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지질학
산은 단풍으로 물들고 강은 모래펄로 빛나는데 山明楓葉水明沙
삼봉은 석양을 이끌며 저녁놀을 드리우네 三島斜陽帶晩霞
신선은 배를 대고 길게 뻗은 푸른 절벽에 올라 爲泊仙槎橫翠壁
별빛 달빛으로 너울대는 금빛 물결 보려 기다리네 待看星月湧金波
퇴계 이황 (李滉:1501-1570), 도담삼봉
지방을 여행하다 보면 먼저 길을 다니는 차량에서 그 지역의 특색을 읽게 된다. 마늘, 양파, 무 등 농작물이 유명한 동네는 그걸 실은 차들이 많고, 나무가 유명한 곳은 나무 실은 차가 바삐 움직인다. 돌이 유명한 곳은 돌 실은 차가 유독 눈에 띄는데 화강암이 많은 거창, 포천이 그렇다. 또 단양도 그러한데 여기는 석회암 실은 차가 번잡하다.
우리나라 지질도를 보면 충청북도와 강원도에 고생대 오르도비스기에 퇴적된 석회암이 많이 분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암석들이 포함된 지층을 조선누층군이라고 부른다. 단양, 정선, 삼척 등의 지역이다. 알다시피 석회암은 시멘트, 제철 등의 원료로 쓰이며 우리나라에 매장량이 많은 고마운 지하자원이다. 오늘의 한국을 만든 지하자원 중 으뜸일 것이다. 그래서 단양 여행은 석회암과 관련된 여행이 될 수밖에 없다.
도담삼봉은 단양의 랜드마크로 수상바위다.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로 재직할 때 붙였다는 단양 8경 중 하나로 충북에서 아마 가장 유명한 관광지일 것이다. 예전에는 소풍장소로 인기 있었다 한다. 지금은 충주댐건설로 1/3 정도가 잠겼지만 배를 타고 볼 수 있고 강물에 비치는 경치가 그럴듯하다. 하지만 국도에서 도담삼봉을 보려면 입장료를 내고 공원으로 들어가야지 길가에 차 한 대 댈 공간도 없다.
3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크기별로 장군봉, 처봉, 첩봉이라고 부른다. 장군은 첩을 바라보고 있다. 자못 봉건적이다. 그래서 아버지봉, 아들봉, 딸봉이라고도 부른다. 장군봉에는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 지었다는 삼도정이 있다. 정도전의 호 삼봉(三峯)도 여기서 따왔다고 한다.
설화에 따르면 정선군 관리들이 도담삼봉은 홍수 때 떠내려 왔으니 세금을 내라고 했다고 한다. 이에 총명한 소년 정도전이 물길도 막고 번거로우니 도로 가져가라고 해서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주변 언덕에 정도전의 동상을 만들어 앉혀 놓고 찾아가는 사람에게 돈을 받는다. 정도전은 꿩도 먹고 알도 먹은 것이다.
도담삼봉은 카렌(karren) 지형이다. 지표에 노출되어 있거나 묻혀 있는 석회암이 이산화탄소를 머금은 빗물에 의해 선구조의 면을 따라 녹아 나타나는 석회암 지형이다. 라피에(lapies)라고도 한다. 일본 히라오, 호주 피너클 카르스트, 중국 구이린 등이 유명하다. 도담삼봉 주변에도 석문 등 카르스트지형이 널려 있다. 볼 수 있는 눈과 지식만 있다면 세상은 달라 보인다. 단양은 석회암 지역의 경치를 만끽해 볼 수 있는 특별한 지역이다.
도담삼봉 북쪽에는 성신양회 단양 제2공장이 있다. 북서쪽 솔미산(467m)에는 한일시멘트 단양채석장이 있고 삼보광업도 있다. 이렇듯 단양은 우리나라 석회석산업의 중심지다. 근처에 도담역이 있지만 화물을 위주로 하는 역이어서 열차로 가기는 불편하다.
단양은 경기에서 가까워 선비들의 유람 코스 중 손꼽는 지역이었다. 퇴계 이황도 단양에 군수로 부임하여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도담삼봉은 여러 화가들이 그린 작품이 전해진다. 겸재 정선의 삼도담, 단원 김홍도의 도담삼봉도, 이방운의 도담 그리고 칠칠 최북의 단구승유도가 그것이다. 작가에 따라 도담삼봉을 바라보는 시각이 확연한 차이가 나는 것이 재미있다. 진경산수에 영향을 받은 화가도 사실적으로만 그리지 않았다.
최근 단양이 다시 화제가 됐는데 BTS 때문이다. BTS의 뮤직비디오 중 <'낫 투데이(NOT TODAY(2017>를 보면 이국적인 장면이 나온다. 황폐한 산을 배경으로 군무를 추는데 석양과 어우러져 낯선 장면을 보여준다. 이곳은 단양 매포에 있는 모 시멘트회사의 채석장으로 알려졌다. 석회석 산 전체를 경사로를 이용하여 깎아내고 있는 현장이다.
방탄소년단은 국내의 명소에서 이국적인 화면을 담은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제천 의림지 비행장이나 새만금 간척지, 영덕 경정항, 양주 일영간이역 등이 촬영 후 명소가 되었다. 국내 관광객뿐 아니라 해외팬들도 찾아온다고 한다. 하지만 단양의 촬영지는 현재 운영하는 채석장이어서 가볼 수 없어 단양관계자들의 가슴이 타들어 갈 듯하다.
석회암은 동굴을 만들기 쉬운 암석이다. 이미 여러 관광 동굴이 있고 석기시대 유적지도 여러 군데이다. 그중 접근이 편한 상시바위그늘 선사유적지는 잘 정리되어 있어 지나는 길에 잠시 들를 만하다. 5번 국도 중 삼곡역에서 단양 방면으로 3km 정도에 팔경휴게소가 있고, 바로 뒤편에 위치해 찾기 쉽고 주차도 편하다. 편의점 뒤에 석회석 덤프트럭이 서있는 곳에도 바위가 페인 곳이 있는데 이곳은 신석기 유적이 아니고 우리 시대의 기사들이 잠시 쉬는 장소다. 유적은 약간 오른쪽에 있다.
상시유적은 3개의 바위그늘로 구성되어 있다. 신석기시대의 동굴 유적으로 빗살무늬토기, 석기와 뼈도구들이 발견되었다. 빗살무늬가 적은 편으로 토기의 입술 부분과 몸체 부분에 일부만 그려져 있어 신석기 중기의 유물로 해석된다. 석기는 근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석재를 썼다. 송곳, 창끝, 찌르게 등 간석기가 출토되었다. 이외에 특징적인 것은 서식지가 동남해안인 투박조개로 만든 팔찌가 출토되었다는 점이다. 신석기시대에 교역 관련된 단서를 제공해 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토양은 식물의 국지적 분포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석회암토양이다. 석회암지역에서 잘 자라는 식물을 호석회식물(好石灰植物)이라고 한다. 갈기조팝나무, 개부처손, 굴참나무, 돌마타리, 측백나무, 회양목이 대표적인 식물이다. 또한 석회암지대에는 낮은 지역에서도 북방계 고산식물들이 많이 자라는 특징이 있다. 이들은 빙하기의 잔존식물이다.
상시유적에서 북동쪽으로 터널길을 지나면 바로 ‘단양 영천리 측백나무 숲(천연기념물 제62호)’에 이른다. 측백나무(側柏, Thuja orientlis)는 잘 자라는 상록교목으로 25m까지 자라지만 이곳 석회암지대에서는 1~2m 정도의 작은 나무군락을 이룬다.
영천리 측백나무 숲은 측백나무가 석회암지대에서 잘 자란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참고로 대구시 도동에 있는 측백나무숲도 천연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밖에 삼청동 총리공관 내의 측백나무(천연 제255호), 안동 구리의 고산서원 건너편 강절벽의 측백나무 자생지(천연 제252호)가 유명하다.
단양은 석회동굴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지역이다. 충청북도에 291개의 자연동굴이 존재하는데, 이 중 202개가 단양에 소재하고 있다고 한다(수양개 선사유물전시관 자료). 천연기념물 제256호인 고수동굴, 천동동굴, 온달동굴, 노동동굴이 다 석회암 동굴이다. 석기시대 사람들도 짐승을 피하고 한기에서 벗어나고자 우리보다 절실하게 동굴을 찾았고 많은 유적을 남겼다.
단양은 지난 2020년 7월에 국내 13번째로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되었다. 도담삼봉과 석회동굴 외에 다리안 부정합, 두산활공장, 사인암, 선암계곡 등의 12개 지질명소가 지정되어 있다. 지질공원 중 카르스트 지형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지방에서는 특산물을 실은 차를 조심해야 한다. 마늘, 양파, 배추는 비교적 작은 차로 옮기지만 석회암은 덤프트럭으로 실어 나른다. 특히 한적한 이 구간의 5번 국도에는 석회암 채석장과 시멘트 공장이 많으니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석회석 광산은 매우 위험한 곳이니 일반인은 절대로 허가 없이 접근하면 안 된다.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