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헌 Jun 25. 2023

압도적 감사!

감사! 감사! 감사! 천성이 오만한 나는 늘 그래야 했다.

해소, 해소. 해소!

다음날 일어나 거울을 보니 피부가 부쩍 좋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체증은 내려가고 짓누르던 무게는 산산이 부서져 내 주위로 산개했다. 나는 꼿꼿이 서 다시 정면을 응시하며 되뇌었다. '이건 꿈이 아니다.'


바라마지않던 일이 벌어졌을 때 내가 받아들이는 방법은 생각 외로 별게 없었다. 달라지는 것 또한 크게 없었다. 낙담한 시기에 했던 숱한 시뮬레이션 중 하나가 채택되었기에 기시감이 들었다. 목적지 잃었던 우정들이 모여 축하의 노래를 해주었다. 나는 너무나도 기뻤다. 우정과 사랑을 잃어버리고 믿음도 놓아버리고, 심지어는 많은 배도가 있을 때 나는 막을 힘도 잡을 힘도 없었는데! 오늘의 노래에는 남겨진 이들의 진중함이 있었다.


뛸 듯이 기쁜 건 오히려 내 쪽이 아니었다. 내가 정확히 뭘 하고 어떤 준비를 끝마쳤는지 모르는 이들의 기쁨이 더 컸다. 조각가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 관람객을 관람하는 관람자가 되었다. 베일 뒤의 실루엣이 심히 아름다웠으나 누구도 그 베일을 걷어내지는 않길 바랐다. 속이 꽉 찬 사람을 뭐라고 하더라? 그건 바로 왕만두였다. 하지만 내 조각품은 속이 차있지도 겉보기에 먹음직스럽지도 않다. 단지 후광이 만들어놓은 아웃라인에 감탄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모아 감사하고 나는 부끄러움은 숨기고 결함 또한 가렸다.


각자의 위로가 만든 오늘의 기쁨. 나는 기쁨이 나누면 두 배,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라는 말을 믿지 않지만 농담처럼 말했던 타인의 자존감 분쇄기, 질투유발자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것은 맞다. 꾸준함은 이긴다. 유머와 사랑을 곁들여서 밀어붙인다면.


오늘로부터 2년 전쯤 나는 아직도 알약으로 정제한 감정과 수면을 챙겨 먹고 있었다. 부작용으로 어제 자기 전에 무슨 유투브를 봤는지, 아침에 뭘 타고 어떻게 걸어 출근했는지 기억나질 않아 두려워질 무렵.

매일 열등감 위에 누워 잠을 청하던 봄이 지날 무렵에 나를 일으키는 손아귀가 고마웠으나 보답할 길이 없어 답답했다. 그 길로 나는 고마운 손길의 안내를 받아 분당으로 갔다. 물론 그곳에는 즐거움만 있지는 않았다.


왜인지 그날은 유독 더 추운 겨울이었다. 물레를 배우러 들어가는 길목에 사람 한 명 보이지 않고 눈은 녹았다가 얼었다가를 반복하면서 발목에 긴장감을 주는 노면으로 변해있었다. 봄과 여름에는 오리도 살던 냇가는 생기 없는 빙판이 되어버렸다.


실력에도 맞지 않는 진도를 꾸역꾸역 따라가고,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선생님의 눈치를 계속 보다 보면 목은 굳고 손은 차가워져 내가 지금 흙을 누르고 있는 건지 흙이 나를 누르고 있는 건지 헷갈리는 시간이 오게 된다.

그날도 어김없이 내가 가져간 석고 몰드에 대한 혹평과 해놓은 작업에 대한 날 서고 가시 돋친 피드백이 있었다. 오늘에 이르러서는 나에게 자양분이 되었으나 당시엔 집 현관을 나서는 순간부터 식은땀이 나는 순간들이 아닐 수 없었다.


갖다 버리라는 말을 들은 몰드를 다시 쇼핑백에 담아 시무룩한 마음으로 구석에 제쳐두었다. 그리고 별안간 그날 작업도 시린 손과 시큰한 눈두덩이를 남기고 마쳐졌다. 해는 일찍 졌고 대부분 자가용을 타고 자리를 떠났다. 걸어 나오는데 익숙한 패배감의 냄새가 났다. 나와 한 때를 보냈던 누군가는 벌써 석사 2학기, 혹은 사업자. 나는 소속도 실력도 없는, 난파선에서 뛰어내려 겨우 땅에 닿은 조난자도 감사를 거둬갈 만큼의 척박한 섬 같은 인간이라 느껴졌다. 아까 얼어있던 땅과 냇가는 돌아 나오는 길엔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이 흐려 볼 수 없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집에 돌아와 보니 몰드를 담았던 쇼핑백 안에 종이가 한 장 있었다. 펼쳐보니 그건 먼저 해낸 친구의 합격증이었다. 나는 내 소지품에 들어와 있는 내가 아직 가져보지 못한 생뚱맞은 물건에 대한 해석을 해야 했다. 이게 그냥 짬처리 분리수거인지 혹은 호랑이 같은 눈을 가진 스승의 나를 북돋으려는 마음인지. 나는 후자를 선택한 뒤 마음속 여론을 잠재우고 중론을 세웠다.


친구에겐 미안하고 민망했으나 있던 이름과 생일을 지우고 내 이름과 생일을 써넣은 뒤 내 방 거울 옆에 붙여두었다.

다행스럽게 테이프는 줄곧 잘 붙어있어 주었고 그렇게 붙인 친구의 합격증은 제 역할을 다 한 뒤, 2년을 꽉 채우고 오늘 떼어졌다.


내가 가진 장애나 어려움들을 눈치채고 손 내밀어 제안해 준 사람. 알아채기 힘들지만 곳곳에 애정을 숨겨 건네어 주는 사람. 한동안 일터에서 개떡같이 일하고 상품 가치가 없는 컵을 만들어도 이해해 주던 사람. 전화번호를 바꾸고 온갖 연락수단을 다 없앤 후에 숨은 나를 찾아준 사람. 어디 머리 한쪽이 마비된 사람처럼 나쁜 말들을 뱉어도 나를 사랑해 준 사람. 떨어져 있어도 내 행복을 빌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

그들은 존재가 위로였기에 각자가 건넨 위로는 나를 죽지 못하게 하다가 결국 살게 했다. 그게 설령 안타까움에 건넨 제안이었던, 별생각 없는 수납이었던 쥐어짜 낸 인내였든 간에. 그들이 나를 살렸기에 오늘의 기쁨이 있었다. 내가 단정히 정리해 둔 이부자리가 누군가에게는 값진 행복이듯이.

작가의 이전글 중랑천에서 울면서 따릉이 타는 사람 보면 저인줄 아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