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일(수) 대만에서 규모 7.4의 강진이 발생했다. 대만 동부의 인구 35만의 관광도시인 화련(花蓮, 화롄) 시에서 남동쪽으로 7km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다. 미국지질조사소(USGS)에 따르면 진원의 깊이는 34.8km였다고 밝혔다. 대만 안전당국은 최소 9명 사망, 1000여 명이 부상당했다고 밝혔다. 이번 지진을 "0403 화련지진"으로 부른다.
2024년 4월 3일 대만 화련 인근 규모 7.4 지진, 출처: USGS
규모도 규모지만 세계적으로 이번 대만 지진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TSMC 등 대만 내 주요 반도체 기업 생산시설 때문이다. 이들 시설은 지진 직 후 가동이 일부 중단되었는데, 그 피해 규모에 따라 전세계 반도체 공급망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신추시 TSMC 공장, Source: wikimedia commons by Arusanov, public domain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애플과 엔비디아 등에 반도체 칩을 공급하는 TSMC는 이번 지진으로 일부 생산시설의 가동을 중단했는데, 조속히 복구하여 생산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TSMC외에도 유나이티드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UMC), 뱅가드국제반도체그룹(VIS), 파워칩(力積電) 등 반도체 기업들도 이번 지진의 직접적인 피해는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일부 공장에서 직원들을 대피시키고 시설 점검을 위해 가동을 중단했다.
고도로 정교한 반도체 팹(fab·반도체 생산시설)은 몇 주간 진공상태에서 연중무휴로 24시간 가동돼야만 하는데, 가동 중단으로 공정에 차질이 생기면 다시 세팅할 때까지 수일에서 수주일이 걸릴 수도 있어 반도체 가격 상승이 뒤따를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대만은 전 세계 최첨단 반도체 생산을 주도하고 있는데, 글로벌 첨단 칩의 80∼90%를 생산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여진이 계속되는 화련 시내, source: wikimedia commond by 화련 시 정부
대만은 제1급 행정구역인 6개 직할시(타이베이시, 신베이시, 타오위안시, 타이중시, 타이난시, 가오슝시), 제2급 행저구역인 3개 시(지룽시, 신주시, 자이시)와 13개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에 지진이 난 화련현은 현 중에서 넓이가 가장 넓고(4,628평방 km) 경기도의 절반보다 약간 적은 정도이다. 대부분을 산악 지대여서 평지는 7%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안가 평지에 거주하고 있다.
타이루거(太魯閣) 협곡을 중심으로 칠성탄 풍경구, 리위탄 등 뛰어난 관광지가 많아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길이 험해 기차를 이용하는 게 편한데, 주말에는 표를 구하기 어려워 한 달 전에 예약해야 한다. 대충 우리나라 강원도 분위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화련시는 울산광역시와 자매도시이다.
4030 지진 시의 중앙재난대응센터, source: wikimedia commons by 대만총통부
1999년 9월 21일 난터우현 지진(集集大地震 또는 921지진)
921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석강수력발전소, source: wikimedia commons by 李元顥, public domain
지난 1999년 9월 21일에 일어난 대만 중부 내륙지역인 난터우현 지진(集集大地震 또는 921지진)에 이어 가장 큰 지진이다. 당시 2,415명 사망, 29명 실종, 11,305명 부상이라는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대만 제3의 도시인 타이중(臺中) 시에 큰 피해를 입혔다. 1935년의 타이중시 대지진 이후 대만에서 발생한 최악의 지진이었다. 이 여파로 2000년 3월 대선에서 정권이 민주진보당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921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동성빌딩, source: wikimedia commons by Ho.siminn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제공: 이놀미디어
중화권에서 기록적인 대기록을 세운 영화가 있었는데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2)라는 로맨스 영화다. 그 후 계속 재개봉이 되고 있다. 지금 봐도 조금은 야하지만, 풋풋하고 개성 넘치는 배우들이 참 매력적이다. 이 영화의 후반부에서 이 지진을 계기로 헤어졌던 커징텅(가진동 분)과 션자이(첸옌시 분)가 다시 연락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진은 강력한 만큼 사람을 갈라놓기도 하고 다시 이어주기도 한다.
이 지진이 일어나기 한 달 전에 튀르키예에서 '1999년 이즈미트 대지진'으로 4만 명 이상이 사망한 바가 있어 지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았다. 당시 리덩후이 대만 총통의 양국론 발언에 격노해 침공을 거론하던 중국의 고 (故) 장쩌민 국가주석도 "양안은 하나의 중국이기 때문에 대만 동포들이 겪은 지진 피해는 중국 인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어떠한 도움이든 적극 나설 것이다."라는 위로를 공식적으로 전했을 정도로 큰 지진이었다. 한국 119 구호대가 파견되어 양국 간 교류에 공헌한 바 있다.
대만의 지질
대만은 기본적으로 유라시아판의 가장자리에 놓여있고, 이번에 지진이 난 화련시를 통과하는 동부 해안 쪽으로 필리핀판 및 오키나와 판과 만난다. 필리핀판은 대만섬을 중국 본토 쪽으로 밀어 올리는 형상이다. 위 그림에서 보듯 판의 경계가 섬의 동부, 중부 및 서부에 섬 방향으로 발달되어 있다.
필리핀판은 대만섬을 중국대륙 쪽인 북서방향으로 매년 7cm씩 밀어 올리고 있다. 지난 400만 년 동안 신생대퇴적물이 약 200km 정도 압축되어 있다. 존 맥피의 <이전 세계의 연대기>에 따르면 이런 속도로 계속 이동한다면 중국이 하나의 중국이라고 주장하지 않아도 먼 훗날에는 중국대륙에 붙게 될 것이라고 한다. 좀 길게 보면 모두가 편안할 것이다.
다행히 오는 5월 20일 임기를 마칠 예정인 민주진보당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지지율이 50%를 훌쩍 넘은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메이리다오뎬쯔바오(美麗島電子報)가 지난 3월의 지지율 조사에서 총통 개인과 정책에 대한 신뢰도와 만족도가 각각 51.4%와 52.2%로 높게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역시 권력자와 주변이 청렴하면 국민이 알아주나 보다. 어려운 시기에 국민이 똘똘 뭉쳐 잘 극복하기를 바란다.
시도 때도 없는 침공위협을 일삼는 중국에 지진의 위협까지 더해 대만은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다. 하지만 저력이 있는 나라인 만큼 빠른 복구가 되어 정상화되길 기원한다.
아무리 로봇, AI시대가 와도 우리가 지구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살아가는 한 지구의 움직임을 피할 수는 없다. 기계, 공장 설비가 정교해질수록 지구의 작은 요동도 크게 다가온다. 보다 겸허한 자세로 지구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하면 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