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멈머리 Mar 02. 2023

그래서 뭐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건데?

집구석 폐급 딸이 일등 신붓감으로 둔갑


내가 남자친구라고 소개한 사람을 당연하게도 나는 부모님이 좋아해 줄 줄 알았다. 왜냐면 우리 부모님이 자주 하시던 말이 있는데, (특히 아빠가)


"우리 딸은 누가 데려간다고 하면 아빠가 뜯어말릴 거야. 그렇지만 굳이 데려간다고 하면 아빠는 엄청 잘해줄 거야!"


돌려 말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이건 나를 돌려 까는 말이다. 나의 까칠한 성격과 주변을 잘 돌아보지 않는 성향과 집에서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스타일이 결혼해서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는 쉽지 않은 난이도라는 것을 부모님은 잘 인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높은 난이도의 하자투성이인 내가 그걸 인지하고 서로 보완이 되는 남자친구를 만나서 결혼까지 결심했다는데 그럼 '미안하지만, 감사합니다!' 하고 얼른 보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부모님은 남자친구에 대해서 하나씩 물어볼 때마다 다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일단 시작부터가 크게 한방 먹어서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남자친구와의 결혼선언 직후-


"그래 남자친구 부모님은 뭐 하시는데?"

"이혼하셨어..."


"..." (화목한 집안의 사위를 원했으나 충족 못함)


"남자친구 부모님 연세가 얼마나 되시는데?"

"60대일걸..?"


"..." (비슷한 또래의 사돈을 원했으나 충족 못함)


"그럼 남자친구 부모님 어디분이신데?"

"경상도, 전라도..?" 


"..." (이해가 안되지만 지방이 본적인 사람들에게 선입견이 있음)


"남자친구 학력은 어떻게 되니?"

"학사..." 


"..." (나보다 같거나 더 좋은 학력을 바랐는데 충족 못함)


"남자친구 집은 전세니? 그럼 그거 다 대출이니? 부모님이 도와주진 못하시니? 그럼 다달이 나가는 이자가 한 달에 30만원은 될 텐데 그거 부모님은 못 도와주신다니? 앞으로 계속 그렇다는 거면 그렇게 해서 돈은 어떻게 모으니?"


"요즘 내 동기들 보면 다 전세 대출받아서 살아!!! 부모님이 도와주시는 거 당연한 일 아니야!!!!!!!!!"


이렇게 늘 질의응답 후 싸움으로 끝나고는 했다. 물론 부모님도 내 대답을 들을 때마다 복장이 터졌겠지만 나도 나름대로 지역이라던가 학력이라던가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듣다 듣다 화가 터지곤 했다.


결혼이라는 결정을 앞두어서 신중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진짜로 객관적으로 볼 때 별로라서 그런 걸까? 부모님이 이것저것 물어보실 때마다 다 별로라는 리액션이 내 결심을 약간씩 옅어지게 했다. 남자친구를 마음에 안 들어하는 부모님의 태도에 갑자기 수혜자가 된 건 나였다. 부모님의 남자친구 부정기는 나의 칭찬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너는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뭐 하나 쓸데가 없다"라는 식의 문제 많고 세상 쓸모없는 딸이었던 나는 어느새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일등 신붓감이 되어있었다. 


부모님의 가스라이팅이 나에게도 어느 정도 통한 것인지 몇 주 내내 듣다 보니까 '정말로 내가 잘 못 결정한 건가? 부모님은 나보다 더 많은 걸 보시는 건데 내가 그걸 못 보는 걸까? 부모님을 설득하기 전에 아직 나조차도 확신을 못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결혼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니 역시 나는 어른이 되려면 멀었구나.' 식의 물음이 들었다.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일단 나 자신부터 왜 남자친구와 결혼해야 하는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선언 냅다 질러버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