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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Mar 07. 2024

그제야 알게 되었다!

사마천 <사기>,  오기와 전문의 이야기

“당신과 공로를 비교해 보고 싶은데 어떻소?”
(중략)
“삼군의 장군이 되어 병사들에게 기꺼이 목숨을 바쳐 싸우게 하고, 적국이 감히 우리를 도모하지 못하게 한 점에서 나를 당신과 비교하면 누가 더 낫습니까?”
전문이 말했다.
“당신만 못합니다.”
“모든 관리를 다스리고 온 백성을 친밀하게 하고 나라의 창고를 가득 채운 점에서는 나와 당신 중 누가 더 뛰어납니까?”
전문이 말했다.
“당신만 못합니다.”
“서하를 지켜 진나라 군사들이 감히 동쪽으로 쳐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한나라와 조나라를 복종시킨 점에서는 나와 당신 중에서 누가 낫습니까?”
전문은 말했다.
“당신만 못합니다.”
“이 세 가지 점에서 당신은 모두 나보다 못한데 나보다 윗자리에 있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전문이 말했다.
“주군의 나이가 어려 나라가 안정되지 못하고, 대신들은 말을 들으려하지 않으며, 백성은 믿지 못하고 있으니 바야흐로 이런 때에 재상 자리를 당신에게 맡기겠습니까, 아니면 내게 맡기겠습니까?”
오기는 한참 동안 조용히 있다가 말했다.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전문이 말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당신보다 윗자리에 있는 까닭입니다.”
오기는 그제야 자기가 전문만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주 1).


오기 /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유명한 병법가 중에 '오기'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자라고도 불리는 이 사람은, 『손자병법』과 더불어 손꼽히는 병법서인 『오자병법』을 저술한 전국시대의 명장이자 병법가입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오기와 전문이라는 사람이 나눈 대화를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욕심에 사로잡히면 총기가 흐려지는 것 같습니다. 오기는 뛰어난 병법가이면서 동시에 덕을 갖춘 장수였습니다. 병사들과 똑같이 옷을 입고 밥을 먹었고, 누울 때도 자리를 깔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행군할 때도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고 일반 병사들처럼 걸었으며, 식량도 직접 가지고 다니면서 병사들과 같이 앉아 밥을 먹을 만큼, 병사들의 고생과 수고로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심지어 종기가 난 병사의 환부를 가르고 고름을 빨아주기도 했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서 병사들은 그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신하로서 임금에게는 "(나라의 보배는) 임금의 덕행에 있지 (지형의) 험준함에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만큼, 나라가 부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임금의 덕이 가장 중요하다고 간언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서하'의 태수가 되자 명성이 훨씬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나라에서 재상의 직책을 마련하고, 그 자리에 전문이라는 사람이 앉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공적도 훨씬 많고 명성도 높은데, 재상의 자리를 빼앗겼다는 생각에 그는 마음이 언짢아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재상의 자리를 차지한 전문에게 찾아가 재상의 자격에 대해 논합니다.


오기는 지위의 높낮이가 공적의 많고 적음에 따라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기는 전문에게 "당신과 공로를 비교해 보고 싶은데 어떻소?"라고 운을 뗍니다. 과거 우리나라의 역사만 살펴보아도 전쟁에서 승리하면 그 공로를 따져 상을 주는 '논공행상'이 이루어졌는데, 오기 역시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렇게 보면, 재상의 자리는 당연히 자신에게 주어져야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오기와 전문이 대화를 나눈 그 자리가 왠지 살벌하게 느껴집니다. 오기가 전문과 단순히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였을까요? 전문의 말을 들어보면, 지금 위나라 임금의 힘이 그리 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임금의 나이가 어려 나라가 안정되지 못하였고, 대신들은 그런 임금의 말을 잘 따르지 않고 있으며, 백성들 또한 임금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오기의 말처럼 임금보다 그를 더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만약 오기가 재상이라는 자리에 오르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대신들을 휘어잡고 나이 어리고 힘이 없는 임금을 좌지우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최악의 경우에는 임금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춘추전국시대 '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전문은 그렇게 막강한 권력을 가진 오기가 자신을 찾아와 재상의 자격을 논할 때 무엇을 느꼈을까요? 잘못하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때가 '전국시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전문은 그런 오기를 마주하고도, 지혜롭고 당당한 태도로 현시국에 대해 날카롭게 진단하면서 오기의 논리를 깨뜨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지도 모르는 사람을 앞에 두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의중까지 밝히 드러내면서 부끄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전문과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시대적 정황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통찰력뿐만 아니라 당당함과 의연함까지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 그이기에 재상이라는 자리가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편, 오기도 이름값을 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욕심에 사로잡혀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바로 인정하였고, 자신이 더 큰 힘을 가졌음에도 전문이 더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였으니 말이지요.


조선후기 학자였던 이면백이라는 분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옛사람을 만나는 곳은 결코 법도나 준칙 사이가 아니라 그의 폐부와 심장이 느긋하게 드러나는 한 가지 사건이나 한마디 말 속이다(주 2).'


이 하나의 사건 속에 그들의 폐부와 심장이 느긋하게 드러나니, 옛사람을 만나 배우는 참 즐거움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주 1) 사마천, <사기 열전>, 2021, 민음사

주 2) 서유구 외, <한국 산문선 8>, 2017, 민음사


⁕ 월, 목 - <문장의 힘!>

⁕ 화, 금 - <거장에게 듣는 지혜>

⁕ 수, 일 - <사소한 일상은 인생의 최종손익결산>


월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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