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다. 이곳저곳이 푸르러져서 눈이 즐겁다. 시원한 음식들을 자주 먹을 수 있어 좋다. 얼음 동동 띄운 찬 음료들이 더 맛있어지는 계절.
내가 사는 도시 대구는 ‘대프리카’ 라는 명성에 걸맞게 유독 여름이 이르다. 나는 5월부터 여름을 준비한다. 보고 싶은 여름의 영상들을 모아두고, 여름에 어울리는 곡들을 골라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둔다. 제철을 맞아 수줍게 익은 복숭아를 얼그레이 찻잎에 마리네이드 한다. 오이와 고수풀을 그득 산다. 냉장고에는 늘 시원한 보리차나 우롱차를 넣어 둔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여름이 힘들다. 매해 더 더워지는 것 같은 건 분명 기분 탓이 아닐 거다. 에어컨을 애써 틀지 않으려 해도 리모콘에 자꾸 손이 간다. 땀이 많은 편이라 여름이면 하루에 샤워를 세 번은 한다. 코로나 이후로는 마스크까지 끼면서 도저히 한여름에는 길거리를 걷고 싶지 않아졌다. 좋아하는 푸릇푸릇한 풀들과 쨍한 햇볕을 즐기기는커녕 숨막히는 더위를 피해 실내 공간을 찾기 바빠진다.
내가 비건 식단이나, 제로웨이스트 등 일상에서 기후 행동을 실천하는 이유에는 거창한 것이 없다. 북극의 얼음이 녹아서도 아니고, 어느 섬이 물에 가라앉아서도 아니고, 어떤 거창한 사명감을 갖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여름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
이 이상 더운 여름은 도저히 내가 견딜 수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