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알바했수
지금도 전화번호 안내국 114가 있던가? 요즘은 워낙 인터넷이 잘되어있어 폰으로 전화번호 검색해서 금방 찾는다.
내가 스무 살 초중반엔 있었다. 25년쯤 전이지? 내 나이가 어느새 이렇게 됐단 말인가!
나의 장점은 친절이다. 응대하는 목소리도 나쁘지 않다.
말을 할 때나 통화할 때도 난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려고 노력 중이다. 여러 경험 끝에 얻은 나만의 방식이라고 할까?
말하는 것도 기술이니.
그 당시 아는 친구가 자기 아는 사람이 114 아르바이트한다고 나에게도 권했다.
별거 안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해보기 전엔 간단할 줄 알았다.
나의 경험담을 풀어볼까 한다.
1. 번호안내국 입문편
부산과 경남지역 번호안내국은 부산역 부근 한군데 있다. 사람들은 지역별로 다 있는 줄 안다. 나도 그랬으니까.
부산에서 부산과 경남 전체를 안내하는 거다.
이력서 접수는 어떻게 하느냐?
부산역 번호안내국 입구 관리하시는 분께 이력서라고 드리면 접수해주신다. 내부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기에 그런 방법을 하시는 것 같았다.
난 거리가 멀지 않아 직접 관리하시는 분께 드렸다.
한두 달 간격 주기적으로 이력서와 실기를 통해 채용하는 것 같다.
이력서 접수하고 오래 걸리지 않아 연락이 왔다.
2차 실기 보러 오라고.
많은 사람이 왔다. 내 기억으론 최종 합격은 30명 정도였던 거 같다. 지원자는 항상 많은 것 같았다. 자주 뽑기도 했다. 그만큼 그만두는 사람도 많다는 뜻이지.
실기는 두 번으로 평가했다. 받아쓰기와 타자.
받아쓰기는 전화 업무고 직접 타자로 쳐서 찾아야 하다 보니 잘 듣고 글자를 잘 입력해야 한다.
헷갈리는 받아쓰기였다.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어는 쉽지 않다. 탈락할 줄 알았다. 긴가민가하는 단어를 많이 불러줘서 애매한 게 많았다. 안에 에자인지 밖의 애자인지.
웬만큼 틀리지 않으니 괜찮은 거 같았다.
두 번째는 정해진 시간에 타자치기.
그때 난 5~600타 정도 쳤기에 보고치는 타자라서 어렵진 않았다.
면접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중요한 건 타자쳐서 목록이 쫙 나오면 거기서 얼마나 빨리 찾는가도 실력이다.
전화는 시간 싸움과 건수 싸움인지라.
이렇게 번호안내국의 입문이 시작되었다.
2. 연수 기간
최종 합격한 사람은 30명 정도가 되었다. 3주 정도 연수를 받았다.
2주는 발음과 억양연습이었다.
흔히 아는 간장공장공장을 시작으로 쇠찰상은 기본이고, 이런 말도 있었나 싶은 정도의 혀 꼬이는 발음을 연수받았다. 무슨 꼬이는 단어를 이렇게 조합을 잘들 하는지. 안 꼬아도 어려운 한글을. 이때 연수받은 어려운 발음들 덕분에 나의 발음도 좋아진 거 같고, 천천히 정확하게 말하는 습관이 만들어진 것 같다. 출력물도 많이 받았다. 집에 가서 연습하라는 숙제와 함께.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
연수 시간도 하루에 3~4시간이었던 거 같다.
복식호흡을 기본으로 했고, 글자 하나하나 정확히 발음해야 했다.
나에게 가장 어려운 부분은 억양연습이었다. 난 부산 표준어를 쓰는데 억양이 내 맘 같지 않았다. 연습은 2인 1조로 이루어졌다. 서로의 억양과 발음을 봐주기도 했다.
강사가 과제를 주면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내 짝은 나의 인사발음이 특이하다고 했다
그때 안내국에 콜이 들어오면 “안녕하십니까?”가 첫 인사말이었는데, 나의 억양은 아무리 기교를 부려도 사투리로 들린단다.
내가 들을 땐 표준언데.
강사도 나의 첫인사엔 고개를 갸웃거렸다. 첫인사만 넘기면 다 괜찮은데.
꼭 첫 인사가 안녕하십니까일 필요는 없지 않나? 반갑습니다도 있는데 왜! 왜! 안녕하십니까 인지. 안녕하십니까? 가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다.
대부분의 콜센터엔 매뉴얼이 있다.
이 발음 부분이 어느 정도 연수가 되면 타자로 넘어간다.
강사가 앞에서 “김팔순 전화번호 찾아주세요.”라고 한다면, 이름란에 김팔순 적는다.
김팔순의 이름이 쫙 나온다. 부산과 경남지역의 등록된 김팔순은 다 나오는 거다.
이때 대부분 그런다. “김팔순 한 명 아니에요?” 이때 또 우린 어떻게 하느냐.
“고객님, 저희가 부산과 경남지역을 모두 하고 있습니다. 어느 지역에 사시는 분이실까요?”라고 물으면 전화를 건 사람들은 놀랜다. 우리가 다하냐고. 그렇다. 우리가 다했다.
그 당사에 114 번호안내국도 전국에 몇 군 데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또 묻는다. “어느 동에 사시는 분이실까요?” 그렇게 찾은 김팔순이 고객인 찾는 사람과 같은지는 알 수가 없다. 그 당시 문자 서비스가 없던 시대라 육성으로 안내했다.
“메모할 수 있으십니까?” 매뉴얼이다. 기다리라고 하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곤 숫자 하나하나 안내한다.
상호를 묻는 사람도 많다. 예를 들어 검은 돼지 상호를 찾는다고 하면 우리가 아는‘돼’ 자만 쳐서 찾으면 큰코다친다. 돼, 되. 대, 데, 많은 글자를 쳐도 나오지 않으면 직접 묻는다. 어떤‘돼’자냐고. 이것저것 다 찾아도 없으면 없다고 한다. 어떤 고객은 화낸다. 간판 있는데 없다고 하냐고. 욕도 가끔 한다. 그럴 땐 매뉴얼대로 하는 거지.
“죄송합니다. 등록되어 있지 않습니다.”라고. 우리가 못 찾아서 그럴 수도 있고, 정말 등록이 안 됐을 수도 있다.
보통 사람들은 보이는 건 다 등록이 되어있을 거로 생각한다. 그것도 못 찾냐고 어디에 가면 장사하고 있는데 왜 없다고 하냐고. 우리한테 욕을 퍼붓듯이 화풀이하고 끊는 사람도 있다. 뭐 어쩌겠어. 등록 안 된 번호를 내가 만들 수도 없는 거 아닌가?
여러 상황의 경우를 연수 받는다.
발음, 억양, 타자, 검색 방법, 응대 등을 연수받으면 하루 이틀 정도 실전에 일하는 사람들 옆에서 참관한다.
고객도 다양하듯 사실 업무하는 사람도 성향이 다양하다. 좋은 것만 배우면 되는 거지.
3. 업무 시작
처음 업무를 하면 무조건 저녁 5시~ 10시까지 다섯 시간 근무다. 아르바이트 개념이긴 하다. 시간은 정해져 있었다.
번호안내국은 24시간이다. 그중 이 시간을 나처럼 아르바이트생이 한다. 정직원도 있긴 했다. 많진 않지만, 정직원은 보통 근무 시간처럼 출퇴근한다.
아르바이트 기간이 어느 정도 되고, 건수도 나쁘지 않으면 재택근무도 가능하다. 다만, 재택은 밤 10시부터 인가해서 아침까지다.
처음엔 강사처럼 고객의 발음이 또박또박하게 잘 들릴 줄 알았다. 어림도 없다. 몰라 듣는 경우가 더 많다. “죄송합니다. 다시 말씀해주시겠습니까?”라고 하면 한번은 친절히 말해준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지 않던가! 도저히 못 알아듣는 말도 있다. 몇 번을 물으면 욕하면서 끊는 일도 있다. 5시간 동안 전화를 엄청나게 받는다. 누가 번호 물어보는 사람이 많을까 싶었다. 같은 시간에 근무하는 사람이 수십 명인데 다들 콜 받는다고 바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번호를 물어본다고? 상상을 초월한다.
시작 시각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끊으면 바로 콜이 들어온다. 쉴 틈이 없다.
가끔 이상한 사람도 전화한다. 장난 전화도 오고. 신기한 건 어른들이 장난 전화를 많이 한다는 거다.
여긴 유니폼도 있었다. 가끔 이벤트 하듯이 직원들한테 공중전화카드를 줄 때도 있었다. 어떠한 대사를 했다거나, 특별한 경우 말이다. 나도 받은 적이 있다.
그 당시엔 공중전화도 많았던 시절이라 꽤 도움 되는 상품이었다.
난 건수 많은 것보다 한 명 한 명 최선을 다하자는 주의다.
콜센터는 사실 건수도 중요하게 여긴다. 콜 하나하나가 돈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일까?
기억에 남는 콜이있다.
할머니였다. 누군가의 연락처를 물어보신다. 발음을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나도 최대한 천천히 안내했다. 어느 지역의 어느 동인지를 찾았고 원하시는 동네의 찾는 사람이 나왔다.
메모할 수 있으시냐는 말에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셨다. 많이 기다렸다. 종이를 찾느라 늦으시는 거겠지. 기다렸다.
번호 하나하나 천천히 알려드렸다. 몇 번이나 되물으셨고, 나는 당연히 알려드렸다. 시간도 걸렸다. 번호 적으신 거 다시 말씀해보시라 하고 확인까지 했다. 잘못 적으시면 안 되니까. 할머니는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하셨다. 시간은 걸렸지만 뿌듯함이 밀려왔다. 다른 사람 열 건은 받았을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건수도 중요하지만, 한명 한명이 더 중요한 거 아닐까? 내가 고객 입장이라면 대충하는 안내원은 나도 싫고 맘에 안 들었기 때문에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일하는 시간엔 한 명 한 명에 최선을 다했다. 당연히 콜수는 높지 않았다.
처음 번호안내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 잘하는 사람은 정직원으로도 채용된다고 했다. 속이려고 처음부터 거짓말하진 않았을 거라 믿는다. 두세 달 지났나? 더 이상 정직원을 뽑지 않는단다.
정직원이랑 아르바이트는 대우가 확실히 다르다. 일하는 시간이 변경되지도 않는다. 저녁 시간에 계속할 순 없어 어느 정도 하다가 그만뒀다. 정직원이 되고 싶은 맘으로 했는데….
어떤 일을 하든 배울 점도 있고 버려야 할 부분도 있는 거 같다. 직접 보진 않지만 많은 사람을 만난 것 같았다.
이 일을 해보면서 전화 업무하는 사람들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보인다고 막말하는 사람도 있고, 전화 업무를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반면에 친절히 다정하게 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살이가 복불복 아닌가!
지금 전화 업무하는 분들 수고가 많으십니다. 한숨 나오게 만드는 고객이 있는가 하면 분명 따뜻한 말을 건네는 고객도 있을 겁니다. 오늘은 따뜻한 고객을 더 많이 만나는 날이길 바랍니다.
내가 고객의 입장으로 어딘가를 전화한다면 상담원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보면 어떨까요? 의외로 건네는 사람도 따뜻해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