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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 Jun 27. 2024

삶을 충족해 주었던 음식이 사라지고 있다

 뉴스에서는 연일 오늘이 최고로 무더운 날이라고 말한다. 뉴스에서 나온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햇살은 날카로운 창이 되어 땅으로 내리 꽂히는 것 같다.

"더워서 입맛이 없네. 뭐 맛있는 것 없을까?"

 땀을 얼마나 흘린 건지 소금기 가득한 작업복으로 퇴근한 남편이 말한다.

 "시원한 물회가 먹고 싶은데. 그 집은 문 닫았다고 했지?"

 남편은 여름이면 늘 찾던 식당의 물회가 생각나는 것 같았다. 칼칼하고 톡 쏘는 맛에 뼈째 먹는 물회, 해산물 물회, 전복 물회 등 종류도 다양하고 양도 많은 집이다. 시원 칼칼한 맛에 덩달아 군침이 돌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얼마 전 가게 앞을 지나다가 '점포 임대'라고 적힌 글을 보았다. 이사 오기 전부터 있던 식당이었는데 문을 닫은 것이다. '임대'라는 말이 오랜 친구의 '잘 가'라는 인사말처럼 서운했다.

 "요즘 경기가 안 좋다더니 식당들이 못 버티고 사라지는 것 같네, 아쉽다~"


 다행히 내가 사는 곳은 관광도시이고 바다를 끼고 있어 횟집이 많으니 맛있는 물회를 파는 식당을 발견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친정 식구들도 이곳에 오면 부산에서 먹는 물회보다 맛있다며 칭찬을 했던 맛집이다 보니 아쉬움이 더했다.

"예전에 자주 갔던 조개구잇집 기억나? 거기도 문 닫았잖아. 진짜 아깝던데."

 저녁을 먹고 티브이를 보던 남편이 말했다. 아마 문을 닫은 식당에 대한 생각이 쉽게 떨쳐지지 않나 보다. 남편의 말을 들으니 생각이 났다. 한쪽에 평상이 있어 아이를 데리고 가기 좋았고 조개와 해산물이 정말 싱싱했다. 마지막에 먹은 해물 라면과 칼국수 맛도 끝내줬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떠나보내야 했던 식당들이 자꾸 생각이 났다. 조개구잇집은 큰 도시로 이사를 갔다. 제주 흑돼지를 파는 식당은 건물 주인이 하는 식당으로 바뀌었고, 생선구이 식당은 비싼 월세에 비해 매출이 저조해 문을 닫았다.


 식당들이 사라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높은 임금에 식자재값에 임대료까지 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배달도 많아지다 보니 부수적으로 감당해야 할 것이 늘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물가 상승과 불경기까지 겹치고 있으니 식당들은 배겨 날 재간이 없다.

 하지만 특색 있는 식당은 지역의 자랑이다. 왜 어느 지역을 가도 꼭 가야 하는 식당이 있거나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 있지 않은가. 여행을 갔는데 꼭 가고 싶었던 식당이 문을 닫았다고 생각해 보라. 순간 여행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 이런 생각들을 하니 하나둘 사라져 가는 식당이 더 애틋하다. 문을 닫는 식당들은 폭풍에 맞서다 힘을 잃고 쓰러진 나무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뿌리 깊은 나무도 거센 폭풍이 몰아치면 쓰러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무들이 쓰러지다 보면 결국 숲은 망가질 수밖에 없다. 뿌리를 지탱하고 싶어도 수단이 있어야 가능하듯, 저마다의 식당들이 지역 특색을 살리며 잘 유지되려면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자 사적인 욕구의 충족이다. 필요한 시기에 마땅한 음식을 채우며 사는 삶이 인간의 삶이지 않은가. 삶을 충족해 주었던 음식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위기감을 부추긴다. 또한 음식이 주는 향수는 그 어떤 것보다 진하다. 음악처럼 음식도 지나간 추억이나 삶의 애환을 불러일으킨다. 추억으로 간직될 기억이 음식으로 새겨지고 잊었던 사람을 끌어당긴다. 삶을 충족시켜 주었던 음식이 사라지고 있다. 나의 추억이, 지역의 자랑이, 주인의 긍지가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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