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알게 모르게 10월 첫 주에 과학부문 노벨상 뉴스를 접하게 될 거고, 무슨 업적인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도 받았으면 좋겠다는 부러움 반 질투심 반으로 10월을 보내면 겨울이 오고 첫눈이 내리면 새하얗게 잊어버리게 된다. 하옇튼 저런 메달 하나 집에 전시해 놓으면 기분이 참 좋을 것 같긴 하다. 게다가 노벨상 상금은 세금도 안 낸다(소득세법시행령 제18조 2항).
알프레드 노벨과 노벨의 유언장, Source: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노벨상(Nobel Prize)은 스웨덴의 발명가 알프레드 노벨(Alfred Bernhard Novel, 1833~1896)의 유언을 기려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관련 기관들이 "매년 인류를 위해 크게 헌신한 사람"에게 시상하는, 세계적으로 크게 권위 있는 상이다. 1901년에 처음 시상했을 때는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문학상, 평화상의 5가지 상을 시상했고, 1968년 노벨 경제학상*을 추가했다. 수학, 지구과학, 천문학은 없다. 상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수여되는 반면, 평화상 만은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수여된다.
* 1968년 스웨덴 국립은행 설립 300주년을 기념하여 제정한 것으로, 정식 명칭은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경제학 분야의 스웨덴 중앙은행상'(Sveriges Riksbank Prize in Economic Sciences in Memory of Alfred Nobel). 엄격한 의미의 Novel Prize는 아님.
1938년 노벨상 수상식, 엔리코 페르미(화학), 펄 벅(문학) 수상. Source: wikimedia commons by Karl Sandels, public domain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큰돈을 벌었다. 하지만 다이너마이트가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어 많은 인명을 살상하게 한 것에 마음이 불편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의 형 루드비히 노벨이 죽었을 때, 프랑스의 한 신문에 실수로 알프레드 노벨이 죽은 것으로 부고기사 오보를 냈다.“그 어느 때보다도 빨리 더 많은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찾아내서 부자가 된 알프레드 노벨이 어제 사망했다”.이 부고기사에서 알프레드 노벨은 ‘죽음의 상인’이라고 불렸다. 그래서 충격을 받은 노벨은 노벨상을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유산의 98%를 노벨상 설립에 남겼다.(하지만 그 누구도 이 기사를 본 사람이 없고 찾지도 못했다고 한다.)
2024년 노벨상 수상자 발표 일정
올해는 폭염이 심했지만 그럼에도 노벨상 위원회는 어김없이 올해의 후보자를 선정하고 누구에게 영애를 줄 건지 결정한다. 몇 해 전에는 수상자가 유출됐다는 사건을 겪었지만 올해는 아직까지는 큰 잡음 없이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이하 발표시간은 한국시간)
10월 07일(월) 18:30 생리의학상
10월 08일(화) 18:45 물리학상
10월 09일(수) 18:45 화학상
10월 10일(목) 20:00 문학상
10월 11일(금) 18:00 평화상
10월 14일(월) 18:45 경제학상
수상자 결정 및 시상식(&부상)
물리학상, 화학상 그리고 경제학상(스웨덴 중앙은행상)은 스웨덴 왕립 과학원이 그 수상자를 결정한다. 생리학·의학상의 수상자는 카롤린스카 의과대학교 노벨총회에서 결정한다. 문학상은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수여한다. 평화상은 스웨덴의 기구가 아닌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에서 수여한다.
평화상을 제외하면, 노벨상은 노벨이 사망한 날인 12월 10일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수여된다. 수상자의 강연은 보통 시상식의 전날 열린다. 평화상과 그 수상자의 강연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보통 12월 10일에 열린다. 강연은 이때 못하면 6개월 내에는 해야 한다.
드레스 코드가 엄격한데, 남성은 연미복, 여성은 이브닝드레스를 입는 게 원칙이다. 단, 자국의 전통의상을 입는 것도 가능하다. 수상자들은 스웨덴/노르웨이 국왕에게 메달과 상패를 수여받는다. 노벨상 수상자는 금으로 된 메달과 표창장, 그리고 노벨 재단의 당해 수익금에 따라 달라지는 상금을 받는다. 2011년 상금은 스웨덴 크로나로 1,000만 크로나(kr, 미화 약 115만 U$, 한화 약 14억 원) 정도였다.
수상자 선정 원칙
노벨상은 수상 대상자가 이미 고인이 된 경우에게는 수여되지 않지만, 수상자로 선정되고 난 후 상을 받기 전에 고인이 된 사람은 그대로 수상자로 유지되고 유족이 대리수상을 할 수 있다(예: 1961년 노벨 평화상, 다그 함마르셸드, 2011년 생리학·의학상, 랠프 스타인먼). 그래서인지 노벨상은 고령자 수상이 많다. 공동수상의 대상은 3명을 넘기지 않아야 하나, 노벨 평화상은 단체나 조직에게 수여되기도 한다.
노벨상은 독창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인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연구, 발명이 있을 경우 그 아이디어를 맨 처음 만든 사람에게 상을 준다. 즉, 원리를 만든 사람에게 상을 주지, 원리를 이용해서 생산이나 응용에 큰 기여를 한 사람에게는 주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명예보다 자기가 번 돈에 만족해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노벨상을 거부하거나 사양한 사람들도 있는데, 현재까지 장폴 사르트르(1964, 문학), 레득토(1973, 평화)가 있다. 수상자가 소속된 국가에서 못 받게 하는 경우도 있는데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958, 문학)는 소련의 압력으로 거부했으나, 1898년 아들이 대신 수령했다.
각종 기록
1) 노벨상 2관왕 : 5명으로 마리 퀴리(1903, 1911), 라이너스 폴링(1954 화학, 1962 평화), 존 바딘(1956, 1972), 프레더릭 생어(1958, 1980), 칼 배리 샤플리스(2001, 2022) 2) 최연소 수상자 : 윌리엄 로런스 브래그(남, 1915, 물리, 25세), 말랄라 유사프자이(여, 2014, 평화, 17세)
3) 최고령 수상자 : 존 B. 구디너프 (2019, 화학, 97세)
4) 가족 내에서 수상 : 10 가족
스톡홀름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
노벨상 수상위원회는 언론발표에 앞서서 당사자에게 미리 수상 소식을 알려준다. 그게 며칠 전이나 하루 전에 알려주는 게 아니라 1시간 전에 알려준다. 수상자발표는 스웨덴 시간 낮 12시경에 하는데, 문제는 수상자에게 전화하는 시간에 수상자가 거주하는 지역의 지역시각은 가지각색이라는 것이다. 수상자가 많은 미국의 경우, 새벽에 전화를 받게 되는데, 누구나 그렇듯이 새벽에 걸려오는 전화는 불길하거나 대길하다(한국에는 오후 7시 전후에 전화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어쨌든 스톡홀름에서 오는 전화를 받으면 과학자는 노벨상 수상자가 된다.
리처드 파인만(1988), Source: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2002년 화학상을 수상한 유일한 학사출신(그것도 전기공학과 출신)인 다나카 고이치(Koichi Tanaka, 1959~)는 영어를 못해서 무슨 노벨 이름을 딴 광고전화인가 장난치나 생각했으며, 1965년 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만(Richard Phillips Feynman, 1918~1988)**은 시차로 인해 수상 소식을 새벽에 알리는 바람(스톡홀름 오전 10시면 LA는 새벽임)에 "왜 자는데 깨우냐"면서 화를 냈으며, 2017년 문학상을 받은 가즈오 이시구로(Sir Kazuo Ishiguro, 1954~)는 예능팀이 와서 몰래카메라 찍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물론 자다가 수상 전화를 못 받고 TV, 인터넷을 보고 아는 경우도 있다. 수상자의 전화번호를 몰라 회사직원, 친적, 전처에게 전화를 돌리기도 한단다.
** 파인만은 노벨상을 받으면 유명해지기 때문에 이걸 싫어해 안 받으려 했는데, 타임지 기자가 안 받으면 그걸로 더 유명해질 거라고 해서 받았다는 일화가 있음.
시상식 이후
매년 12월 10일, 노벨의 기일에 시상한다. 평화상만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시상식이 열리며, 나머지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노벨이 살던 당시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병합된 상태였기에 노벨 사후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분리되며 평화상만이 노르웨이에서 시상식을 열게 된 것이다.
시상식이 끝나면 기념 만찬이 열리고 스웨덴에선 TV로 중계된다. 수상자들은 왕과 왕비를 대면하는 자리를 가지며, 왕은 대화마다 먼저 말을 건넬 특권이 있다. 12월 11일에는 수상자들이 스톡홀름 콘서트 홀에 모여 각자의 연구 성과와 앞으로의 발전에 대해 토론하는 "Nobel Minds"가 있는데 역시 TV로 중계된다. 이 자리는 당해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한데 모이는 유일한 기회라는 의의가 있다. 공식적인 자리가 끝나면 수상자들은 각자의 수상 분야 주관처에서 여는 성녀 루치아 축일(12월 13일) 행사에 참석하게 된다고 한다.
모든 행사가 완료되면 수상자들은 고국으로 금의환향해서 노벨상 수상 강연을 하고 정부, 기업, 학계 등 각계각층에서 몰려오는 초청강연요청, 자문요청 등을 받으며 학문과 평화 발전의 상징인물로 영향력,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살게 된다. 2013년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렌디 세크먼(Randy Wayne Schekman, 1948~)은 수상 강연 이틀 뒤 영국신문 <가디언>에 '네이쳐, 셀, 사이언스 등 학술지가 어떻게 과학을 망치는가'라는 칼럼을 기고해서 학계를 뒤집은 적도 있다.
올해의 후보 예측
수상자는 각 부문 학계에서는 회자된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일반인에게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문학상은 지역별, 장르별로 분배하는 경우가 있고, 평화상은 다분히 세계정치상황과 연동되기 나름이어서 객관성은 과학부문보다 떨어진다. 경제학상 역시 뒷말이 많은 부분이며 선진국 위주로 줄 수밖에 없고 이론 자체가 과학적 객관성을 띄기 어렵다. 어쨌든 노벨상 위원회는 후보 명단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기 때문(50년 뒤에 공개된다)에 예측은 상당히 주관적이다.
2024년 9월 19일 글로벌 정보 분석업체인 클래리베이트(www.Clarivate.com)는 논문 피인용 건수를 기준으로 올해 노벨상 과학 부문(경제학 포함)의 수상 후보로 여겨지는 ‘피인용 우수 연구자’를 발표했다. 6개국 소속 22명을 지명했다. 클래리베이트는 2002년부터 피인용 횟수 상위 0.01%인 연구자들을 발표해 왔으며, 이 중 75명이 노벨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 동안 몇 명이 후보 발표에 포함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노벨 문학상에 관심이 많은 출판계가 참고하는 건 도박 사이트다. 2006년 영국의 온라인 도박 사이트 레드브룩스(https://sports.ladbrokes.com)가 그해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을 맞히면서 해마다 노벨상 때가 되면 이 사이트를 찾는 사람이 늘어난다. 노벨위원회가 성별, 장르별, 대륙 안배*** 등을 고려해 수상자를 결정하는 경향이 있어, 최근 유럽 출신이 연달아 상을 받았으니, 올해는 아프리카나 아시아 출신이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식으로 후보가 압축된다고 한다. 전례를 보아 10월 2일경(현지시간) 후보자가 사이트에 올라오리라 생각된다.
*** 참고로 이전 5년간의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2019년 페터 한트케/오스트리아/희곡, 2020년 루이즈 글뤽/미국/시, 2021년 압둘라카크 구루나/탄자니아,영국/소설, 2022년 아니 에르노/프랑스/소설, 2022년 욘 포세/노르웨이/소설
한국은 노벨상 콤플렉스가 있어 해마다 10월이면 노벨상병을 앓는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고, 한국 출신자 1명(1987년 화학상 찰스 피더슨, 부산출생)이 이미 노벨상을 받았지만 우리 국격에 걸맞은 인정을 받고 싶은 건 여전하다. 올림픽도 월드컵도 해봤고 수학 부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도 받아 봤으니, 있는 사람이 더한다(?)고 과학 부문 노벨상도 기대해 본다. 하지만 노벨상은 하루아침에 안되고 그 기반이 조성되어야 하며, 설령 한국출신 과학 부문 수상자가 나온다고 해도 해외에서 연구활동을 이어가던 학자가 받을 개연성이 높다. 한국의 노벨상 수상소식을 애타게 기다린다면, 그동안 우리가 한국에서 열정을 받치는 과학자들을 어떻게 대우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