기로 해당 작품들은 재즈 명반으로 여전히 소구되고 있습니다. 그중 1964년 4집 <Empyrean Isles(엠파이리언 아일즈, 천상의 섬)>에는 재즈 스탠다드가 된 "Cantaloupe Island(캔털루프 아일랜드, 천상의 섬)"가 실려 있습니다.
하드밥을 대표하는 드러머 아트 블레이키(1919~90)는 밴드 더 재즈 메신저스를 이끌며 수많은 하드밥 명작을 발표하였습니다. 또한 콤보 형태의 리더작을 별도로 발표하였는데 1954년 버드랜드 실황
<A Night at Birdland(버드랜드의 밤)>을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앨범은 트럼펫, 색소폰, 피아노, 베이스, 드럼의 퀸텟 편성으로 참여 뮤지션들은 모두 하드밥을 대표한 장인들입니다. 1954년 2월 21일 밤. 버드랜드 클럽의 MC인 피 위 마퀘트(Pee Wee Marquett, 1914~92)의 안내 멘트를 시작으로 공연은 뜨겁게 달아 오릅니다.
아래에 블루노트 레코드의 역사와 함께 한 앨범 세 장이 있습니다.
왼쪽 두 장의 앨범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1954년 2월 21일 뉴욕 버드랜드 클럽: 피 위 마퀘트의 "안내 멘트"를 시작으로 펼쳐지는 아트 블레이키 퀸텟의 라이브 연주
1964년 6월 17일 뉴욕 반 겔더 슈튜디오: 허비 행콕 쿼텟의 소울 충만한 "캔털루프 아일랜드" 연주
두 앨범은 블루노트 레코드를 대표하는 유산으로 하드밥 혹은 모달 재즈의 전형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럼 오른쪽 앨범은 왼쪽 두 장과 어떻게 연결될까요?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DJ 겸 프로듀서 제프 윌킨슨이 만든 7인조 재즈 힙합 밴드 Us3(어스쓰리). 이들이 1992년 10월 10일, 마퀘트의 "안내 멘트"와 행콕의 "캔털루프 아일랜드"를 샘플링한 싱글 "Cantaloop(Flip Fantasia), 캔털루프(뒤집힌 환상)"를 발표합니다. 이 곡은 1년 뒤인 1993년 11월 데뷔 앨범 <Hand on the Torch(승계)>에 수록되었고 어스쓰리 1집은 경이적인 판매고를 기록하며 미국 음반 협회로부터 플래티넘(1백만장) 인증을 받게 됩니다. 밴드명 어스쓰리는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팔란이 1960년 발표한 트리오 앨범 <Us Three>의 타이틀을 차용한 것입니다. 또한 어스쓰리를 '세 번째인 우리들' 이란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첫 번째는 재즈, 두 번째는 힙합, 세 번째는 재즈와 힙합을 섞어 펼치는 밴드를 가리킨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1993년 하드밥과 힙합을 적절히 섞은 데뷔 앨범 <핸드 온 더 토치>로 명성을 얻은 어스쓰리는 20년 동안 9장의 앨범을 발표하였지만 2014년 윌킨슨의 건강 이상으로 작품 활동이 중단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십수년이 흘렀고 2025년 8월 어스쓰리는 10집 <사운드트랙>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이 앨범에는 색소폰, 트럼펫, 플루겔혼, 트롬본, 플루트, 클라리넷, 주르나, 프렌치 혼, 튜바 등 다양한 관악기가 참여하여 1950~60년대 오케스트랄 재즈를 주도한 길 에반스를 떠올리게 합니다. 에반스의 편곡과 지휘로 마일즈 데이비스가 1960년 발표한 앨범 <Sketches of Spain(스페인 스케치)>를 비교 감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총 12곡이 제시하는 주제와 이미지는 여기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32년 전의 앨범이 랩을 수용하고 펑키한 연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면 앨범 <사운드트랙>은 재즈와 힙합의 연한 블렌딩을 유지하면서 강렬한 한방으로 트랩 비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10집은 열번째 곡 "Save Me"에서만 보컬이 참여하는데 랩이 아닌 네오 소울을 시도합니다. 전자악기의 선명한 사운드는 케이팝과도 유사합니다. 만일 <사운드트랙>을 감상하면서 앨범명과 같이 어떤 (영화)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면 윌킨슨의 의도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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