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소풍

여섯 권의 일기장

by 송담

2. 오늘도 좋은 하루 데주세요


일기장은 가죽 공예와 고전 제본을 하는 넷째 딸이 만들었습니다.

통가죽에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는 모란문을 새기고 붉은색으로 염색도 하였습니다. 있는 솜씨를 다 부려서 제본을 하고 책등도 아름답게 꾸며 이름까지 새겨 드렸습니다. 빨간 가죽 필통도 함께 만들어 연필 지우개 사인펜 등을 넣었습니다. 뜻밖에 일기장을 받은 엄마는 놀라고 감격하셨습니다.

이런 사연으로 엄마는 80세가 되던 2011년 1월 1일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일기를 쓰실 수 없으셨던 날 며칠을 빼고는 매일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상을 기록하셨습니다. 큼직하고 두툼한 그 일기장에는 혼자서 시골 살이를 하는 엄마의 하루하루가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엄마의 일기는 대부분 ‘오늘도 좋은 하루 데주세요’라는 소박한 기원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기원처럼 좋은 날도 많았지만 외롭고 그립고 슬프고 아픈 날도 많았습니다.


일기를 쓰는 일에 재미를 붙이신 엄마는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일이 취미가 되었습니다. 일기장 한 권을 다 쓰실 때가 되면 넷째 딸이 또 한 권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엄마의 일기 쓰기는 5년을 이어졌고 여섯 권의 일기장이 써지게 되었습니다. 몸이 편찮으셔서 손에 연필을 쥘 힘이 없으실 때까지 일기는 이어졌습니다.

엄마는 1932년 생으로 일제 강점기 시대에 소학교를 다녔고 청년기에 6.25의 참사를 보았던 세대입니다. 22세에 결혼을 하여 시골에서 조용히 한 가정을 돌보며 지냈지만 우리나라가 현대화되는 과정 속에서 세월의 격변을 고스란히 겪으며 일생을 사셨습니다. 때로 텔레비전 뉴스를 시청하시며 시대의 아픔이나 국가 기념일에 대한 엄마의 생각이 일기장에 담겨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4.16에 대해 깊은 슬픔을 느끼시며 유가족들의 고통을 헤아리셨고 현충일에는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젊은 영령들에 대한 사연을 들으시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셨습니다.

엄마의 일기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가족들이 다 떠난 빈 둥지를 홀로 지키며 일상을 어떻게 보내셨는지가 소상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엄마가 사시던 농촌에서는 노령화가 이미 급격히 진행되었고 다들 홀로인 1인 가구 노인들이 많습니다. 이런 시대에 엄마는 잘 적응하시어 마을회관에 가서 친구들과 밥도 같이 해 먹고 윷놀이도 하며 소일했고,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관이나 문화회관의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하셨습니다. 민요를 배우고 장구도 배우고 친목회에서 관광버스로 소풍을 다니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다 주말이 되면 어느 자식이 이번 주에는 찾아 주려나 하고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하기만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기장에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일기장은 엄마가 92세로 소천하신 후 자식들에게 소중한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엄마의 일기장에 적힌 85년의 인생은 꿈결 같은 소풍이었습니다.

그 소풍길을 엄마처럼 나이가 들어 환갑을 맞은 넷째 딸이 엄마의 일기를 더듬어서 따라가 보려 합니다.

이 글은 우리 가족들의 옛일을 되돌아보며 80여년의 긴 시대를 살아 온 엄마를 따라, 우리 가족들이 어떻게든 살아왔고 살아낸 이야기를 풀어가는 일이 될것입니다.

브런치에서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 씩 연재해보겠습니다.


매회 글을 열어주는 그림은 한국화가인 둘째딸이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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