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을 만들려면 처음에 두 손으로 작은 눈덩이를 뭉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눈덩이를 만들고 눈이 많이 쌓여 있는 곳을 찾아갑니다. 눈덩이를 굴려서 눈덩이를 크게 만듭니다. 눈덩이를 빠르게 크게 만들기 위해 경사진 곳에서 굴리기도 합니다. 잘 굴러가서 안착하면 큰 눈덩이가 됩니다. 큰 눈덩이 두 개가 만들어지면 눈코입을 붙이고 목도리도 매 줍니다. 눈사람이 완성되고 웃는 얼굴로 기념사진을 찍어 둡니다.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는 눈덩이를 뭉치고 눈이 많이 쌓인 곳을 찾아 원하는 크기가 될 때까지 눈덩이를 굴립니다. 이런 단계를 밟아 눈사람을 만듭니다.
버블이란 특정 자산이 본래의 가치의 힘으로 가격이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계속해서 오를 것이라는 기대로 인해 매수가 계속되는 상황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기대한 가격에 접근하면 수익실현을 한다’는 자신의 계획을 가집니다. 그런데 버블의 중심에 놓이면 정확한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합니다. 지금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판단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습니다. 객관적인 자료들을 모아서 종합하여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에 맞는 자료들만을 가져다 종합합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자료만 가져다 합리화합니다. 이런 행동이 덜 힘든 면도 있지만 이쪽에 올라타면 수익이 극대화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버블이 터지고 난 후에야 잘못된 것을 알게 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후입니다. 앞으로 똑같은 상황이 벌어져도 비슷한 과정을 반복합니다. 사람은 어려우면 피해 가려하고 사무치지 않으면 쉽게 잊어버립니다. 대가에 비례하여 기억의 시간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험이 경험으로서의 힘을 지니려면 복귀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복귀의 시간을 통해 과정을 선명하게 해야 합니다. 선명한 과정을 밟아야 우리 안에 오래도록 남아 비슷한 상황에서 등불이 되어 줍니다.
글을 쓸 때 주제가 떠오르고 피상적인 대략의 내용이 생각나면 공통적으로 하는 행동이 있습니다. 특정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는 일입니다. 많은 글에서 사전적 의미로 글을 시작하는 경우를 자주 보는 이유입니다.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는 것은 명확하지 않은 것을 붙들어 맬 수 있는 기둥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어디에 무엇을 지어야 하는데 어디에 지을지 무엇이 구체적으로 어떤 명확한 형태를 갖추게 될지를 고민한 흔적이 사전을 찾는 일입니다. 사전적 정의에는 특정 단어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경험이 묻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의 공통부분을 모아 가장 간결한 언어로 서술한 것이 사전적 정의입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사전에서 추상적인 글을 튼튼하게 세울 수 있는 기둥을 발견하려 합니다. 글쓰기만이 아니라 삶에서 발견하는 통찰의 순간에도 비슷한 행동을 보입니다. 삶에 숨어있는 의미를 찾아내고 선명하게 다듬기 위해서는 처음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사용하는 정의는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조작적 정의에 가깝습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생각으로 태어난 정의가 이에 해당합니다. ‘조작’이라는 말이 부정적인 어감이 있기는 하지만 ‘공개시장조작’처럼 어떤 의지와 의도를 가지고 특정 행위를 하는 것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습니다. 지식과 정보, 생활의 경험을 통해 나만의 관점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나만의 정의(조작적 정의)를 통해 추상성을 매어 둘 확고한 기둥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둥에 매어진 추상성 위에서만이 보태어지는 것들이 가능합니다.
자기 계발 관련 책들을 보면 두 부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자신의 추상적인 생각으로 시작해서 확고한 신념으로 이어지는 책입니다. 다른 하나는 참고문헌에서 객관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와서 관련된 자신만의 통찰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두 가지의 방법 모두 장・단점이 있을 것입니다. 몇몇 대가들은 ‘자신은 그 어떤 것도 참고하지 않는다. 참고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내 생각을 옭아매서 나만의 생각을 할 수 없게 한다’고 말합니다. 세계적인 영화감독 중에 이런 입장에 서는 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영감은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신(절대자)이 찰나의 순간을 통해 주신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이에 반해 새로운 것은 완전 무(無)에서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이 일반적입니다.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유에서 다른 종류의 유가, 작은 유에서 큰 유가 나온다는 생각입니다. ‘모든 창작(발명)은 크고 작은 모방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입장입니다. 두 의견 모두 동의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동의할 수 있다는 것은 양쪽의 입장을 바탕으로 밀도를 높였을 때 해당됩니다. 밀도가 어느 정도 차지 않으면 이런 전제는 형편없는 내용에 대한 도피처에 지나지 않습니다. 본서(습작을 벗어난 책)로 출간하는 자기 계발서의 밀도를 쌓는데 불리한 포지션은 참고문헌이 없는 쪽입니다. 자신이 쌓아온 생각을 기반으로 하기에 추상성을 매어 둘 기둥이 흔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고문헌이 꼭 중요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추상적인 생각을 매어 둘 무언가를 마련하는 노력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미국의 연준은 1913년에 건립되었습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통해 많은 경제적 위기를 겪으며 수많은 해법을 만들고 적용했습니다. 책을 통해 연준의 역사를 알게 되면서 연준에 대한 음모론 비슷한 생각을 많이 지울 수 있었습니다. 기준금리, 양적완화, 양적긴축, 테이퍼링, 포워드가이던스, 일드커브컨트롤, 평균물가목표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협업 등의 개념과 효과를 아는 정도였지만 그런 정책의 태동과 과정 복귀를 살펴보면서 연준이 어떤 고민과 고통의 역사를 지나왔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수많은 경제학자들의 연구를 검토하고 검토를 통해 결정된 정책이 다양한 경제 영역과 주체들에게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세밀히 살피고 후에는 복귀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럼에도 단정하는 일이 없습니다. 상황은 늘 변하기에 어제 100의 효과를 냈다고 오늘도 100의 효과를 낸다는 단정으로 인해 다른 문제를 발생시킬지 모른다는 세심함이 곳곳에 묻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살피다 아무것도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의 이런 지난한 고민들이 세계경제 위기 속에 빛나는 힌트가 되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서 출발하여 보이는 것까지 이르는 지난한 과정을 마다하지 않은 결과일 것입니다.
어떤 곳에서 무엇을 시작할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추상성에서 시작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추상성이 모호하고 쉽게 뭉쳐지지 않는다고 명확하지 않은 것의 몸집만 키우는 것은 사상누각과 같습니다. 선명하고 확고한 성장을 위해서는 추상성을 잡아줄 수 있는 기둥을 마련해야 합니다. 추상적인 생각을 매어 둘 기둥은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아야 가능합니다. 지쳤을 때 한 발 더 나아가는 수고로움을 말합니다. 눈을 단단히 뭉치고, 역사를 돌이켜 보는 것이 든든한 기둥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기둥을 세우는 일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됩니다. 기둥을 세우지 않으면 큰 생각을 품을 수가 없습니다. 기둥을 세우는 일이 통찰을 실현시키는 수단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생각이 달라붙는 작은 기둥을 세우는 날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