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거의 10일째 비가 오면서, 꿉꿉하기 그지없다. 여름에 더운 것은 그러려니 하겠는데 습한 것은 참기 힘들다. 빨래도 안 마르고 옷은 눅눅하다. 감자칩은 종이처럼 팔랑거리고 구운 김도 순식간에 흐느적거린다. 또 냉방이 잘 된 차에서 내릴 때 안경에 이슬이 끼는 계절이 왔으니 여름 중에 상여름이다.
2024년 7월 24일 자 조선일보에는 "사우나 걷는 느낌… 서울 곳곳 습도 100%"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지난 23일 서울 동작구 현충원, 여의도 한강, 중구 예장동에 있는 자동 기상관측 장비(AWS)에 한때 습도가 100%로 나타났다며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습도가 100%면 수영장이나 사우나에 있다는 이야기인가 하고 헷갈릴 수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습도는 상대습도를 의미한다.
서울 동작구 신대방제2동의 예보, 맨 아래가 습도, 출처: 기상청 홈페이지
절대 습도와 상대습도
포화수증기곡선, Source: wikimedia commons by MikeRun
일정한 기압 하의 공기 중에서 물은 온도에 따라 일정한 양만이 들어갈 수 있는데, 이런 관계를 도표로 나타낸 것이 위의 포화수증기 곡선이다. 위 표에서 곡선의 위쪽은 과포화, 아래쪽은 불포화 상태이다. 위 그래프는 아래의 데이터에 의해 그려진다.
습도는 절대습도와 상대습도로 나뉜다.
절대습도(Specific humidity)는 1㎥의 공기 중에 포함되어 있는 수증기의 질량(g)이다. 절대 습도는 기온에 따라 수증기가 포함될 수 있는 최대 값이 이미 정해져 있는데, 당연히 그 최대값은 기온이 높으면 커지고 낮어지면 작아진다. 따뜻한 물에 설탕이 더 녹는 것과 같은 이치다.
상대습도(Relative humidity)는 기준 부피의 기체 중에 실제로 존재하는 수증기의 양을 공기 중에 최대로 포화될 수 있는 (이론적인) 수증기의 양으로 나눈 비값(%)을 말한다.
따라서 보도에서 습도가 높다고 말하면 정해진 온도에서 들어 있을 수 있는 수증기의 이론적 최대값에 거의 다다랐다는 이야기다. 대략적으로 수증기량이 30g이면 30ml를 의미하는데, 이는 화장품 중 에센스의 양이 보통 30ml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가름이 된다. 습도수치는 우리가 핸드폰을 충전할 때 80~90%면 최대 충전량 대비 그 정도 충전됐다고 판단하는 것과 같이 이해하면 된다.
간단히 계산해 보면, 84평방미터의 25평형 아파트의 경우, 층고를 2m로 환산했을 때, 30℃의 기온에서 상대습도를 100%에서 50%로 줄인다면, 총 25리터의 물을 제거해야 한다. 전기와 소음을 딛고 제습을 했다고 해도 문만 열면 습기가 밀려 들어온다. 온도를 내리는 것보다 습도를 낮추는 것이 더 비용이 많이 들 수도 있다.
이슬점
이런 원리에서 이슬점(Dew Point)은 일정한 압력에서 온도가 내려가면서 공기가 습기로 포화되는 순간의 온도를 말한다. 우리가 한잔의 컵에 설탕을 무한정 녹일 수 없는 것처럼, 대기에도 녹을 수(들어갈 수) 있는 습기의 양이 정해져 있으며, 이 온도 밑으로 냉각되면 물체의 표면에 물이 맺히기 시작한다.
기상청 서울 경기 지역 기상관측자료(2024.7.24) 중 이슬점 온도
영화 <듄>에서 보면 물이 부족한 사막에 사는 생명체가 새벽에 큰 귀나 거미줄, 바위 표면에 맺힌 이슬을 핥아먹고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슬점 하락에 따른 수증기의 결로를 이용하는 것이다.
습도와 체감 온도
습도가 높은 날은 체감 온도도 오른다. 체감 온도는 기온에 습도의 영향을 반영해 사람이 실제 느끼는 온도를 말한다. 습도 약 55%를 기준으로 습도가 10% 오를 때마다 체감 온도는 약 1도 증가한다. 기상청이 내리는 폭염 특보도 최고 기온이 아닌 실제 사람이 느끼는 체감 온도를 기준으로 한다.
체감온도가 오르는 이유는 우리 몸이 더울 때 흘리는 땀이 피부에서 증발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기 중에 습기가 많으면 온도가 올라가지 않는 이상 수분이 증발할 수가 없다. 이때 우리 몸은 급격하게 더워지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그러면 바로 불쾌해진다.
불쾌지수
불쾌지수(Discomfort Index, DI)란 미국 시카고 대학의 기후학자 톰 (Thom)이 1957년, 날씨에 따라서 사람이 느끼는 불쾌감의 정도를 간단한 수식으로 표현하는 '불쾌지수'를 제안했다. 불쾌지수는 기온과 습도를 이용하여 계산되는데 이 지수는 여름철 실내의 무더위의 기준으로서만 사용되고 있을 뿐 복사나 바람 조건은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적정한 사용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원래 불쾌지수는 인종에 따라 쾌감대의 범위가 달랐던 것과 같이 DI의 값에 따라 불쾌감을 느끼는 정도도 인종에 따라 약간 차이를 보이고 있다.
[불쾌지수== 0.81 X 섭씨온도 + 0.01 X 상대습도(%)(0.99 X 섭씨온도 - 14.3)+ 46.3 ]로 계산한다.
습도계
실험적으로 정확한 습도를 측정하려면 수증기 포함 공기를 화학적인 건조제 속을 통과시켜 수증기를 모두 흡수시킨 뒤에 흡습 된 건조제의 무게를 측정하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까지 하기에는 시간도 많이 들고 번거로워서 모발·가죽·나무질 등의 유기물이 대기 속의 수증기를 흡수했을 때 나타내는 무게·용량(또는 길이)의 변화로써 측정하는 방법이 많이 채택된다.
아래의 사진처럼 두 개의 온도계에 하나에는 물을 묻힌 헝겊을 감은 형태인 건습구식 온습도계는 예전에 많이 사용됐다. 물의 증발 시에 온도가 내려가는 것을 응용하여 구 온도계 간의 온도차이로 상대습도를 표에서 읽어내면 된다. 단점은 물이 증발되지 않는 낮은 온도에서는 습도를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다이소 등에 가면 간단한 디지털 습온도계를 구입할 수 있는데, 정확성은 보장할 수 없으니 참고용으로만 사용하면 된다.
건습구식 온습도계, Source: wikimedia commons by Crossmr
높은 습도, 조심해야
전문가들은 습도가 높은 날에는 공기가 무겁기 때문에 호흡기환자들은 호흡이 어렵다고 느낀다며 천식, 만성폐쇄성폐질환자 같은 질환을 가진 사람은 호흡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호흡이 어려우면 폐에 충분한 산소 공급이 안 돼 심장 등의 장기도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
습도가 60% 이상이면 땀이 잘 증발되지 않는다. 따라서 체온 조절이 어려워져 온열 질환에 걸릴 수도 있다. 높은 습도는 뇌졸중을 부르기도 한다. 미국 예일대학교 연구팀은 습도가 5% 올라갈 때마다 뇌졸중 환자의 입원율이 2% 상승한다고 발표했다. 높은 습도로 인해 체내 열이 쌓이면, 몸이 땀을 내기 위해 혈액 속 수분을 배출한다. 때문에 혈액 점도가 높아져 뇌경색을 일으킬 확률이 증가할 수 있다. 또 높은 습도로 땀 배출이 잘 안 되면 부종 등이 악화될 수도 있다.
높은 습도는 또 세균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돼 배탈과 설사, 식중독이 유발될 수 있다. 알레르기 원인 물질로 손꼽히는 집먼지 진드기는 습도가 80% 이상일 때 번식이 가장 활발하다. 실내 습도가 60% 이상인 집의 곰팡이 농도가 60% 이하인 집보다 2.7배로 높다고 한다(국립환경과학원). 집먼지 진드기와 곰팡이가 공기 중에 많으면 알레르기 비염이나 천식 같은 알레르기 질환이 증가한다. 무좀 같은 피부 질환자도 크게 늘어난다.
적정 습도
학교보건법에선 유치원이나 학교의 실내 습도를 30~80%로 유지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성인가구 기준 겨울철 실내 적정온도를 18~20℃로, 실내 습도는 40~60%를 유지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범위가 상당히 넓어서 무슨 이야기인지 알쏭달쏭하지만 대략 50% 내외의 습도면 쾌적하다고 느낀다.
실내 적정 습도는 실내 온도에 따라 달라진다. 실내 온도가 15℃ 이하일 때 실내 적정 습도는 70%, 21~23℃라면 습도는 50%가 적당하다. 24℃를 넘는 여름철의 실내 적정 습도는 40%다. 따라서 습도 100%는 말 그대로 아주 적정하지 않은 것이다. 다만 장마철이나 비 온 뒤에는 실외 습도가 실내보다 더 높기 때문에 환기를 피해야 한다.
수영장이나 사우나 물속에서 습도를 이야기하는 것은 습도의 정의에 맞지 않는다. 공기 중의 습도의 양을 이야기하는 것이 상대습도이다. 물론 두 상황에서는 일반 주택이나 사무실보다 습도는 높을 것이다. 기온에 비해 습도는 우리가 소홀히 관리하기 쉽다. 최근에는 습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습기와 제습기의 사용이 일반화되고 있다. 눅눅한 계절, 뽀송뽀송한 이불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현명한 습도관리가 그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