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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선미 Apr 27. 2022

농어카르토초

요리인생

  해가 일찍 지는 요즘 걷는 시간을 찾아내는 것도 일 중의 하나다. 남편과 동네 주변을 걸어보기로 했다. 산책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시어머니 실바나의 전화를 받는다. 거의 2년째 시댁에서 생선, 세제, 생활용품 등을 사주고 있다. 오늘도 생선을 받아가라는 말을 듣고 바로 간다. 처음에는 무작정 받기가 미안해서 이러저러한 말로 거절했지만, 거절이 미덕만은 아님을 깨닫고 기쁘게 받기 시작했다. 움츠린 개구리가 되어보기로 한 거다. 실바나는 도미 두 마리, 오징어 1킬로, 주꾸미 500그램을 사주셨다. 그러면서 저녁을 먹고 가겠느냐고 물어오신다. 남편과 나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그러마 한다. 나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생선요리를 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리조토를 더 잘하지만 오늘은 메인 요리인 카르토초를 해보겠노라고 했다. 


 시댁에서는 생선을 자주 먹는다. 생선을 사 올 때마다 초대를 해주시는 시어머니 덕에 우리도 자주 먹는다. 고기보다 비싼 생선을 지금의 우리는 자주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댁에서는 생선요리는 시아버님이 하신다. 한번 요리를 하면 파스타 한 가지를 하는 게 아니라 식전요리 안티파스토로 홍합 오븐구이, 홍합 소테, 면요리인 프리미로는 바지락 파스타, 메인인 세콘도로 농어 오븐구이 정도로 거의 코스요리를 차려낸다. 그런데 최근 들어 시아버님의 요리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간을 잘 못 맞추거나, 파스타가 너무 마르거나 해서 식구들이 전 같지 않다고 평하기 시작한 거다. 사실 얻어먹기만 해도 황송해야 할 나도 시아버님이 늘 고집하시는 농어 오븐구이는 자주 안 먹는 메뉴가 되었다. 감자를 곁들여 통째로 구워내는 농어는 싱겁고, 또 익은 다음 뼈를 다 발라내느라 식어서 뻣뻣해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해주시던 농어구이나 병어조림 같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그런 생선요리가 생각나는 일이 많아졌다. 여기선 생선을 소금에 절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싱싱한 농어에 굵은소금을 뿌려 하룻밤 재워두면 살에 간이 들면서 단단해지는데, 이때 구워서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이탈리아에서도 바깔라가 있는데 대구살을 소금에 묻어서 저장했다가 소금기를 없애고 먹는 음식이다. 냉동시설이 없었던 때에 해안에서 잡힌 대구를 내륙으로 옮겨서 저장했다고 한다. 이 절인 대구로 만드는 음식은 지방마다 다양한데 로마에서는 발효시킨 밀가루 반죽으로 옷을 입혀 튀겨내는 filetto di baccala가 유명하다. 


 다 식어서 뻣뻣해진 농어가 싫어서 내가 하려는 요리가 카르토초다. 카르토초는 종이나 알루미늄 호일에 생선살을 싸서 오븐에서 익히는 요리로, 시간도 짧고 먹을 때 생선살이 촉촉하고 무엇보다 따뜻해서 좋다. 이 요리의 가장 어려운 부분은 생선살을 바르는 일이다. 사실 생선살만 발라내면 요리의 80 퍼센트는 완성됐다고 봐도 된다. 로마에서는 생선을 살 때 살을 발라달라고 하면 발라주기도 한다. 시댁에서는 늘 하듯이 통째로 익힐 심산으로 살을 발라오질 않았다. 날이 잘 서고 휠 정도로 몸이 얇은 생선 칼이 필요했다. 그러나 날이 다 닳아버려 무뎌진 칼로 정성을 들여 살코기만 발라내고 손가락으로 뼈를 찾아서 일일이 빼낸다. 요리를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입이 다물어지고 입술이 약간 비죽 나오게 되는데 시누와 시어머니는 이게 재밌나 보다. 서로 자기들의 입을 비죽이 내밀어 보며 즐거워한다. 곁에서 즐거운 놀림을 받으며 요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요리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80퍼센트가 끝났다. 시간은 거의 8시를 향하고. 이제부터는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알루미늄 포일을 잘라서 6장, 오븐 종이를 잘라서 6장을 겹쳐서 펼쳐놓고 양파를 얇게 썰어 종이의 한가운데에 올려둔다. 그 위에 약간의 소금과 올리브유를 두르고 생선살을 올린다. 프레쩨몰로를 다져서 뿌리고 소금을 뿌려준다. 알이 작은 올리브와 방울토마토를 곁들이고 각각의 토마토에도 소금과 올리브유를 뿌려주고 종이와 호일을 함께 접어 봉지를 만든다. 200도로 예열된 오븐에서 25분간 익혀주면 접시를 더럽힐 일도 없으면서 각각의 생선요리를 먹을 수 있는 멋진 카르토초가 완성된다. 이 요리의 가장 큰 매력은 생선 맛을 잃지 않으면서 식감과 향기까지 그대로 식탁에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8시 반에 농어 카르토초 완성. 종이봉투를 열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농어가 뽀얗게 익어있다. 아직 뜨거운 생선살을 한 입 떼어먹으니 부드러우면서 달콤하고 사르르 녹는 게 제대로다. 단 간이 약하기 때문에 밥 생각은 나지 않는다. 대신 빵을 조금 뜯어 자작하게 흐르는 소스를 찍어서 먹어본다. 순간 식탁이 숙연할 만큼 조용하다. 갑자기 익숙한 의심이 든다. 맛이 없나 보다. 헉! 이어서 남편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실바나도 양파를 넣어 만든 카르토초는 처음 먹었는데 최고라고 칭찬한다. 너무 맛이 있어서 잠시 말을 안 했던 거였구나. ㅋㅋㅋ 순간 주변이 환하게 부드러워지며 말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이때다. 난 아마도 이런 순간이 좋아서 계속 요리를 하게 되나 보다.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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