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픈 손가락
사라는 눈이 참 예쁘다. 푸른 회색빛의 눈과 가끔 보이는 미소는 정말 평소에 힘듦을 날리만큼 놀라운 힘이 있었다.
사라는 말을 할 수 없고 짧은 소리만 낼 수 있는 아이다. 그래서 소통의 어려움이 있는데 그 답답함에 자해를 하고 다른사람을 무는 아이였다. 보통 이런 아이들은 아이패드로 아이가 소통할 수 있게 단어버튼을 누르며 소통 하는데 사라는 그것도 아직 힘든 단계였다. 4-5가지의 알러지가 있어서 글루틴이 없는 음식울 먹어야하고 간질을 몇차례씩 겪어서 부모님은 무척 예민하고 까다로운 분들이었다. 첫날 아이가 학교에서 난동을 벌이고 선생님의 팔을 물었는데 부모는 오히려 교사와 나를 탓하며 교장 면담을 신청하겠다했다.
정말 억울했지만 어쩔수 없이 학부모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다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시켜야했다.
이 시기 여자 아이들은 생리도 시작하고 호르몬의 변화도 심각해서 작은 일에도 울고 교실에 있고싶지 않다하기도한다. 사라는 생리통이 심했는데 생리가 시작되면 등이 아프다고 자기 등을 치면서 엉엉 울면서 온 학교를 돌아 다녔다. 옆에서 나는 “I hear you, I know” 하면서 아이를 진정시켰고 학교 간호사와 이야기해서 생리룰 시작하면 아침과 오후에 타이레놀을 먹울 수 있게 부모 허락을 받았다.
사라는 갑자기 배에 가스가 차서 복통이 오면 식은 땀을 흘리며 나에게 왔고 나는 어떻게든 아이의 고통을 덜어주기위해 간호사와 학부모와 소통하며 애를썼다.
하루는 아이가 바닥에 엎드려 배가 아플때 취하는 자세로 소리치며 고통 스럽게 20분을 울었다. 나는 옆에서 아이의 고통을 보는게 너무 힘들었다. 아이가 집에가서 안정을 취하는게 우선이라 생각해서 학부모를 불렀는데 아이가 20분만에 학교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면서 학부모가 교사가 아이를 돌보기 싫어서 집으로 보냈다며 차안에서는 아뮤렇지 않게 웃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막판에 뭐라도 해볼 생각으로 텀즈를 먹였는데 그게 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학부모가 교장헌테가서 내가 아이의 배울권리를 박탈했다며 신고를 했다.
교장이 나룰 찾아와 무슨일이냐 물었을때 상황을 설명하고 옆에 있던 선생님들도 아이가 정말 힘들어 해서 아이룰 위해 보냈지 나를 위한게 아니다 이야기하는데 억울한 맘이 들어 율음이 터졌다.
교장은 나를 달래며 다 안다며 애쓴다고 어깨를 토닥해주었다.
다음날 아이가 너무 미웠다. 사랑해줬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치다니! 그날은 진짜 무관심으로 아이를 대했다. 그러고 집에 왔는데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자다가 새벽 4시에 깨서 다시 잠이 안올 정도로… 그래서 거실 소파에 엎드려 기도를 했다. 하나님 너무 아이가 밉고 내 사랑은 종이조각이 된것 같아요. 억울해요. 하면서 하소연을 했는데…. 마음 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 ‘그 아이에게 너는 유일한 친구야. 너를 그 아이 친구로 보냈는데 니 기분이 나쁜게 그렇게 중요하니?’ 그 소리에 나는 펑펑 울어버렸다. 하나님이 보내신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내 자존심이 나는 더 중요했던거다. 그게 내 소명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존심과 나의 결백함이 묵살되는 순간 나는 소명이고 나발이고 다 던져버리고 싶었던 거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 아이는 학교에 너무 잘 적응해서 친구들과 잘 어율렸고 체육시간에 같이 손을 잡고 걷다가 나를 꼭 안아주기도하고 자주웃고 행복해 했다. 나중에는 아이 엄마가 내가 가는 학교를 따라가고 싶다고 아이를 더 봐달라고 할만큼 부모와의 신뢰관계가 쌓였다.
한해가 지나고 나는 새로운 포지션에 어플라이했고 인터뷰에서 합격하는 바람에 일을 그만두게 되었을때 사라가 제일 마음에 걸렸다. 작은 아기 병아리를 두고 나오는 기분이었다.
후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새로운 선생님이 애를 먹었고 아이는 다시 자해를 하고 학교에 안나온지 한달이 넘었다는 소식울 듣고 너무 맘이 아팠다. 크리스마스 즈음 아이를 보러갔을 때도 결석을 해서 결국 만나지 못했지만 가끔 아침에 사라를 위해 기도한다. “Lord, please be with 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