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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Aug 31. 2023

하나 살까? 활화산

관동대지진 100년- 일본의 지질 이야기

 프랑스 공군 비행사이자 작가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 1900 ~ 1944)의 유작소설 <어린 왕자>(1943)를 보면, 어린 왕자의 별 'B-612'에는 3개의 화산이 있다. 그중 하나는 사화산이고 나머지 둘은 활화산이다. 모두 항상 잘 쑤셔서 청소를 해준다. 폭발의 위험성도 줄이고 아침을 덥혀먹기  위해서이다. 

 

어린 왕자 표지, 열린 책들

우리도 화산을 가져보면 어떨까.  여러 모로 유용할 것 같지만 어마어마한 불확실성과 위험 때문에 선뜻 구매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지구상에는 화산을 갖는 행운이 깃든 사람도 있으니 지금으로부터 거의 80년 전 일본 홋카이도에서 벌어진 일이다.


시골농촌에 화산이 생기다


우스산 전경, 멀리 도야호가 보인다. source: wikimedia commons by Raita Futo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의 기운이 짙어가던 1943년 12월 28일, 홋카이도 남부 우스산(有珠山, 733m) 북서쪽 기슭의 도야코 온천 마을을 중심으로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스산은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활화산으로 반복적으로 분출된 용암이 층층이 쌓인 성층화산이다. 주변에 2008년 G8 회의가 개최된 도야호(洞爺湖)가 자리 잡고 있어 풍광이 뛰어나다. 도야호는 6만 년 전 분출된 칼데라 호수이다. 우스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2000년에는 화산분출이 있었다.



당시 홋카이도 소베쓰무라(현 소베쓰초(壯瞥町))의 우체국장이었던 미마츠 마사오(三松正夫, 1888~1977)는, 1910년에 우스산이 분화했을 때 관측을 나온 도쿄대학의 지질학자 오모리 후사키치(大森房吉, 1868~1923)를 도와 '요소미산(메이지신산)'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관찰한 경험이 있었다.


이를 통해 화산에 관한 지식을 어느 정도 갖고 있던 그는 첫 진동을 느끼자마자 우스산이 활동을 시작했음을 알아채고 알고 있던 화산학자들에게 즉시 상황을 타전한 뒤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전쟁에 필요한 조사와 연구로 바빠 현장에 올 수 없었다. 또 군부는 전시에 이런 천재지변이 일어난 사실을 알면 국민들이 동요한다는 이유에서 사실을 숨기려 했다. 아마도 시골 우체국장의 보고에 신뢰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우스산과 쇼와신산의 위성사진, 출처: google map


그 후 소베쓰 마을을 이루던 보리밭이 점점 불룩해지더니 화구가 생기고 용암이 나오며 몇 차례 분화가 더 일어났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45년 9월 20일, 용암 돔이 솟아올라 해발 407m에 이른 시점에서 화산 활동을 마쳤다. 이렇게  '쇼와신산(昭和新山)'이 탄생했다.


쇼와신산은 정상에 용암탑이 솟아오른 형상으로, 이것을 벨로니테(Belonite) 형(탑형) 화산이라고 부른다. 지금도 가스가 계속 분출되고 있다. 한때 407m까지 솟았으나 현재 해발 고도는 398m이며, 온도 저하와 침식 등으로 매년 낮아지고 있다.


쇼와신산은 데사이트(dacite, 석영안산암)인 점성이 높은 화산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분은 규산염이 많아 안산암(andesite)과 유문암(rhyolite)의 중간이다. 미국의 화산인 세인트헬렌스(St. Helens) 화산을 이루는 암석이다. 지금도 쇼와신산의 표면 온도는 300도 정도 된다고 한다. 


세계 최초의 활화산 소유자


1946년, 미마츠는 개인 재산을 털어 쇼와신 산과 그 일대를 아예 사버렸다. 그의 생각에는 쇼와신산은 세계 최초로 성장 과정이 확인된 '융기형 화산'의 소중한 표본이며, 지구의 파괴력과 생산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일대를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전에 그는 보리밭이 화산이 되어버려 살 길이 막막해진 농민들을 위해 정부와 홋카이도에 도움을 요청을 했으나 거절당했다. 미마츠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재산 2만 8,000엔을 들여 주요 부분 42ha(약 12만 7천 평)를 매입했다. 이렇게 해서 미마츠는 '세계 최초의 활화산 소유자'가 되었다. 아마도 미마츠는 신기한 이 지형이 나중에 투자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1951년에 천연기념물로 먼저 지정되었고, 1975년에는 특별명승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쇼와신산을 사랑한 미마츠 마사오는 1977년에 89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현재는 사위가 미마츠 마사오 기념관 관장으로 있고, 주변에 후손들이 기념품점, 식당, 숙박업소를 운영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얌전한 화산 하나 갖는다면 몇 대가 먹고 산다.


소화신산, Source: wikimedia commons by Raita Futo


쇼와신산은 한때 일반에 공개되어 지열과 가스 분출음을 느끼면서 살아 있는 화산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쇼와신산은 낮은 산이지만 암석이 쉽게 무너지고 등반하기 어렵기 때문에 잘못 미끄러지면 떨어져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산이다.  1977년의 우스산 분화 이후 돔 붕괴의 위험이 지적됨에 따라 지금은 위험하여 정상부 등반은 통제하고 있고 산등성이 정도까지만 올라갈 수 있다.


쇼와신산은 우스산에 속한 기생화산이다. 우리나라 제주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오름이 그것이다. 오름과의 차이는 현재 활동을 하느냐 아니냐다.  활화산을 갖고 싶다면 일단 현재 활동하는 화산을 확인해야 한다(언제 화산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그다음으로는 매입시점이 중요한데, 보통 활화산 인근의 좋은 땅은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어 땅값이 비싸다.


분화하여 화산재나 용암이 흘러내리는 시점에는 쓸모가 없어지므로 가격이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누군가 땅을 팔고자 한다는 가정하에서 말이다. 한번 분화한 화산은 적어도 몇 년 동안은 연기라도 나올 테니 활화산으로 인정될 것이다. 하지만 너무 크게 분화하면 이마저도 공중으로 날아가 버릴 것이다.


이야기는 쉬워 보여도 결국 지질학적 지식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우체국장 출신의 미마츠가 이런 행운을 얻은 것은 꾸준히 지질학자와 인연을 맺은 것이 계기가 됐을 것이다. 아무리 오타쿠 기질이 있다고 해도 한계는 있는 법이다. 사람운이  있어야 좋은 부동산을 얻는다고 하겠다.


세계 최초의 화산 성장 기록, 미마츠 다이어그램


화산학자와 군부의 협력을 하나도 얻지 못한 우체국장 미마츠는 그렇다면 자신이 직접 관찰해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식량도 없고 필름이나 종이조차 부족한 전시에 '분화는 지구의 내부를 연구할 가장 좋은 기회'라는 지질학자의 조언에 따라 식음을 전패하고 이리저리 생각하여 화산 활동을 세밀하게 기록한 것이다. 근무시간에 딴짓을 하여 잘릴 위험을 감수하고 우체국 뒤쪽에 가로로 끈을 매고 그 선을 기준으로 산의 높이를 추정하여 스케치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1945년 5월 12일 시작되어 9월 10일 끝날 때까지의 과정을 4달 동안의 화산 활동이 기록된 세계 최초의 그림인  '미마츠 다이어그램'이 완성되었다.


미마츠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미술을 공부하게 유학을 보내 달라고 했지만, 너는 장남이고 동생이 많으니 안된다는 말을 거절당했다. 할 수 없이 아버지와 농사를 짓다가 우체국에 취직하고 나중에 우체국장까지 지냈다.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가 미술유학을 떠났다면 미마츠 다이어그램은 없었을 것이다. 


미마츠 다이어그램은 두 장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장은 능선의 변화를 그림으로 기록한 '쇼와신산 융기도'다. 그리고 다른 한 장은 활동이 처음부터 끝까지의 관측 자료를 총정리한 것인데, 우체국에서 느낀 지진 횟수와 분화, 융기의 상관관계를 정리한 '시계열 상관관계도'다.


쇼와신산 융기도(미마츠 다이어그램), 출처: 미마츠 마사오 기념관
미마츠 다이어그램을 정리한 모습


이 두 장의 다이어그램은 지리학자이자 지질학자(그 당시에는 서로 구분하지 않았던 듯하다)인 다나카다테 히데조(田中館秀三, 1884~1951)의 노력으로 1948년에 노르웨이 오슬로시에서 개최된 국제 화산 회의에 제출되었다. 회의 참가자들은 전쟁 중에 벽지에서 일어난 화산 탄생의 상세한 기록을 아마추어가 남겼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그리고 미마츠 다이어그램은 화산학 역사에 찾아보기 힘든 업적이 되었다. 참고로 멕시코의 파리리쿠틴 화산(2771m)도 1943년 갑자기 평지에서 생겨난 화산으로 유명하다.


뉴질랜드의 개인 활화산, 화이트섬


또 다른 개인 화산인 화카아리/화이트섬(Whakaari/White Island) 또는 간단히 화이트섬(White Island)은 뉴질랜드의 베이오브플렌티 지방에 있는 북섬에서 48 km 떨어진 화산섬으로, 활화산이다.  섬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는 화카타네, 타우랑가이다. 해저로부터의 높이는 1,600m가 넘는다. 1997년, 공식적으로 '화이트섬(화카아리)'에서 '화카아리/화이트섬'으로 변경되었다.


화이트섬, source: wikimedia commons by Jens Bludau


화이트 섬의 위치, 출처: google map

1769년 10월 1일 제임스 쿡이 발견 당시, 화산 가스가 계속 올라왔다. 현재 화이트섬은 개인 소유이다. 관광 용도나 연구 용도 접근만 가능했으나 지금은 영구 폐쇄됐다. 1953년부터 민간 경관보호구로 지정되었다. 


최소 15만년 전쯤에 생성되기 시작한 화이트섬은 지름 2km, 고도 321m로 면적은 3㎢이다. 안산암 성층 화산으로, 큰 화구 안에 해수면 아래 70m에 유황호를 품고 있다.  뉴질랜드 북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타우포 화산지대의 북단에 있다. 종종 분화도 하며, 중앙의 화산호는 가장 활동적인 화구이다. 분기공까지 있으며, 지금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화산섬에서 나오는 화산 가스는 많이 분출된다.


화이트 섬의 크레이터 내부의 호수, source: wikimedia commons by Javier Sánchez Portero


1900년대 초만 해도 유황 채굴을 위한 광산 사업이 활발했고 그래서 사유지가 되었다. 하지만 화산 폭발로 분화구 가장자리가 무너지면서 광부들이 죽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폐광됐다.


2019년 12월 9일 오후 2시 11분, 화이트섬에서 화산이 분화하였다. 분화 당시 47명이 섬에서 관광 중이었다. 화산 분화 형태는 증기분화(hydrothermal eruptions)이다. 화이트섬 분화는 마그마가 직접 터져 나온 것이 아니라, 마그마로 과열된 지하수계의 증기가 폭발한 것이다. 이런 경우 마그마 분화보다 진동이 갑작스러워 사전 감지나 추적이 더 어렵다. 이날의 희생자는 22명으로 최종 집계되었으며, 화이트섬은 영구 폐쇄되었다. 호주인 14명, 미국인 5명, 뉴질랜드 가이드 2명 등이 희생되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인간은 항상 큰 희생과 더불어 깨닫지만 언제나 너무 늦는다. 


뉴질랜드 정부는 피터(Peter)와 제임스(James) 및 앤드루 버틀(Andrew Buttle) 등 3명의 개인과 ‘Whakaari Management Limited’, 그리고 ‘ID Tours NZ Ltd.’ 및 ‘Tauranga Tourism Services Ltd.’ 등 3개의 관광회사를 기소해 오클랜드 법원에서 재판을 진행하였다.


The Volcano: Rescue from Whakaari


2022년에 아카데미상 후보였던 로리 케네디 (대표작: 라스트 데이즈 인 베트남)가 감독을 맡아 제작한  <더 볼케이노: 화카아리 구조 작전 The Volcano: Rescue from Whakaari>는 화이트섬 사고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대표작: 돈 룩 업)와 론 하워드(대표작: 위 피드 피플)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넷플렉스에서 방영되었다.  다큐멘터리는 사고의 발생과정을 담담하게 담았다. 피해자들과 당시의 목격자 등을 출연시켜 사고의 참담함을 알렸다.  우리나라 EBS <세계테마기행>에서도 사고가 나기 전에 무모하게 촬영을 한 적이 있다.




살아있는 화산은 그 규모와 불예측성이 너무도 커서 살아있는 인간이 소유하기에는 너무 무서운 부동산이다. 운이 좋아 폭발 등의 사고가 없다면 미마츠처럼 부를 누릴 수도 있지만, 폭발이라도 하면 관광수입 몇 푼 얻는 것의 대가로 막대한 인명과 재산피해를 불러오고 뒤이은 소송으로 패가망신에 이를 수도 있다.


어린 왕자는 화산을 잘 관리한다면 폭발하지도 안고 음식을 데워먹거나 사화산은 의자로 사용할 수 있다고 보여 줬다. 아직 우리의 지식은 화산을 관리하기엔 일천하고 의자로 쓰기에는 너무 겁이 많다. 일단 화산이 생기면 무조건 좋아하지 말고 일단 안전한 곳으로 대피한 후, 지질학자를 찾아 조언을 구하는 것이 상책이다. 화산은 멋있지만 소유하기엔 너무 핫한 부동산이다. 


참고자료


1. 사마키 다케오, 재밌어서 밤새읽는 지구과학 이야기 2013, 더숲

2. 사이먼 윈체스터, 땅의 역사: 역사와 경제 그리고 세상을 좌지우지한 욕망의 토지사, 2022, 커넥팅

3.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2015, 열린책들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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