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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Oct 15. 2022

의성 탑리리 오층 석탑과 칼데라

경북 의성의 다양한 볼거리


경북 의성은 땅콩처럼 생겼는데 탑리리가 속한 금성면은 오른쪽 땅콩의 아래쪽에 위치한다. 군위군과 접해 있고 성처럼 생긴 중앙선 탑리역이 있다. 탑리리는 동쪽으로는 금성산(530m)이 솟아 있고 다른 쪽은 충적 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인구 660명(2021년) 정도 되는 작은 지역이다.

금성산은 이웃 비봉산으로 이어지는 지역에 칼데라의 흔적으로 가지고 있어 유명하다. 일명 의성 칼데라라고 하는데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되었다.

의성 탑리리 오층 석탑


의성 탑리리 오층 석탑 남쪽면


동네 이름 탑리리는 마을 중심에 세워져 있는 통일신라시대 전기의 5층 석탑(국보 예전 제77호, 높이 9.6m) 때문에 붙여졌다. 의성의 유일한 국보이다. 보통 탑은 사찰의 마당에 있는데 이 탑 주위에는 마땅한 절터도 없고 탑만 호쾌하게 우뚝 서 있다(참고로 감은사지 탑의 높이는 10m이다).

2m 정도 높이의 둔덕에 위치한 탑은 낮은 1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세운 모습으로 응회암 기단의 일부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고 탑신(몸돌)은 응회암으로 만들어져 있다. 기단부의 화강암은 박리현상이 뚜렷하고 일부 새로운 부재로 교체된 듯 신선한 화강암의 텍스쳐가 그대로 보인다. 즉 하나의 암석 종류로 만든 것이 아니라 두 종류의 암석이 섞인 것이다. 수리하는 과정에 탑의 재질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화강암으로 교체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석조문화재는 보통 화강암이 많은데 탑리리 오층 석탑은 응회암을 사용된 것이 눈에 띈다. 

이명성 등(2012)에 의하면 유문암질 응회암과 응회각력암으로 되어 있으며 금성산 지역의 응회암과 일치한다. 이는 의성 지역이 지질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응회각력암은 응회암에 역암 크기의 화산암이 섞인 것인데 풍화작용에 따라 각력이 먼저 탈락하기 때문에 마치 타포니 같은 구멍이 형성되어 문화재 외관을 훼손하게 된다.


의성 탑리리 오층 석탑의 기단부, 각력이 탈락된 구멍이 보인다.


1층으로 된 기단 위에 5층의 탑신과 지붕으로 되어 있다. 기단부는 14매의 장대석으로 구축된 지대석 위에 이루어졌는데, 24매의 판석으로 면석을 구성했고, 각 면마다 모서리 기둥 2개씩의 안 기둥이 모두 별석으로 되어 있다. 맨 위의 머리장식인 노반은 밑받침만 남고 사라지고 없다. 지붕은 지붕돌을 중심으로 아랫부분이 5층, 윗부분이 6층으로 각각의 암석을 쌓아 층단을 이루도록 만들었다. 4층과 5층의 지붕돌은 하나의 암석을 깎아 만들었다.

돌을 이용하여 벽돌을 쌓아 만든 전탑의 수법을 모방하면서도 부분적으로는 목조 건축의 양식을 띠고 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보면 일종의 모전탑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경주 분황사 모전탑과 비교하여 통일신라 전기의 석탑 양식의 변화를 살피는 데 매우 중요한 문화재이다.

탑신의 남쪽 면에는 감실이 있다. 아마도 불상을 모셨을 듯한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감실의 테두리는 양각으로 조형하여 문틀 같은 효과를 내었다. 1층을 제외한 탑신에는 중앙에 기둥형 장식이 존재한다. 이런 흔적은 목조건축물의 양식이다. 배흘림기둥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부석사 같이 목조건축물에서 주로 사용하는 기법이다.

주변에 높은 지형지물이 아무것도 없고 탑이 높고 크기 때문에 이런 배흘림기둥은 시각적 안정감을 예상하고 제작 당시에 고안했을 것으로 보인다. 의성 탑리리 오층 석탑은 모전석탑과 석탑의 과도기적 모습을 보이며 원형 보존이 잘되어 있고 층별 비례의 적절성을 갖춰 미적 가치도 뛰어나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탑리리 마을에 세워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5층 석탑이다. 낮은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전탑(塼塔) 양식과 목조건축의 수법을 동시에 보여주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단은 여러 개의 돌로 바닥을 깐 뒤, 목조건축을 본떠 가운데 기둥과 모서리 기둥 모두를 각각 다른 돌로 구성하였다. 탑신은 1층이 높으며 2층부터는 높이가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는데, 1층 몸돌에는 불상을 모시는 방인 감실(龕室)을 설치하였다. 지붕돌은 전탑에서 보이는 모습처럼 밑면뿐만 아니라 윗면까지도 층을 이루고 있는데 윗면이 6단, 아랫면이 5단이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 있어 목조건축의 지붕 끝을 떠올리게 한다.

각 부분에서 목조건축의 양식을 응용하는 한편, 곳곳에서 전탑의 조성기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러한 독특한 특징으로 인해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제30호)과 함께 통일신라 전기의 석탑 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조문국


의성 금성산 고분군 출처:네이버 로드뷰


의성 지역은 신라 초기에 북쪽으로 올라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팔공산을 서쪽에 두고 문경-하늘재-충주로 이어지는 길은 가장 먼저 개통된 이동로였다. 이 중 의성지역에는 안계 분지와 금성 분지가 농업 하기에 적당한 넓은 들판을 가지고 있다. 이 중 외부와의 개방성이 큰 안계지역보다는 출입을 통제하기 쉬운 금성지역이 군사적, 행정적 중심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금성산에 있는 금성산성(길이 2,730m, 높이 4m)이 그 증거이다.

탑리역에서 북북서 방향으로 1.6km 위치에 의성 조문국박물관이 있다. 조문국 (召文國)은 삼한시대 초기에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일대에서 세력을 형성했던 부족 국가로 규모는 소국(小國)이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서기 185년 신라 벌휴왕 2년에 파진찬 구도와 일길찬 구수혜가 조문국을 정벌하여 군(郡)으로 삼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고려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조문국에 대한 기록이 전한다.
금성면 일대에는 대형 고분들이 존재하는데 조문국 지배자들의 묘로 추정하기에는 그 조성시기(4세기 후반~6세기 초)가 너무 늦다고 알려져 있어 추가 연구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일부 향토사학자에 의하면 일본의 고사기, 일본서기 등의 역사책에 나오는 고대 일본 천황가의 고향인 고천원(다카마가하라)이 조문국이며, 금성산은 다카지호노미네[高千穂峯]이며, 일본 천황가의 시조가 고대 국가였던 조문국의 왕족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조문국의 존재는 분명해 보이나 아직 사료 간의 차이가 크게 있고 학계의 의견이 통일되지 않아 후배 학자들의 좋은 연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금성산에는 ‘용문’이라는 곳이 있는데 천장에 용이 승천할 수 있게 구멍이 나 있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는 응회암 채석장의 흔적으로 보인다.


금성산 용문


의성 칼데라

의성에서 지질학적으로 많이 알려진 것은 의성 칼데라와 제오리 공룡 발자국 정도이다.

칼데라란 대규모의 화산 분출을 하면 화산 아래의 마그마 저장소에 커다란 빈 공간이 생겨나면서 그 위를 누르고 있던 원뿔 모양의 화산체가 꺼져 함몰 지형이 형성되는데, 일반적으로 지름이 2km 이상일 경우 칼데라, 그보다 규모가 작은 것은 화구라고 부른다. 여드름의 피지가 빠져나온 상태의 모공을 생각하면 된다. 백두산 천지는 칼데라라면 한라산 백록담은 화구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의성 칼데라는 작게는 금성산에서 비봉산에 이르는 원형구조를 이야기하고 크게는 그 주변 약 10km 직경의 원형 구조를 말한다. 오랜 세월이 흘러 지표면에서는 잘 알아볼 수 없지만, 항공사진을 보고 지질도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칼데라는 형성 과정이 다양한 마그마 활동과 조산 운동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광상의 형성과 관련이 깊고 지열 에너지가 풍부할 수밖에 없어 지질학적 주제가 많은 장소이다. 또한 한반도와 주변의 지구조학적 운동 메커니즘과 화산 활동의 특성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이다.


탑리리 쪽에서 본 금성산(왼편)과 비봉산 전경, 출처: 네이버 로드뷰


의성 금성산 일대의 지질도, 원형 구조가 보인다. 출처 : 지질자원연구원
출처 : 손영운의 우리 땅 과학 답사기 2


그러면 금성산을 칼데라 지형이라고 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먼저 금성산 칼데라의 형성 과정을 간단히 그림으로 살펴보자. 


칼데라의 형성 과정, 출처: 한반도 30억 년의 비밀 3부, p.66


지금으로부터 약 7,000만 년 전, 의성에서는 금성산을 중심으로 화산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그 후 시간이 지나면서 화산 밑에 용암이 있던 곳이 빈 공간이 되어 서서히 밑으로 가라앉았고, 가운데 지역이 움푹 들어간 함몰 지역이 되었다(위 그림).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에 의한 침식 작용이 일어나 함몰 지역을 제외한 곳이 깎여 나갔다(중간 그림). 반면에 함몰 지역으로 내려갔던 화산의 가운데 부분은 암석이 쐐기 모양으로 가운데로 집중된 탓에 상대적으로 침식에 강해, 오히려 주변보다 높은 지형이 되었다(아래 그림). 아래 그림에서 가운데에 솟아 있는 것이 바로 오늘날 의성에서 볼 수 있는 금성산과 비봉산이다.


출처: 손영운의 우리 땅 과학 답사기 2


의성에서는 사진처럼 금성산을 중심으로 나지막한 높이의 산들이 빙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 산 중턱에는 화산 활동의 결과로 형성된 응회암 지층(파란색 화살표)들이 연속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금성산 주변의 지질도 및 노두 사진: 출처 : <자연사 기행>, 한겨레신문사


금성산 지역의 지질은 백악기의 경상분지 퇴적암인 하양층군을 화성암인 유천층군이 부정합으로 덮고 있다. 위의 그림은 금성산 주변의 상세 지질도이고, 아래 사진은 금성산 주변의 도로에서 볼 수 있는 유천층군의 붉은색의 셰일층이다. 이 층들은 대부분 금성산 쪽을 향해 큰 경사를 이루며 기울어 있다.
칼데라 주위에는 안산암질 응회암이 쌓여 있고 중심부에는 안산암, 중심부 주변부에는 링 형태로 현무암이 나타난다. 모두 유천층군이다.

의성에 화산이 있었던 이유

화산은 판구조활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백악기 당시의 이자나기판이 유라시아판 밑으로 섭입하면서 화산호가 만들어졌다. 한반도 남동부와 일본에 걸쳐 만들어진 화산대가 그 흔적이다. 경북 영양에서 의성~군위~청송(주왕산)~대구.영천(팔공산)~청도(운문산)~경남 밀양(천황산)~거제를 거쳐 충무 미륵도~남해(금산)~전남 여수 돌산도~고흥~장흥~강진~완도~해남~진도~목포 등으로 이어지는 선이 화산대였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충남 공주, 충북 음성과 영동, 전남의 무등산, 전북의 진안과 내장산, 강원도 태백 통리 등에서 소규모의 독립적인 화산활동이 일어났던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 당시 경상분지 북서쪽에서는 좌수향 주향 이동단층의 활동이 일어나 소규모 인리형 퇴적분지들이 생겼다. 대표적인 퇴적분지는 음성 분지, 공주 분지, 영동 분지, 진안 분지, 능주 분지, 해남 분지 등이 있다. 이들 분지는 역시 문화재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의성 토종마늘

화산재로 형성된 응회암 토양으로 마늘 생산에 적합하여 의성마늘이 특산품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에는 스페인산 종자를 들여와 키우는 대서마늘(난지형)이 많은데 의성 토종마늘(한지형)에 비해 알이 크고 통통하다고 한다. 우리가 많이 먹는 의성 마늘이다. 의성 토종마늘은 따로 찾아 구해야 하고 생김새가 날씬하고 색이 갈색이다. 대서마늘은 쉽게 물러져서 보관이 어렵기 때문에 빨리 먹어야 한다. 가격이 2~3배 차이 나기 때문에 우리가 먹는 것에는 의성 토종마늘은 없다고 보면 된다. 요즘은 대서마늘의 작황이 좋아진다고 하는데 기후변화의 영향을 이곳 의성 마늘에서도 엿볼 수 있어 씁쓸하다.

하지만 의성에서는 마늘 꽃을 볼 수 없다. 마늘은 영양을 마늘에 집중시켜야 하므로 소위 ‘적화작업’을 하여 꽃대를 잘라 버린다. 그래서 마늘 꽃을 보기는 힘들다. 대신 우리가 마늘종으로 장아찌를 담가 먹는다.

참고로 전 세계 마늘의 생산량(2820만 t) 중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중국(79%), 인도(6%), 한국(1.4%) 순이라고 한다(2112, FAO). 하지만 1인당 마늘 소비량은 한국이 으뜸(2017년 기준 6.2kg)이다.

국내의 재배면적 기준 주요 주산지(2021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는 경남 창녕, 전남 고흥, 전남 신안, 제주 서귀포, 경북 의성, 전남 해남, 경남 남해, 제주 제주, 경북 영천, 충남 태안 순으로 많았다. 마늘의 주요 생산지역을 보면 화산암 지역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마늘이라는 작물의 특성이 그런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지질과 식물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사례인 것 같다.

의성 지질공원

의성군은 대표적인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 지대로 경상분지 발달·진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 의성군은 금성면 제오리에 있는 공룡 발자국과 백악기 유천층군인 금성산 등 지질명소 7곳과 금성산 고분군과 낙단보 등 역사·문화·생태적 가치를 지닌 비 지질명소 5곳을 명소로 제시했다.

2022년 7월 제27차 지질공원위원회에서 경북 의성군과 경기 화성시가 제시한 지질명소를 국가지질공원 인증 후보지로 선정됐다고 7월 28일 보도됐다. 의성군은 군 전체(1천174㎢)를 지질공원 후보지로 신청했다. 2년 이내에 탐방시설을 보완하고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조건을 충족하면 국가지질공원이 될 수 있다.

참고문헌

1. 문화재청 홈페이지
2. 손영운, 2013, 손영운의 우리 땅 과학 답사기 2, 살림
3. 의성지역 고분조사 50년과 조문국의 지배세력, 2012 한국고대사탐구회 학술대회 논문집
4. 의성조문국박물관 홈페이지
5. 이명성, 이재만, 김재환, 2012,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의 재질특성과 초음파 물성진단, 한국문화재 연구 45권 No.1 p. 70~85
6. 최덕근, 2014, 한반도 형성사,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7. 최영선, 1995, 자연사기행, 한겨례신문사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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