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소풍

여섯 권의 일기장

by 송담

1. 꽃 같은 새댁의 팔십 평생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

나무 대문과 흙 담장이 아름다운 초가집으로

참한 색시가 시집을 왔답니다.

새색시는 시부모님을 살뜰히 모시며

딸 아들을 여덟이나 두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 참한 새댁은 열두 식구 살림을 척척 해냈습니다.

새댁의 손길은 요술을 부리듯 무엇이든 만들어 냈습니다.

작은 텃밭을 일구어 온 가족이 먹을 먹거리를 내주었고

봄이면 들판에서 나물을 뜯고 여름이면 산에서 버섯을 따다가

계절마다 맛깔난 음식을 열두 식구 밥상에 올렸습니다.

소박하지만 매일매일 정성이 가득한 밥상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입을 옷을 손수 만들어 내는 솜씨도 빼어나셨습니다.

삼을 심어 삼실을 꼬아 베틀에 걸어 고운 베를 철컥 철컥 짜고,

목화를 심어 솜을 내어 물레를 설설 돌려 무명실을 곱게 자아내어

시부모님과 남편의 치마저고리와 바지 두루마기를 정갈하게 지어냈습니다.

아이들 옷은 뜨개질을 하거나 옷감을 마름질하여 예쁘게 입혔습니다.


계절마다 꽃을 심어 온 집안을 환하게 밝히는 것도 새댁의 감성이었습니다.

장독대 뒤에서는 매년 모란과 작약과 족두리꽃이 피어났고

마당가에는 색색의 접시꽃과 향기로운 국화를 심었습니다.

뒤란에 심은 앵두나무가 이른 봄부터 꽃을 피웠고 보리가 익을 때쯤에 앵두는 새빨갛게 익어서 새콤 달콤한 열매를 한 입 가득 넣고 우물거리는 행복을 느끼게도 해주셨습니다.


열두 식구의 밥상은 두 개가 차려졌고

열두 벌의 수저와 열두 개의 밥그릇 국그릇이 놓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부터 장성한 자식들이 하나 둘 집을 떠나고 혼인을 하면서

수저의 개수가 줄어들었고 밥상도 하나만 차리게 되었습니다.

천수를 다한 시어머님 시아버님이 차례로 돌아가시고

나이를 먹은 새댁은 남편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혼자서 오롯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 할머니가 된 그 새댁의 밥상에는

딱 한 벌의 수저만 놓게 되었습니다.

우리 엄마의 일생 중 80세까지의 인생은 이랬습니다.

그 굽이굽이 기나긴 인생이 어찌 언제나 행복하기만 했을까요.

시골 한 구석에서 부쳐 먹을 논 밭은 식구에 비해 너무 소농이었고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듯이 우환이 닥치기도 했습니다.

그런 집안을 위해 엄마는 언제나 이른 새벽에 일어나 첫 샘물로 정안수를

떠 놓고 가족의 안위와 무사무탈을 빌고 또 빌었습니다.

조상님 전에, 성황당 나무에게, 북두칠성에게, 천지신명에게

부처님에게도 빌며 그저 온 가족 건강하고 행복하기만을 바랐습니다.


그렇게 80 평생을 살아온 엄마가 일기를 쓰게 되셨습니다.

한 겨울 눈이 많이 온 어느 날 엄마를 홀로 지키던 풍산이에게 밥을 주러 나가셨다가 마당에서 낙상하셔 다리를 다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리에 깁스를 하고 꼼짝을 못 하고 답답한 날들을 보내는 엄마에게 일기장을 만들어 선물해 드렸습니다.

심심하실 때 자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일기를 써보시라고 권해드렸지요. 옛날 일이 떠오르면 좋았던 일 궂었던 일도 적으시고, 꼭 기억하고 싶은 일이나 엄마의 인생살이에 대한 생각들도 쓰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후로 일어난 일은 정말 놀라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