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 제리의 세 번째 이야기

by 김경미


보리가 나보다 점차 커져가면서 나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날이 많았지.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저 높은 곳에서 빤히 내려다보는 보리를 보면 형으로서 자존심이 땅에 떨어지는 기분이었어. 그러나 어쩔 수 없었지. 어차피 안 되는 것은 빨리 포기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은 거야.

그 대신 보리보다 내가 월등한 것이 있기에 나는 자신만만할 수 있었어.


하나는 나의 이 빛나는 외모지.

내가 앞서도 이야기했잖아. 우리 엄마는 나의 이 어여쁜 모습에 한눈에 반해버렸다고. 그리고 요즘도 매일 품에 안아주면서


“제리 너는 어쩌면 이렇게 예쁘니? 어떻게 이렇게 예쁜 아기가 엄마한테 왔을까? 오래오래 건강해야 한다”


라고 부드럽게 말해 주신다니까!


또 하나는 나의 빠른 발과 강한 이빨을 이용한 사냥 솜씨야.

엄마와 사냥놀이를 할 때면 나는 빠른 발과 강한 이빨로 장난감을 잽싸게 낚아채고는 보란 듯 보리 눈앞을 지나치곤 하지. 일부러 더 느긋하고 당당하게 걸어가면 보리는 경이롭고 부러워하는 표정을 지며 나를 바라보곤 한다니까.

보리는 긴 앞다리를 이용하여 사냥을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빨이 허술하거든. 나는 그 녀석의 약점을 이미 다 파악했다고. 그래서 너무 건방지다 싶을 때는 기습 공격을 해서 보리 등에 올라 타 이빨로 등가죽을 꽉 물고 늘어지곤 해.


그럴 때면 보리는 비명을 지르며 엄살을 떨곤 하지.

다리가 길다고 대수가 아니라니까. 물론 그럴 때마다 보리의 날카로운 발톱이 내 털을 사정없이 뽑아 버리지만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각인시켜 주는 효과는 분명히 있단 말이야.

고양이 세계에는 엄연한 서열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보다 훨씬 커졌다고 해서 내게 함부로 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라고!


내가 얼마나 보리를 위해 형 노릇 하고 있는지 알려줄까?

녀석이 덩치가 커지고 나서부터는 나보다 먹는 양이 엄청 늘었어. 그러나 엄마는 일반 식사 외의 간식은 나와 보리에게 비슷한 양을 담아 주곤 하시거든. 그러면 보리는 게 눈 감추듯 자기 것을 먹어 치우지. 그리고 나선 긴 앞다리로 내 밥그릇을 슬쩍 끌어당겨 내 것까지 순식간에 먹어 치우는 거야.

나는 내 밥그릇을 뺏기지 않으려 난리를 치고 싸움을 걸 수도 있지만 못 이기는 척하고 간식을 녀석에게 양보하곤 해. 덩치도 큰 녀석이 얼마나 배가 고플까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지.

철없는 보리 녀석이 나의 이 깊은 마음을 알 수 있으려는지… 쯧쯧.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이것이 점차 내게서 멀어지는 녀석에게 더욱 형인 척 나의 존재를 나타내기 위한 행동인지도 모르겠어.


보리 녀석은 이제 더 이상 나와 함께 자려하지도 않았어.

나는 예전처럼 이 방, 저 방을 옮겨 다니며 잠을 잤지만 어느 날부터 인가 엄마와 함께 자기 시작했어.

내게 늘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여주고 사랑해 주는 엄마가 언제부터 인가 그 누구보다 소중하게 느껴져.

엄마 곁에만 있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기분이 좋다고. 골골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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