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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보라 Aug 20. 2024

"결과는 정해져 있다. 열심히 할 뿐"

금메달리스트의 멘탈


-경기를 앞두고 긴장하지 않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항상 시합 뛸 때마다 제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이 있는데요. 

항상 결과는 정해져 있고 그냥 나는 열심히 할 뿐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사진출처: 뉴시스


고수의 멘탈


한국 펜싱 사상 첫 올림픽 2관왕(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단체 금메달)의  쾌거를 이룬 오상욱 선수의 말이다. 새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금메달리스트의 멘탈은 한없이 담백하고 깔끔하다. 자만하지 않고 흔들림도 없다. 만에 하나, 금메달이 아니었더라도 오상욱 선수는 저렇게 인터뷰했을 것 같다. 


요행을 바라지 않고, 주어진 '지금' 최선을 다하는 일.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을 만큼 현재에 충실했기에 결과가 어떠하든 깔끔히 승복하고 받아들이는 마음. 진정한 고수의 멘탈이다. 종교로 치면 해탈일지도 모르겠다. 결과를 덤덤하고 담백하게 받아들이기까지 선수는 얼마나 깊은 질곡을 건너 역경을 헤처 나가야 했을까. 


매일매일이 고비였을 것이다. 스스로를 의심해 본 적도 여러 날이었을 것이다. 부상도 피할 수 없는 필연이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라야 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일어났고 다시 칼을 쥐었다. 그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자, 가장 가치 있는 일이었을 테니까.


'새 역사'를 눈앞에 둔 순간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때로는 흔들렸겠지. 욕심도 났겠지. "너 자신을 믿어라" 동료의 응원 한 마디가 그를 다잡았고,  한 발 더 나아가 일격으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타고난 건 재능이 아니라 '노력'이 아닐까


192cm의 압도적 피지컬과 상대를 뛰어넘는 스피드. 타고난 재능 덕분이다 싶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오상욱 선수는 또래보다 키가 작았다고 한다. 팔과 다리의 길이가 중요한 펜싱에서 키가 작은 선수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스피드를 높이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남들보다 두세 배 뛰었다. 그러다 급성장기를 맞아 키가 확 자랐다고 한다. 큰 키에도 빠른 스피드를 구사할 수 있는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여심 사로잡은 미모는 어쩌면 덤이다. 


사진출처 :로이터/ 연합뉴스


가정형편은 또 어떻고? 그는 '개룡남'이라고 한다. 개천에서 용이 된 남자. 오상욱 선수는 형과 함께 펜싱 선수의 길을 걸었다. 펜싱은 귀족스포츠로 불릴 만큼 장비며 교육비가 상당하다. 두 형제를 선수로 키우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었겠나. 평범한 가정이라 해도 운동하는 아들 둘을 두었다면 집안의 기둥뿌리가 뽑힌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버지는 운동을 말렸지만 오상욱 선수는 펜싱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펜싱 선수였던 형은 장비를 동생에게 물려주기 위해 시합 때 신는 운동화와 연습 때 신는 운동화를 달리 신었다. 행여 땀냄새 벤 장비를 주면 동생이 힘들어할까 봐 경기 끝나자마자 장비부터 벗고 말렸다는 형. 동생이 훌쩍 자라 형을 이기게 됐을 때 형은 꿈을 접고 동생에게 집중할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TV에 방송된 인터뷰를 통해서도 애틋한 형제애가 느껴졌다. 나보다 뛰어난 동생에게 양보해야 하는 형의 마음과, 그런 형의 마음을 이어받아 선수로서 목표를 이뤄내야만 했던 동생의 절실함. 하늘은 그 진심을 알았고, 우리나라 펜싱 역사는 새로 쓰였다.


그의 스승도 마찬가지였다. 스승인 박종한 매봉중학교 펜싱팀 감독께서는 "크게 될 선수"라며 부모님을 설득했고, 주위에도 후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운사모(운동을 사랑하는 모임)'는 매월 20만 원의 비용을 지원해 꿈나무의 떡잎이 스러지지 않도록 도왔다. 이제는 오상욱 선수가 매달 후배들을 지원하며 돕는다고 하니 얼마나 훈훈한가. 일찌감치 될 성 부른 나무의 떡잎은 넓고 푸르렀고, 세계적인 선수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은 정성을 다했다. 


'괴물'의 마인드컨트롤


외국 선수들은 오상욱 선수를 '괴물'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럴 법도 하다. 192cm의 거구에 빠른 스피드를 갖췄으니, 내가 상대 선수라도 오금이 저릴 것 같다. 경기 내내 보여준 격조 있는 매너와 스포츠맨십도 빛났다. 이런 괴물이라면 함께 경기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 아닐까 싶다. 동시대를 살며 라이브로 경기를 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그의 멘탈을 다시 한번 새겨 본다. 


"항상 결과는 정해져 있다. 그냥 나는 열심히 할 뿐이다."


사진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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