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이름에 얽힌 지질학 이야기
기아차의 대형 SUV 텔루라이드가 북미에서 2018년 ‘올해의 차’ 최종 후보에 올랐다는 보도가 있었다. 개발단계에서부터 북미시장에 철저히 초점을 맞춘 텔루라이드는 2018년 2월 북미시장에 진출한 이후 월평균 5,000대 이상의 판매량을 보이며 선전 중이다.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전량 생산하는 텔루라이드는 모노코크 타입으로 뛰어난 스타일과 다양한 편의 기능에 합리적인 가격대로 출시되어 가성비 높은 차로 시장에 인식되고 있다. 기아차는 아직 국내 출시 계획은 없다고 밝히는데 하반기 신형 모하비 출시와 현대차 동급 차량인 펠리세이드의 판매 호조 때문이라는 분석이 뒤따르고 있다.
현대차가 미국의 도시 이름을 차량 명칭에 붙이는 것처럼 기아차도 이 차의 명칭을 미국 콜로라도주의 산미겔에 있는 광산 도시 ‘텔루라이드(Telluride)’에서 따왔다고 밝혔다.
텔룰라이드는 1878년에 생긴 광산 마을이다. 1849년에 미국에서 골드러시가 일어난 이후 금을 찾아 모여든 사람들이 형성한 광산 마을이다. 원래 이름은 콜롬비아였는데 1887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해발 2,438m에 있는 이 마을은 겨울 스키가 유명하지만, 가을 노동절 기간에 열리는 텔루라이드 영화제가 가끔 보도에 오르는 정도로 조용한 마을이다.
자료에 따르면 이 마을에서 텔루륨(Tellurium, 원자번호 52)이라는 광물이 나오면서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텔루륨은 깨지기 쉬운 준금속으로 주석과 비슷한 외관을 가지고 있다. Tellus는 라틴어로 지구를 뜻하는 접두사이다. 그런데 실제로 지구에는 많지 않다. 금이나 백금보다도 적은 함량으로 지구에 존재한다. 그 이유는 지구 생성 초기에 고온으로 텔루륨 수화물이 형성되었고 다 증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지구를 뜻하는 단어로 이름을 지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당시에는 원소기호에 태양계 행성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관례였는데(예로 우라늄은 천왕성 Uranus에서 따왔다) 붙일 태양계 행성의 이름이 지구밖에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기율표에서 보면 16족으로 같은 족인 황이나 셀레늄처럼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 텔루륨은 마늘 냄새가 난다. 그러니까 누가 텔루륨을 주면 냄새를 맡아보면 바로 알 수 있다는 이야기다. 현재 그렇게 많이 쓰이는 원소도 아니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금속도 아니다.
화학에서 –ide는 –화 화합물을 의미하는 접미사이다. 따라서 텔루라이드는 텔루륨 화합물이란 뜻이다. 텔루륨은 자연계에서 순수한 형태로 산출되기도 하는데 보통 금의 화합물 형태로 존재하기도 한다. 알다시피 금은 반응성이 매우 낮아 다른 원소들과 거의 반응하지 않고 오래 그 빛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금이 자연에서 화합물 형태로 산출될 때는 대부분 텔루륨, 은과 결합한 형태로 발견된다. 이들을 포함한 광물은 1890년대 세계 각지에서 골드러시를 일으키기도 하였다(여기에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소개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텔루륨과 금의 화합물이 포함된 광석보다는 니켈 등 흔한 금속 원소들과의 화합물에도 존재하므로 텔루륨은 이들 광석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얻는다. 그래서 텔룰라이드라는 마을은 금으로 혜택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텔루라이드는 국내 광산에서도 발견된다. 경상남도 하내 광산은 함 동 열수 맥상광상인데 그 광화시기의 중기에 함 은(Ag) 텔루라이드 광물인 헤사이트(Hessite)와 함 비스무스 텔루라이드 광물인 웨를라이트(Wehrite), 필스나이트(Pilsenite) 등이 소량 산출된다.
가끔 드는 생각인데 현대·기아차에서 요즘 신차 이름을 지을 때 아무래도 지질학자의 도움을 받는 것 같다. 저자 말고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또 있는 것 같다. 그 사람이 궁금하다.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