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무도 나를 혼내지 않을까요?
오늘 시험 몇 개 틀렸어?
라는 질문이 저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습니다.
틀린 개수대로 늘 손바닥을 맞고는 했어요.
틀리면 나쁜 거니까 할 수 있는데 못한 거니까 맞는 게 당연합니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아무도 저를 때리지 않았어요.
시대가 그리고 흐름이 상황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엔 제가 저를 혼냈습니다.
틀린 개수대로 뺨을 때렸습니다.
저는 그 당시 틀리는 제가 그리고 틀린 개수대로 때리는 제가 밉고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대학교에 와서는 꿈이 없었습니다. 시험의 필요성도 제게 없었어요. 저는 그 당시엔 죽고 싶었어요. 그냥 행복하다는 감정을 못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이게 우울증이고 안 좋은 생각이며 모두들 그렇게 살지 않는단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시험에서 해방된 후 조금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책도 읽고 여행도 다니고 사랑도 했습니다.
사랑을 해보니 제가 세상에 쓸모가 있어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알바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안정적인 일을 찾아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그 사람이 기댈 곳이 되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고시를 준비했습니다.
그나마 제가 할 수 있는 게 공부니까요.
이제 고시를 한지도 3년을 넘어 4년을 보고 있습니다.
열심히 했지만 준비하는 기간 동안 수능때와는 다르게 행복했어요. 제가 스스로 뺨을 때지도 않았고 스스로를 미워하지도 않았고 운동을 안 하거나 건강을 안 챙긴 것도 아니거든요.
그런데 시험은 계속 낙방입니다.
불안해서 시험 결과가 발표 나고 난 후 넣었던 회사들에게서도 다 불합격 소식을 받았습니다.
제가 행복했더니 무쓸모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열심히 했는데 행복하게 했던 것이 잘못이었나 봅니다. 제가 너무나도 잘못했는데, 이렇게 몇 년 내내 틀렸다는 답변만을 받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저를 혼내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틀린 개수대로 맞아야 한다던 부모님도 저를 이제는 피하십니다. 아마도 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시는 것 같아요. 저에게 들어간 매몰비용을 생각하면 답답하기도 하면서 저를 키운 정에 마냥 미워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제가 시험에 붙지 못해 제 구실을 하지 않아 저희 집을 점점 더 가난해집니다.
아무래도 혼나는 게 맞습니다.
이번해는 틀린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서 틀린 개수를 못 새겠습니다.
그렇게 많이 뺨을 때리다 보면 얼굴을 퉁퉁 부어 더더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릴 겁니다.
그냥 잘못 태어난 것 같습니다.
조금 모자라고 조금 부족하고 크게 모난 지는 않지만 세상에 필요한 조각은 아닌, 퍼즐 상자에 잘못 들어간 조각 같습니다.
세상이란 그림은 저의 조각 없이도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제가 들어갈 곳은 없어 보입니다.
옛날에 나비효과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ocn에서 늦은 밤 하던 영화를 어쩌다 부모님 몰래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특정 시점으로 회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원하는 시점의 과거를 바꿔 현재를 비꿨습니다.
그러나 그가 존재하는 한 세상은 뒤죽박죽 엉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뱃속에서 탯줄을 목에 감아 죽는 선택을 합니다.
제게도 그런 기회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면 부모님이 제게 쏟은 모든 매몰비용들을 부모님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쓸 수 있었을 텐데요.
30이 되어가니 몸을 챙긴다고 해도 이리저리 아픈 곳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귀는 염증으로 녹아 고막이 사라지고 난소에는 커다란 물혹이 생겼습니다. 아픈 건 또 제게 부모님이 투자를 해야 한다는 나쁜 소식입니다. 저는 그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 시험에 붙어야겠지요.? 그런데 그게 참 쉽지가 않습니다. 마음처럼 성적이 잘 오르지 않습니다. 압니다 제가 못난 탓이겠지요. 할 수 있는데 못하는 제 탓이겠지요. 너무나 잘 압니다. 바둥바둥거려보기는 했는데 참으로 쉽지가
않습니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세상을 “열심히”만으로는 잘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새벽 1시입니다.
이제는 잠에 들어야 내일 또 6시에 일어나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잠에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깨어나야 합니다.
잠에서 이제는 깨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일이 되면 어김없이 눈을 떠야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