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페터 에커만 < 괴테와의 대화 >

'대작'에 대한 소고

by 소중담
가능하면 대작을 쓰는 것을 피하도록 하게.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재능과 탁월한 노력을 겸비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대작 앞에서는 고생하는 법이기 때문이네. 나도 그런 식으로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해를 끼치는지 알고 있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 버렸던가!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것만 착실히 했더라면 백 권의 책이라도 썼을 텐데 말이야.
현재는 언제나 현재로서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네. 시인의 마음속에 날마다 솟아오르는 사상이나 느낌은 그 모두가 표현되기를 원하고 또 표현되어야만 하네. 그러나 보다 큰 작품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가득 차서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모든 사상을 등지고 생활 자체의 안락함까지 잃어버리는 걸세. 단 하나의 커다란 전체를 정리하고 완성하는 데 필요한 긴장과 정신력의 소모를 생각해 보게. 게다가 그것을 막힘없이 흐르는 시냇물처럼 적절하게 표현하자면 또 얼마만 한 정력과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생활환경이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일단 전체를 잘못 파악하면 모든 노고는 허사가 되고 말지. 더 나아가서 그처럼 규모가 큰 대상의 경우에는 개별적인 부분에서 그 소재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전체적으로 여기저기 결함투성이가 되고 마네. 그러면 비난을 받게 되겠지. 그리하여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시인에게 돌아오는 것은 많은 노력과 희생에 대한 보상과 기쁨이 아니라 불쾌함과 정력의 쇠퇴일 뿐이네. 반면에 시인이 날마다 현재를 염두에 두면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을 한결같이 신선한 기분으로 다룬다면 무언가 좋은 걸 만들 수 있고, 때로는 잘 안 된다고 하더라도 그 때문에 모든 것을 잃지는 않는다네. (중략)
모든 시는 어떤 계기에서 쓰여야 하네. 말하자면 시를 쓰는 동기와 소재가 현실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거지. (중략) 이런 의미에서 나의 모든 시는 그 어떤 일을 계기로 쓰였으며, 그 모두가 현실에서 자극을 받고 현실에 그 뿌리와 기반을 두고 있어. 그러므로 나는 허공에서 지어낸 시들을 존중하지 않는다네.




괴테는 31살의 젊은 에커만에게 애정 어린 충고를 해 준다. 에커만을 비롯한 독일의 젊은 시인들은 가능하면 대작을 쓰는 것을 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작은 제 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탁월한 노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고생하기 마련인데, 대작은 커다란 전체를 정리하고 완성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해 투자하는 정력과 고요한 생활환경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소재들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상태에서 전체를 아우르는 탁월한 시각이 있어야 하는데, 사물에 대한 지식이 일면적인 젊은이들에게는 버거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괴테는 대작을 쓰려고 하기보다는 현재를 염두에 두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을 한결같이 신선한 기분으로 다루는 시, 동기와 소재가 현실로부터 나오는 시를 쓰라고 한다.


언젠가 나만의 사상을 가지고 나만의 글을 쓰고 싶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희미하게 생각하는 주제는 있지만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내가 그것을 쓸만한 지식과 통찰력은 갖추고 있는지, 한 방면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다면성을 요구하는 작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오늘날과 같이 고도로 발달하고 전문화, 세분화된 세상에서 그것을 갖추는 게 가능이나 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언제쯤이면 가능하다는 소리인가? 특별한 재능을 타고나고, 탁월한 노력을 수행하는 사람, 거기에 환경까지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작업이 아닐까?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 다만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이정표를 따라 더듬거리며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언제까지가 젊은이의 영역이란 말일까? 전체를 아우르는 다면성을 갖지 못하는 한 영원한 젊은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보잘것없고 의미 없는 일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괴테의 말처럼, 현실에 뿌리를 두고 동기와 소재를 찾는 시인에게서 날마다 솟아오르는 사상이나 느낌은 그 자체로 표현되기를 원하고, 표현되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 문학, 예술이 갖는 자체 목적성.


그렇다. 그저 하루하루 현실에 발을 디디고 사는 나에게 찾아오는 사상이나 느낌, 그것을 표현하면 되는 것이다. 대가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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