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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풀어보는 시드니 여행

by 감자

내가 밤낮없이 울었지만, 그리워질 것 같아 두려웠던 도시. 네게 자랑하듯 오페라하우스를 보여줬다. 나는 비키니를 입고, 너는 나시를 벗고 맨리 비치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계획 없이 먹은 피쉬앤칩스가 십분 넘게 걸어간 곳의 것보다 맛있었다. 본다이 비치의 파도는 거세고, 나는 멀어지는 너의 등을 보며 애틋한 마음을 느꼈다. 엉덩이에 붙은 모래를 털기 위해 다시 바다로 향했다. 파도가 오는 순간에 맞춰 네가 두 손으로 내 허리를 잡고 들어 올려줄 때,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어. 그때 정말 행복했다. 네가 옆에 있으면 어깨까지 차는 물도 무섭지 않았다. 수영을 못 해도 바다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네가 만들어줬지. 담벼락이 만든 그늘에 몸을 숨기고 누워 눈을 감고. 오르락내리락하는 네 가슴팍을 관찰하다 잠에 들었다.

시간이 가. 끝이 와. 나를 살고 싶게 만든 호수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안녕,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그 호수는 몇 명의 눈물을 닦아주었을까? 너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바람을 맞았다. 천국을 예상하게 만드는 순간이 몇 있었다. 결국 기억에 남는 건 따뜻하거나 시원한 것들.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아이에게 몰래 손을 흔든 해 질 녘이나, 돗자리를 깔고 뜨개질하다 맞은 바람에 실려 온 호수의 물방울 같은 것. 너도 그런 순간이 있지? 그건 사진에 담을 수 없어서 마음에 꾹 눌러놔야 해. 언젠가 그리움이 밀려들면 눈을 감고 떠올려야 하니까. 시드니의 바람이 그립다. 앞머리를 가볍게 날리고, 티셔츠 안을 파고드는. 잡은 손의 사이나 맞추는 입의 틈새를 지나가는 바람. 시드니의 바람이 날고 날아서 한국에 올 수 있을까? 그럼 왔구나,하고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까? 언젠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본다면 기대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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