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
저마다 이유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사람들마다 어떠한 목적성을 가지고, 어떠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어떠한 가치를 가지고 살아간다.
나는 다음과 같은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나는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쪽에 가깝다. 그런데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곳의 정착해 있는 곳의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몇 십년동안 한 분야, 한 직종에서 오랫동안 종사하고 계신 분들 중에서 전문가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몇십년 동안을 한 기업에서 종사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한 심리기저의 이유를 스스로 한 번 생각해보니
"기업은 나를 돌봐주지 않는다. 나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한 기업에서 오래 있는 것 보다는 다양한 기업에 도전을 해보고 싶다."
"다양한 일을 배워보고 싶다. 그러면서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이러한 생각들을 가지게 되면서 한 기업보다는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 관심있는 것들의 더 솔직하게 도전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나조차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느 정도의 안정성을 찾기를 원하는 마음 또한 한 구석에는 있다는 것이다.
직업적 안정성이라는 것이다. 현재는 결혼에 대한 생각도 크게 없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과 도전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녀가 있고 배우자가 있는 상황이라면 이러한 도전조차도 쉽지가 않을 수 있다. 경제적인 상황이나 다양한 변수들로 인해서 이러한 도전이나 경험조차도 배우자의 동의나 허락이 있어야 하는 상황일 수 있다.
그러면 그러한 상황속에서는 막연하게 계속 일을 해야 되니까 말이다. 바로 '돈' 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말이다.
나는 도전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삶, 주체적인 삶을 살면서 하루 하루가 충만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 그러한 기분을 느끼면서 고양된 정신을 가지고 말이다.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과거의 나에 대한 반성적 성찰에 기인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나는 소심하고 수동적인 사람에 가까웠다. 인사하기도 어려웠고 눈을 마주치면서 대화하기도 힘들었다. 자존감도 많이 떨어져서 정말이지 친구를 사귀는 것도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러한 내가 과거처럼 수동적이고 도전없이 살아간다는 건 내 인생의 큰 죄를 짓는다는 생각에 이르면서 도전하고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어떻게 보면 지난 날의 반성과 후회 속에서 인생을 조금 더 가치있고 나답게 살아가자는 욕심과 마음에 나의 마음 한 켠에는 도전을 하면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자리잡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장점과 기술 등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너무 상대방이나 사회적 시선을 신경 쓴 나머지 본인의 나다움을 잃어버리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정의하고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 사람들을 동화시키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가치가 전해져 감동과 공감이 이루어졌을 때 상대방의 진심어린 관심과 인정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나다움' 이라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다. 나다움을 보여주고 세상의 이런 사람쯤은 있을 것 같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오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런 사람은 이렇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구나."
"나도 한 번 이렇게 해볼까?"
위의 생각처럼 많은 사람들이 나로 인해서 심리적 동화와 고무되는 감정을 느꼈으면 그것도 그 나름대로 나의 이름을 알렸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심리적 각인이 되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본인이 인정받고 싶다고 해서 주변의 다른 사람을 시샘하고 깍아내리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방법이다. 많지는 않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서 상대방을 질투하면서 본인의 업적을 치켜세우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러한 것을 보기도 하였고 그러한 사람들에 의해 당하기도 하였다. 어떻게 보면 그 사람들 나름대로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상대방의 가치와 상대방의 인생에서 쌓아온 업적을 무시하거나 힐난하면서 본인의 업적과 활동을 인정받으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어린이들이 남이 부러워서 상대방의 부족한점이나 결점을 비꼬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고 타인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마음이 있으면 상대방 또한 이상하거나 성격적 결함이 극명한 사람이 아니라면 나를 존중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는 이유는 다양하다. 어떠한 사람은 육체적 쾌락을 목적으로 살아갈 수 있고 어떠한 사람은 독서를 위한 쾌락을 위해 살아갈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말씀드리니 육체적 쾌락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정말 일종의 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사실 우리가 사회적, 법적, 제도적으로 금기시되어 있는 사항이나 관습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것들을 해보려고 하는 것은 많은 비난을 받는다. 그런데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 사람 나름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이자 이유가 될 수 있기도 하다.
때로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러한 수준과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을 해주어야 하는지 고민이 되기도 한다.
"양성애자, 동성애자를 그가 살아가는 이유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육체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이에 대해서 관용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거시적인 이유나 목적으로 포옹해줄 수 있을까?"
"취업을 하라는 부모님의 등쌀을 버티면서 다른 방법으로 성공하겠다고 노력을 하는 젊은이의 삶의 목적과 이유를 비난할 수 있을까?"
이 또한 어떠한 사회나 나라에서는 당연스럽게 인정이 될 수 있는 내용들이 어떠한 나라나 사회에서는 비난이나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나 이유의 형성은 어떻게 보면 나라나 사회에서 형성된 관습이나 법적 제도적 규범에 많이 영향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