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의견으로 만들어지지 않아요. 여러분들이 원하지 않는 곳에 있다고 하여 여러분이 아무 곳도 아간 것은 아니에요 -테일러스위프트, 2015, 런던 콘서트 중-
한때 지구상 인류가 동시에 뛰어올랐다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하는 과학질문이 떠돈 적이 있었다. 지구 인구가 하도 많으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 나온 질문이다. 미리 답을 말하면 지구에 아무 일도 벌어지진 않는다. 지구의 무게는 5.97*10^24kg로 상대도 안되게 크기 때문에 느껴지는 임팩트는 없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시애틀 공연
얼마 전, 미국가수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33세)의 시애틀 공연 소식이 신문과 방송에 실렸다. 워낙 유명한 가수라서 전 세계 투어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이번 기사는 조금 색다르다.
테일러 스위프트, Source: Wikimedia commons by minds-eye
뉴욕타임스와 CNN에 따르면 스위프트는 2023년 7월 22일과 23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루먼필드(Luman Field) 경기장에서 공연을 진행했다. 1회 공연당 관객 규모는 7만 2,000명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스위프트가 공연을 하는 동안 인근 관측소 지진계에서 규모 2.3에 해당하는 진동이 감지됐다.
CNN 인터뷰에서 재키 카플란-아워바흐 웨스트워싱턴대 지질학 교수는 "이틀간 열린 두 차례 공연에서 모두 같은 패턴의 신호와 데이터가 감지됐다"며 "(두 데이터를) 겹쳐 놓으면 거의 동일하다"라고 말했다. 이 진동은 팬들의 함성과 움직임, 공연장 사운드 시스템 등으로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일명 '스위프트 지진'으로 불리는 이번 진동은 2011년 같은 장소에서 열린 미국프로풋볼(NFL) 시애틀 시호크스 경기 도중 관측된 이른바 '비스트 지진'보다 강하다는 게 지진학자들의 분석이라고 한다. 당시 '비스트(괴물) 모드'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선수 마션 린치가 터치다운에 성공하자 관중들이 일제히 일어나 환호했는데, 당시 지진계에 규모 2.0 진동이 감지된 것을 말한다.
비스트 지진과 스위프트 지진의 지진파 비교, 출처: CNN 테일러 스위프트의 2차례 공연 시 지진파 비교, 출처:CNN
루멘 필드(Lumen Field) 경기장
루멘 필드 경기장, Source: wikimedia commons by Priyaranjan Pattnayak
2002년 준공된 루멘 필드 경기장은 NFL 시애틀 시호크스와 MLS 시애틀 사운더스 FC의 홈구장이다. 좌석은 69,000석에 특별 행사를 위한 3,000석이 더 마련되어 총 72,000석까지 들어갈 수 있다. 사이드라인 쪽 관중석을 완벽하게 커버하는 두 개의 커다란 지붕이 특징인 경기장이다. 개폐식 돔은 아니다.
음향학적으로 볼 때 커다란 지붕이 관중 함성과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구조인지라, NFL에서 가장 시끄러운 경기장 중 하나로 악명 높다. 한때 기네스북 기록을 가지고 있었으나(137.6 dB), 현재는 캔자스시티 칩스의 홈구장인 애로헤드 스타디움에게 내준 상태이다(142.2 dB).
"비스트 지진" 당시 마션 린치(왼쪽)와 마이크 윌리엄스, Source: wikimedia commons by Kelly Bailey
앞에서 언급했듯이 인공지진이 발생했던 적이 있다. 10-11 시즌 NFC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뉴올리언스 세인츠와의 경기 막판에 팀의 간판 러닝백이었던 '비스트모드' 마션 린치가 세인츠의 수비를 뚫고 67야드짜리 역사적인 터치다운을 성공시켰다. 이를 본 관중들이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 뛰는 바람에 근처의 지진계에 진도 1~2 사이의 진동이 기록되었다고 한다. 이를 일명 '비스트 지진(Beast Quake)'라 부르며, 아직까지 시호크스 팬들의 가장 자랑스러운 역사로 남아있다.
비스트 퀘이크 당시의 궤적, Source: wikimedia commons by Amada44
루멘 필드 경기장, Source: wikimedia commons by Seattle Municipal Archives
인공지진
사람의 인위적인 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것을 ‘인공지진’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인공지진의 자원의 탐사나 채광을 위해 폭발물을 터뜨리는 경우 발생한다.
영국 더럼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인공지진의 발생 원인은 대부분 ‘광업’이다. 석탄이나 금속을 채취하기 위한 시추 작업, 석유나 천연가스의 프래킹(수압 파쇄법 : 지하 암반에 초고압의 물을 주입해 균열을 발생시키는 채취 방법)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 외에도 건축물, 도로, 댐 건설 등을 위한 발파도 인공지진의 원인이 된다.
특히 진도가 큰 것은 핵실험이다. 미국이 1971년 알래스카 주 암치토카 섬에서 실시한 지하 핵실험에서는 규모 7.0의 거대한 인공지진을 일으켰다. 북한이 실시하는 핵실험도 우리의 관측망에서 측정되는데, 지금까지 6번의 핵실험이 있었고 마지막인 2017년 9월 3일의 6차 실험은 규모 6.3이었던 것으로 미국지질조사소(USGS)는 밝혔다. 이러한 실험이 계속되면 백두산의 분화를 촉진할 수도 있다는 염려가 나오고 있다.
워싱턴 주 땅의 구조
캐스케이드 산맥 근처의 판구조, source: wikimedia commons by Surachit
시애틀이 위치한 워싱턴 주는 조용한 지상의 분위기와는 달리 다이내믹한 지질구조를 가지고 있다. 태평양 쪽 작은 판인 푸앙카레 판이 동쪽으로 북미판 아래로 섭입 하면서 세인트 헬렌스(1980년 분화), 아담스 화산, 레이니어 화산, 베이커 화산 등을 만들어냈다. 시애틀은 위도가 높고 항상 안개가 껴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낼 것 같지만 땅 아래에는 마그마가 부글거리는 지역이다. 하긴 지질학적으로 역동적인 곳에는 예로부터 사람들이 모여 산다. 땅의 역동성이 그 위에 사는 사람에게도 전해지는 모양이다.
스위프트의 선택의 결과
태일러 스위프트는 어린 나이에 컨츄리 가수로 데뷔했다. 카우보이 모자에 청바지를 입은 턱수염의 아저씨가 기타를 치고 부르는 그런 노래이다. 우리가 잘 아는 컨츄리가수는 윌리 넬슨, 돌리 파튼, 케니 로져스, 존 덴버, 기스 브룩스 등이 있다. 컨츄리는 우리로 따지면 트로트 같은 국민 정서를 담은 노래다. 요즘 갑자기 컨츄리가 다시 뜬다고 한다. 너무 테크노화 된 댄스 가요에 대한 역작용이 아닌가 생각된다.
스위프트는 중간에 pop으로 장르를 바꿨다. 수많은 염문과 선행이 보도되고 있다. 스위프트가 공연을 하면 그 지역의 경제가 살아나게 되는데, 이를 '스위프트노믹스'라고 한다. 2023년 8월에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공연으로 지역경제에 3억 2천만 달러의 경제효과가 발생했다고 보도됐다. 이번 공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컨츄리 노래를 불렀다면 이런 지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선택은 세상을 뒤흔들 수도 있는 것이다.
누가 이런데 관심이 있을까
재키 카플란 아워바흐 교수, 출처: 웨스턴 워싱턴 대학 홈페이지
이번 연구를 발표한 재키 카플란-아워바흐(Jackie Caplan-Auerbach) 교수를 검색하면 일반 웹사이트로는 이번 기사 말고 나오는 것은 별로 없다. 예일대학교에서 물리학 학사를 마치고 하와이 대학에서 박사를 받았다. 알래스카 페어뱅크스 대학교, 미국 지질 조사국에서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을 마친 후 2006년부터 웨스턴 워싱컨 대학에서 근무했다. 주요 연구분야는 화산과 산사태에 의해 생성된 지진 및 음향 신호이다.
아워바흐 교수는 이런 대단한 공연을 가는 대신 간단한 의문을 가지고 연구실에서 연구를 한 공붓벌레인 것 같다. 두 번의 지진이 왜 파형은 똑같은데 시간이 30분 정도 지연된 것에 고민을 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둘째 날 공연이 그만큼 지연됐고, 순조로운 프로그램 진행으로 똑같은 지진파가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공연장의 흥분도 좋지만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재미난 결과를 얻고 만족하는 사람이 학자이고 지질학자이다.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