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 지구과학 이야기
영화는 계절에 맞춰 나오는 법이다. 여름에는 공포, 재난 영화가 재격이다. 그중에 여름영화의 백미는 공룡 영화이다. 대표적인 영화인 <쥬라기 공원 Jurassic Park>(1993)은 7월 17일에 개봉됐다. 속편인 <쥬라기공원2: 잃어버린 세계>(1997)는 6월 14일에 개봉했다. 마이클 크라이튼의 <잃어버린 세계>가 원작이고 1,2편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을, 존 윌리암스가 음악을 맡았다.
지질학적으로 쥐라기가 맞는 표현이다. 중생대에 두 번째 시기로 2.13 ~ 1.4억 년까지 5,630만 년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스위스,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지대인 쥐라 산맥에서 발견된 지층이다. 1799년 독일의 박물학자 알렉산더 훔볼트(Alexander Freiherr von Humboldt, 1769~1859, 괴테의 친구)가 지층의 이름에 '쥐라'를 불였고, 쥐라기(Jurassic)라는 이름은 1839년 독일의 지질학자 레오폴트 폰 부흐(Christian Leopold von Buch, 1774~1853, 안산암의 명명자)가 처음 사용했다. 쥐라 산맥은 약 기원전 1억 5천만 년에 형성된 석회암 위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지형이 특이해 요즘 한국 관광객에게도 친숙한 지역이다.
포스터를 보면 6,500만 년 전의 거대한 공룡들이 살아났다고 하는데, 그 시기는 중생대 마지막 시기인 백악기가 끝나는 시점이다. 제목과 포스터도 지질학적으로는 안 맞고, 공룡의 종류도 그 당시 환경과 일치하지 않는데, 뭐 오락영화를 학문적 기준에 맞추는 것은 너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맞춰야지 마구잡이로 만들면 틀린 사실을 전달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된다.
쥐라기가 포함된 중생대는 지금보다 8~10℃ 정도 높은 기온을 나타냈다. 화산폭발과 대륙의 집중에 따른 해류, 바람의 패턴 변화로 매우 따뜻했다. 게다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2000ppm까지 올라가서 매우 더운 기온이 유지되었다. 현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400ppm인 것을 감안하고 상상을 해 보면 잘 이해가 된다. 이렇게 더워지면 공룡이 다시 나타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더위에는 공룡을 찾아 나서는 것도 제철음식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하면 조금 과장일까.
우리나라 현장형 공룡박물관은 경남 고성과 전남 해남이 유명하다. 그밖의 시도에 있는 박물관에는 화석 위주로 전시되어 있다면 이 두 장소는 공룡의 발자국 유적과 함께 공룡 모형을 전시해 놓아 현장감이 높다. 중생대에 공룡이 거닐었던 곳에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공룡이 나타날 것 같은 박진감이 넘친다. 참고로 전남 보성군 득량면에도 공룡알 화석지를 중심으로 만든 공룡공원이 있다.
경상남도 고성군 하이면 자란만로 618에 위치한 공룡박물관이다. 공룡발자국 화석 등 공룡 관련 화석이 많이 분포하는 고성군 홍보를 위해 상족암 군립공원 내에 만들었다. 2004년 11월 9일 개관하였으며, 면적은 대지 7,400㎡, 건물면적 3,441㎡이며, 총 전시면적은 1,447㎡이다.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이다. 국내 최초 공용박물관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상족암 군립공원에서는 해변가를 따라 공룡 발자국 화석을 직접 만날 수 있다. 나무데크로 만들어진 제법 긴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아래 바닷가에 공룡 발자국 화석이 표시되어 있고 각종 퇴적구조를 살펴볼 수 있다. 바닷물에 첨벙거리며 돌아다니기 딱 좋다. 상족암군립공원에는 고성 덕명리 공룡과 새 발자국화석 산지(천연기념물 제411호), 상다리 모양 상족암, 고성공룡박물관이 포함되어 있다.
상족암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신라층군 진동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성암석은 회백색, 회색, 회녹색 암회색, 흑색의 사암과 셰일이다. 이 퇴적암의 두께는 지역에 따라 1000 ~ 1500m에 달한다. 고성에서 진주, 마산까지 노출되어 있다.
1982년 경북대 양승영 교수와 부산대 김항묵 교수의 조사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총 450여 개 발자국 보행열과 3,800여 개 공룡 발자국이 발견됐다. 함께 발견된 새 발자국 화석도 세계적으로 희귀하다. 상족암 지역은 1억 5,000만 년 전 공룡의 서식지로, 발자국 위에 퇴적층이 생긴 뒤 이 지층이 파도에 씻기면서 공룡 발자국이 드러난 것으로 추정된다. 발자국과 함께 다양한 퇴적 구조가 나타나 당시 환경을 살펴볼 수 있어 학술 가치가 높다.
상족암군립공원은 움푹 들어온 해안선을 따라 공룡 화석, 이색 지형 등 여러 가지 현장이 잇달아 나온다. 썰물 때가 되면 일반인도 보기 쉽게 표시한 공룡 발자국 흔적이 드러난다. 제전항 초입 바닷가 퇴적층에 초식 공룡인 용각류와 조각류, 육식 공룡인 수각류의 발자국 등이 화석으로 남았다. 지층과 해식 동굴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남길만한 장소가 많다. 중간에 경상남도 청소년수련원이 자리 잡고 있어 동선이 좀 엉키는 편이다
공룡박물관은 실외에는 다채로운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고 실내에는 화석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은 데이노니쿠스 무리에게 공격당해 위기에 처한 테논토사우루스와 힙실로포돈의 모습이다. 산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어 경치는 좋은데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 에스컬레이터가 있으니 이용하면 편리하다.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에 있는 해남공룡박물관은 2007년 개관된 이래로 매년 약 20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국내 최대 규모 공룡 전문 박물관이라고 하는데, 방문했을 때는 더워서 그랬는지 입장객이 직원수보다 적었고, 공룡 화석과 모형이 훨씬 더 많았다. 해남 우항리 공룡·익룡·새발자국 화석산지 옆에 만들어져 있다. 건축 총면적 약 7,930m²의 박물관 내부는 1, 2층 8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온도를 중생대에 맞춘 듯 더웠다. 번쩍이는 오색불빛과 괴성으로 공룡나이트클럽인 줄 알았다. 이렇게 정신 사납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우항리는 세계 최초로 익룡, 공룡, 새 발자국이 동일 지층에서 발견된 지역으로 박물관을 방문하면 아래쪽 해변가 보호각 3개 동에 선명한 발자국(천연기념물 제394호)을 만나볼 수 있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공룡, 익룡, 새의 발자국화석 및 공룡뼈화석, 생흔화석 등이 다양하게 확인되었다. 500여 점의 공룡발자국과 443점의 익룡발자국 등이 대표적이며, 특히 우항리에서 발견된 두 종류의 물갈퀴 새발자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또한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익룡의 발자국과 대형 초식 공룡의 발자국이 발견되었다.
원래 우항리 화석산지는 바다에 잠겨있던 해안지대였는데 목포와 화원반도를 잇는 금호방조제가 건설됨에 따라 해수면이 낮아지며 우연히 발견된 곳이다. 이후 전남대 허민 교수의 주도 아래 1996 ~ 1998년 발굴 및 정비 절차가 진행되었다. 조사결과 이곳은 과거 중생대 백악기에 얕은 호수와 그 주변부였으며, 전형적인 퇴적구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우항리층은 중생대 백악기의 호성(호수) 퇴적층으로 주 구성 암석은 응회암질셰일, 응회암질 사암, 사암, 역암 등의 퇴적암과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응회암질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Chun and Chough, 1995). 흑색 셰일에서 발견된 소형 갑각류인 개형충(Ostracoda) 화석으로 보아 당시 퇴적 환경은 얕은 호숫가로 추정된다.
발자국이 산출되는 층은 호수 주변부 환경에 퇴적된 뒤로, 화산 폭발로 쌓인 응회암질 사암층이 그 위를 덮은 것이다. 우항리층의 상하부에 쌓인 응회암 퇴적층은 K-Ar 연대 측정법에 따르면 각각 약 8200만 년과 9400만 년이고, 아래에 있는 화산력 안산암은 9600만 년으로, 위에 있는 규장질 응회암은 8100만 년으로 측정되었다. 따라서 발자국층의 연대는 대략 9600만 년 전~8100만 년 전 사이, 후기 백악기 세노바늄 세 [Cenomanian] 중기에서 캄파니아[Campanian] 초기의 것으로 파악된다.
바닷가로 내려오면 3개의 보호각이 먼저 보이고 시원한 실내에는 지층을 정리하여 생흔화석이 보이도록 만들어 놓았다. 시설에는 나름 공을 들여 보기 좋게 만들었다. 제2호각이 익룡 발자국이 있어 가장 중요하다. 원래 해남지역은 중생대에 화산이 많이 폭발한 곳이다. 주변 지층에서도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보호각은 해변과 어우러져 경치 좋은 카페에 온것 같다.
박물관 옆의 정원에는 각종 공룡의 모형이 다채롭게 전시되어 있다. 평지가 아니지만 지형을 잘 이용하여 십 여종의 공룡을 잘 전시해 놓고 있다. 물론 해남지역에서 발견되는 공룡은 아니고 인기스타 공룡들이 총 출연한다. 밤에 볼 수 있으면 무시무시해서 실감 날 듯하다.
이 두 곳과 화순군 서유리 공룡발자국 화석지(천연기념물 제487호), 보성군 비봉리 공룡알 화석산출지(천연기념물 제418호), 여수시 낭도리 공룡발자국 화석지 및 퇴적층(천연기념물 제434호)을 한데 묶어 '연속유산'인 남해안 일대 공룡 화석지라고 부른다. 200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하였다가 안타깝게도 등재불가 판정을 받았다.
두 곳의 공룡박물관은 접근성이 좋지 않다. 인구밀집지역에서 한참을 작정하고 가야 한다. 하지만 가보면 의외로 잘 준비된 시설과 전시물을 만날 수 있다. 자료의 양이 워낙 방대해서 역사박물관 같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게 단점이지만 그래도 모형이나 디오라마 등으로 충분히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벅차면 안내데스크에서 해설사를 청해보는 것이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이다.
두 군데 모두 입장료를 내면 그중 일부를 지역상품권을 주는데 박물관에서 멀리 가면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으니 반드시 인근상점에서 사용해야 낭패를 면할 수 있다. 주변 관광지와 엮어서 1박 2일 정도로 다녀오면 균형 잡힌 여행이 될만하다. 가을엔 전어가 제철이고, 여름엔 공룡이 제철이다.
참고문헌
1. S. S. CHUN, S. K. CHOUGH, The Cretaceous Uhangri Formation, SW Korea: lacustrine margin facies, June 2006, Sedimentology 42(2):293 - 322, DOI:10.1111/j.1365-3091.1995.tb02104.x
2. 디지털해남문화대전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