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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커엄마 Mar 05. 2023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려움

트라우마극복기 5

이후로도 전신마취를 하는 대수술은 이어졌습니다. 양쪽 쇄골뼈도 다 부러졌는데, 한 달이 흐른 후에야 발견한 걸 보면, '다리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게 정말 급했던 것 같습니다. 쇄골뼈는 부러진 뒤 그대로 붙기 시작한 탓에 쇄골미녀(?)는 되지 못했네요. 굉장히 아쉬운 포인트입니다. 뼈가 더 이상하게 붙기 전에 잡아야 한다며, 뒤늦게 헐크처럼 양쪽 어깨를 동여매는 깁스를 한 기억만 있습니다.


여러 번의 전신마취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피부이식입니다. 몸 중에서 가장 연한 곳의 피부를 도려내 다리에 이식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쉽게 말해, 피부를 얇게 포를 떠서 다른 부위에 갖다 붙이는 것이죠. 지겹도록 수술대 위에 올랐습니다. 살갗 뗀 부위 꿰맨다고 수술하고, 뗀 살갗을 이식한다고 수술하고... "상태보고 다음 수술 일정 잡겠습니다."라는 클리셰가 반복됐습니다.


이식보다 더 힘든 건 '물주머니'였습니다. 이식한 피부를 최대한 당기고 펴서 넓은 부위에 안착하도록 해야만 했습니다. 피부는 탄력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지만, 살갗을 근육에 간신히 붙여만 놓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천천히 늘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피부를 늘리기 위해 아기 주먹만 한 물주머니 두어 개를 밀어 넣었습니다.  


"이게 대체 뭐야. 괴물 같잖아. 엉엉!!"

다리에 물주머니를 차던 날, 아파서 한 번 울고, 울룩불룩해진 다리 형태에 지레 겁먹고 두 번 울었습니다. 치료가 다 끝나면  거라는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내 몸을 아프게 만든 건 어른들이다, 일차원적인 사고 탓에 어른들의 말은 무조건 불신하고 봤던 것 같습니다. 불신은 지옥이라지요. 진짜 지옥문이 열렸습니다.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 물을 넣었다가 뺐습니다. 물을 넣고 뺄 때마다 다리가 부풀었다가 줄어들었다가... 끝없는 고통의 터널 속에 갇힌 느낌.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은 고통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질감과 통증은 낯설기만 했습니다.


통증보다 더 한 고통은 가려움이었습니다. 벌레 수백 마리가 붕대 안에서 기어 다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려움. 차라리 다리가 없는 게 낫겠다는 철없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리가 불에 타들어가는 듯 극심한 고통을 견디기 힘들었거든요.


제 감각은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졌고, 온 신경은 다리에만 쏠렸습니다. 꿈에서조차 가렵고 답답했습니다. 자다가도 뒤척이면 행여나 물주머니를 터트릴까, 그러면 또 큰 수술을 하게 될까, 소심쟁이 7살은 잠도 깊게 자지 못하고 선잠만 잤습니다. 뿌리 깊은 다크가 내려앉았습니다.


'긁고 싶다... 격하게 긁고 싶다...'

만지면 안 됐습니다. 피부가 제대로 안착하지 못해 다시 괴사 하면 안 되니까, 최대한 잘 관리해야만 했습니다. 더 이상 떼어낼 연한 피부도 남아있지 않다, 다시 예쁜 다리로 걸어야 하지 않겠니, 제발 긁지 말아라, 의사 선생님이 신신당부하셨습니다. 긁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하고, 차라리 때리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그것도 금지사항에 포함된 행동이었습니다. 괴로워서 그 주위만 에둘러 꾸욱 꾸욱.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았잖니."

엄마는 용감했습니다. 겁쟁이, '쫄보'였던 엄마는 딸의 재활 앞에서는 잔다르크가 따로 없었습니다. 멈칫 멈칫 서툴고 어설프던 손길도 차츰 익숙해졌고, 나중엔 눈 감고도 물을 넣고 빼셨습니다. 의사 선생님보다 더 거침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마음은 찢어지셨겠지만요.


이런 엄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는 물주머니 용량을 늘리라는 처방을 받을 때마다 울기를 반복했습니다. 물주머니에 삽입하는 물의 양이 늘어날수록 살이 찢어질 듯 너무 아팠거든요. 욱신욱신 몸살을 앓으며 용량을 늘려갔고, 그렇게 이식한 피부가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물주머니를 빼던 날, 앓던 이가 빠져도 이렇게 시원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한평생 올랐던 수술대 중에서 물주머니 빼는 수술을 하던 날이 가장 기뻤습니다. 물주머니를 빼고 나니 몸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습니다.


만화 <가제트 형사>

"나와라, 가제트 다리!" 

이대로라면 당장이라도 다리에서 용수철이 튀어나와 가제트 형사 아저씨처럼 하늘로 뛰어오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여기가 고통의 끝일 줄 알았는데, 매운맛을 이겨내니 마라맛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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