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말이 있다.
"브랜드는 규모를 키우지 않으면 결국 사라진다."
더 크게, 더 빠르게 가야 한다는 말은
마치 숨이 조금씩 가빠지는 기분을 준다.
나도 처음엔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른 방향이라 어딘가 불편했다.
브랜드를 꾸려온지 1년 남짓 된 지금,
그 말이 모든 사람에게 맞는 건 아니라는 걸 조금씩 느낀다.
예전에 번역을 준비하던 시절,
그 분야에서 오래 일했던 분이 이런 말을 했다.
"빨리 유명해지는게 좋은 일만은 아니야.
번역은 오역이 완전히 사라질 수 없는 작업이고,
초보 번역가가 처음부터 베스트셀러를 만나면
오히려 오역논란에 시달리며 오래 일하지 못할 수도 있어.
그래서 가늘고 길게 가는게 좋아."
그땐 잘 몰랐지만,
지금 가방을 만들면서 그 말이 천천히 이해된다.
내가 만들고 감각을 읽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팔리는 순간이 온다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팔리는 것만 반복해서 만들게 되고
새로운 시도를 할 틈은 줄어든다.
언젠가 더 빠른 방법을 찾아야 하고
대량 생산에 기대게 된다.
그 과정 안에서
'작고 느리게 쌓아가며 얻는 감각'은 흐려진다.
손이 떠나고 마음이 떠나고, 남는 건 속도뿐이다.
운이 좋으면 돈도 남겠지만.
그건 내가 바라는 길이 아니다.
그때 생각이 난다.
예전에 맞춤복을 한 적이 있었다.
옷은 누군가의 몸에 정확히 맞아야 했다.
어깨, 허리, 기장, 품...
정해진 수치 안에서만 변주가 가능했다.
그러다 가방을 만들며 많은 것이 달라졌다.
몸에서 반 보쯤 멀어지는 순간
형태는 자유로워졌다.
딱 맞지 않아도 괜찮았고
그 여백 속에서 더 너르게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하루하루 손으로 만든 가방들이
조용히 쌓여간다.
자신을 소중히 다루어줄 주인을 기다리며.
똑같이 만든 것 같아도
조금씩 다르다.
그 차이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말없이 알려준다.
그래서 나는
'확장'보다 '축적'이라는 말에 마음이 간다.
좋은 하나가 생겨도
그것만 반복해 늘리는 대신
오늘 떠오른 생각을
내일의 형태로 다시 더듬어본다.
작은 변화들이 겹겹이 쌓여
마침내 나만의 결이 생겨나는 과정.
나는 그 시간이 좋다.
그 결을 지키려면
속도가 아니라
'머물 줄 아는 힘'이 필요하다.
빨리 가면
놓치고 지나가는 게 많다.
가방을 만들 때
다른 자극에 마음을 빼앗기면
손이 배우는 감각이 흘러가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지도 모른 채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그래서 한 번에
한 가지에 머무는 시간을 믿는다.
AI 시대가 되면서
많은 노동이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머지않아 내가 지금 하는 일도
기계와 결합한 무언가가
더 능숙하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는 일은
몸만 움직이는 노동이 아니라,
무언가를 느끼고
표현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확신할 순 없지만
그래서 조금 돌아가더라도
더 많이 경험하고
낯선 방식을 만나보고 받아들인다.
어쩌다 엉뚱한 길을 걸으며
스스로에게 여러 대안을 던진다.
그 과정 속에서
재미가 생기고
의미가 남는다.
덕분에
지치지 않고 오래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늘고 길게.
내가 바라는 건 거창하지 않다.
모든 생명체가
각자의 방식대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풍경.
정해진 방식만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고 믿는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그 다름이
또 하나의 길이 되는 세상.
그 속에서
조금 느리게,
조금 깊게,
조금 더 단단해지면 된다.
오늘의 마음이
오늘의 손끝에
충실히 머물렀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확장하지 않아도
조용히 깊어지는 길.
나는 그 길을 택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작게, 깊게, 오래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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