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선조들은 달에 토끼가 살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아래 사진처럼 달의 육지 부분의 모습이 방아 찧는 토끼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전래동화 토끼의 간(토생전)에서는 불치의 병에 걸린 용왕님이 토끼의 간을 얻기 위해 모사꾼 거북을 보내어 꾀어 불러드렸지만 지혜를 발휘해서 도망간 토끼가 나온다. 이솝 우화에서는 거북이와 경주를 하다가 자만심에 승리를 놓친 허영심 많은 토끼도 나온다.
달 속의 옥토끼, Source: wikimedia commons by Zeimusu
이밖에도 토끼와 관련된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는 동요도 있고, 바니걸스(누군지 아는가)라는 여성 듀엣도 있었다. 애니메이션에 토끼는 단골 등장 인물인데, <벅스 바니(Bugs Bunny)>(1940), <주토피아>(2016), <윌리스와 그로밋-거대 토끼의 저주>(2005), <피터 래빗>(2018),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1988) 등 이루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많다.
배봉산 토끼 혈투
얼마 전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 뒷산인 배봉산 근린공원에서 토끼의 혈투가 벌어져 한 마리가 죽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평소 원한이 있던 두 마리의 수컷 토끼가 우리 문이 열린 틈을 타서, 목숨을 건 결투를 벌였고, 결국 패자는 병원에 실려갔으나 숨지고 말았다. 동물보호단체는 구청의 관리부실을 들어 사과를 요구했다고 한다.
배봉산 토끼는 예전에도 이야기로 회자되었는데, 구청에서 관리하던 토끼를 시민들에게 좋은 뜻으로 분양했지만 버려지고 폐사된 토끼가 많았다는 것이다. 야생 토끼에 대해 소문이 나면 벌어지는 현상 중 하나가, 누군가가 집에서 키우던 토끼를 데려와 버린다는 것이다. 서울 서초동 몽마르뜨 언덕, 송파구 올림픽공원, 안양 수리산, 제주시 오름 사라봉 등에 버리고 자기들은 방생했다고 위안을 한다.
그래서 방사되거나 유기되는 토끼는 그룹을 이루고 더욱 개체수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개체수를 조절기 위해 도심지에 천적을 키울 수도 없고 도심지에서 정글의 법칙이 잔인하게 벌어지는 것을 주민들도 참지 않을 것이다. 결국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하는데, 개체당 25~35만 원에 이르는 수술비를 세금으로 지출해야 하니 그것도 쉽지 않다. 참고로 새끼 토끼 한 마리는 3만 원쯤 한다.
토끼의 번식력
모든 애완동물은 입양이나 분양받을 때, 내가 잘 돌보고 키울 수 있을지 충분히 고민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토끼는 개처럼 짖지도 물지도 않고, 고양이처럼 집사를 무시하지도 않는다. 냄새도 없고 순진한 얼굴에는 절대로 어떠한 악의도 상상할 수 없다.
문제는 토끼의 번식력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토끼는 임신 기간이 30일 정도이며 출생한 새끼도 20일만 돌봐주면 활동이 가능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한다. 게다가 조숙한 토끼는 생후 6개월째부터 임신이 가능한데, 보통 4~12마리를 한 번에 출산한다. 또 출산 후 바로 임신이 가능하다. 그래서 잘하면 1년에 5~6회의 출산이 가능하다. 평균수명은 5 ~ 12년이다.
토끼의 번식력에서 특이한 것은 토끼는 자궁이 2개인 이중(중복) 자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한 번에 두 배의 새끼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또 생식행위에 의해 배란이 유도되는 교미배란을 한다. 즉 별도의 발정기가 있는 게 아니라 언제나 배란이 된다는 이야기다. 어떤 종은 임신 중에 배란이 억제되지 않아 임신 중 임신이 되는 중복임신(superfetation)이 가능하다. 그래서 암수토끼들은 번식의 화신으로 불릴 정도로 교미행위에 진심이다.
피보나치의 토끼
레노나르도 피보나치(Leonrdo Fibonacci, 1170~1250?), Source: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1월 달에 한쌍의 토끼가 있었다. 토끼는 성장하여 두 달 후부터 매달 암수 한 쌍의 새끼를 낳았다. 새로 태어난 토끼도 태어난 뒤 두 달 후부터 매달 한 쌍씩의 암수 새끼를 낳았다. 12월 달에 토끼는 모두 몇 쌍이 되었을까?(단, 토끼들은 절대 죽지 않는다.)"
이탈리아의 수학자 피보나치는 위와 같은 문제를 제시하여 피보나치수열(Fibonacci sequence)로 알려진 수열을 설명했다. 12번째 항의 토끼 쌍의 수를 구하는 문제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체 토끼의 쌍의 수가 늘어나는데, 이것이 단순한 등차수열이 아니다.
피보나치 토끼, Source: wikimedia commons by Romain
결론부터 말하면, 1년째 되는 달에는 모두 144쌍의 토끼 쌍이 존재하게 된다. 피보나치 행렬은 앞 두 항의 값의 합이 다음 항의 값이 되는 수열이다. 현실에서는 한 번에 한쌍의 토끼만 나오는 것이 아니니 더 많은 개체가 나타난다. 이렇게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하는 것이 토끼다.
참고로 피보나치 행렬은 수학, 미술, 건축, 음악 등에서 자주 응용된다. 또 자연계에서도 식물의 가지성장, 꽃잎의 개수, 소라의 나선 모양, 파인애플의 각주름 등 다양한 현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호주의 토끼 전쟁
1859년 호주의 이민자는 무료한 삶을 달래기 위해 사냥감으로 쓸 유럽 야생토끼 13마리를 들여왔다. 하지만 이게 재앙의 시작이었다. 탈출에 성공한 토끼는 어느 순간 개체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려 불과 7년 만에 4만 마리로 늘어났다. 이후 1894년까지 35년 만에 호주 전역에 퍼졌다. 호주에는 토끼의 천적이 될만한 동물이 없었고 맛있는 풀이 지천에 있었다.
잡힌 호주 토끼가 한차 가득 실려 있다. Source: wikimedia commons by National Library of Australia
토끼가 농지를 침범하기 시작하자 농민들은 토끼와 전쟁을 시작했다. 처음엔 울타리를 쳐서 토끼가 못 들어오게 했지만 이것은 미봉책이었다. 적극적으로 사냥을 하고 함정에 몰아넣고 대량으로 살처분하거나 독극물을 살포하고 지뢰도 매설했다. 하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호주 정부는 점액종증이라는 바이러스까지 도입하여 토끼에게 감염시켰지만, 내성을 갖은 토끼가 나타났다. 외래종의 무분별한 도입에 대한 중요한 사례로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다.
현재 호주에 서식하는 토끼의 수는 2억 마리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뾰족한 묘수가 생기지 않는 이상 호주 토끼는 계속 골칫거리로 남을 전망이다.
토끼는 생태계에서 가장 바닥을 차지하는 동물이다. 거의 모든 육식동물이 천적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그들의 전략은 사망하는 개체보다 태어나는 개체를 더 많게 하는 것이다. 생태계에서 토끼는 만만한 먹잇감이 아니다. 털과 가죽을 빼면 별로 먹을 것도 없는 데다 단거리 질주능력이 좋아서 잡기도 힘들다. 게다가 토끼 눈은 360도를 다 볼 수 있기 때문에 토끼에게 몰래 다가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즉 효율성이 떨어지는 먹잇감인 것이다. 인간에게도 마찬가지여서 닭보다 토끼의 사육효율이 떨어져 식용으로는 본격적으로 키우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번식력은 남아서 애완동물로 잘못해서 토끼를 키우면 망하기 딱 좋다. 불어나는 새끼는 감당이 안되지만 귀여운 눈망울을 바라보면 어떻게 하기도 쉽지 않다. 쉬운 생각에 키운 토끼가 도시와 농촌을 구분하지 않고 문젯거리가 되고 있다. 먹잇감으로 쓸모가 없는 토끼는 그래서 생존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즉 쓸모 있다고 다 좋은 건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