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다. 아이 방학 후 처음으로 내가 가장 먼저 일어난 날인 것 같다. 아이도 3주차 들어서니 더 이상 7시대에 일어나지 않아서 너무 좋다. 그래 지지배야 방학 때라도 좀 푹 자거라. '어린 시절'은 생각보다 훨씬 짧단다.
창문을 열고 볼레를 열어 접는다.
환하다. 밝다. 아침이 맞구나.
너무 좋다.
창문은 그냥 활짝 열어 둔다.
새소리도 너무 예쁘다.
오늘도 저 어두운 땅 속, 관 뚜껑 아래가 아닌 이 푸른 하늘 아래 눈을 뜬 것에 감사한다.
생명을 느낄 수 있는 또 하루의 기회. 이것을 내가 오늘도 받아 들었다. 두근두근.
지난밤에는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자도 전혀 춥지 않았다. 열대야였다.
어제 35도까지 그리고 체감온도는 그보다 더 높이 올라갔다.
추움과 더움을 깡그리 흡수하는 지붕 밑 내방의 온도는 침대로 향하던 새벽 한 시에도 30도였다. 방 안이 찜질방처럼 뜨끈뜨끈 후끈후끈하니 선풍기를 틀어 놓아도 찬바람이 도는 것이 아니라서 너무 좋았다. 따끈따끈한 바람이 내 온몸을 훑고 다니며 나를 더욱더 깊은 잠 그 안으로 데려갔다. 모기를 쫓는 효과도 있고.
선풍기 바람에 나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내 몸에 들러붙어 흡혈하지 못했은 비루한 너, 참 꼬방시다. 내 인생에도 이런 선풍기 같은 존재, 이런 장치가 하나 혹은 여러 개 있으면 좋겠다. 모기 같은 악연은 제발 피하면서 살아가고 싶은데 인생살이가 어디 바라는대로만 흘러가던가. 그리고 무엇을 바라거나 바라지 않던가라도 했었던가. 어쩌면 무언가를 특정해서 바라는 것은 욕심인가 해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일단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먹고사는 굴레에 빠져서 챗바퀴만 돌리며 사느라 정신과 영혼의 갈증의 문제는 정작 돌보지 않고 해결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일층으로 내려가려고 선풍기를 끄자마자 엥~하고 달려드는 녀석. 네가 피를 빨아먹는 이유가 알을 낳아 자손을 번식하기 위함이라는 것은 알고 있는데..
그래도 내게서 좀 떨어져 줄래?
네 모성애 때문에 내게 빨대를 꽂는데, 아 너무 감동적이다 그래 내 피를 빨아먹으렴, 하는 순진하고 착해빠진 행동을 선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최대한 그런 상황은 이제 확실히 피하고 싶다고 단언할게. 비인간적인 너의 행동 용납하지 않을게. 아, 참 넌 인간도 아니구나. 하지만 나 하찮은 미물이라고 널 얕본 적도 없어.
그러니 네가 내 구역을 침범하지만 않는다면 서로 악연을 만들 일 도 없으니 제발 우리 마주치지 말자.
안녕, 흡혈 모기.
앗, 이렇게 말하는 사이 오른쪽 다리를 콱 물고 도망가네.
야! 내 피 안 내놔도 되는데 또 가려운 거는 어쩔 건데.. 진짜 이런 식으로 쥐라기시대부터 지금까지 생존해 온 거니 사람 피 빨아먹으면서. 무섭다 진짜. 적자생존.. 이거 인간들 사이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난 너처럼 살기는 진짜 싫거든. 그래서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남의 피나 빨아먹으며 그렇게 사로 싶지는 않아. 동주처럼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고 싶다구. 나 좀 제발 가만히 놔두면 안 될까?
8시 30분. 아이가 내려오면서 '엄마 모기한테 여기 물렸어'한다.
아니.. 내 딸까지..?
내 자식 귀하면 남의 자식 귀한 줄도 알아야지.
아 놔, 어이없네 진짜.
뭔 말이 통해야 말을 하지.
아 팍팍한 이노무 세상
그래도 잘 헤쳐 나가며 살아가야지.. 살아내야지.
여기서 무너지면 안 돼.
출처: 일정 부분 편집된 나무위키
습하고 무더운 여름철 나타나는 모기는 1억 7천만 년 전 중생대 쥐라기에 처음 등장하여, 뛰어난 번식력과 끈질긴 적응력으로 멸종에서 살아남아 지구 전역에 퍼져나갔다.
오늘날에는 시골과 도시를 가리지 않고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곤충이며, 평소에는 꽃과 과일의 즙을 빨아 속씨식물의 수분을 돕기도 하나 임신한 암컷이 산란기가 되면 알의 생육에 필요한 단백질을 보충하고자 짐승과 사람의 피를 빤다.
모기는 생물독을 가지고 있지 않아 흡혈하더라도 건강한 사람에게는 약간의 가려움증을 제외하면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흡혈하는 특성상 세균과 바이러스, 기생충의 전파원이 되며, 이 때문에 전염병을 매개하는 해충으로 매우 위험하다.
모기는 사람의 목숨을 가장 많이 앗아간 동물로, 해마다 전 세계에서 80~100만 명의 사람들이 모기 때문에 목숨을 잃고 있다
통상적인 환경에서는 암수 모두 식물의 즙이나 꿀, 이슬 등을 먹고 산다. 대체적으로 수컷은 꿀과 이슬을 주식으로 삼으며, 임신하지 않은 상태의 암컷도 꽃의 꿀이나 이슬을 마시고 산다.
교미 전에는 한가롭게 꽃의 꿀들을 빠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만 교미를 하면 암컷들은 난자를 성숙시키고 알의 성장에 필요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인간을 포함한 온혈동물들의 피를 빤다. 암컷 모기는 산란에 앞서 부족한 영양분을 채우기 위해 몸무게 2~3배 정도의 피를 빨아먹는다.
특히 사람의 피에는 단백질뿐만 아니라 철분이 풍부하여 모기가 많은 알을 낳고 번식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암컷 모기가 사람의 피를 흡혈하는 것은 종족 보존에 아주 중요한 활동이다.
모기는 종의 생존력이 매우 강인한데, 심지어 남극과 같이 원래는 존재 불가한 환경에서도 화물에 묻어가 출몰하기도 하며, 유충인 장구벌레를 바닷물에 2시간 동안 담근 후 4시간이나 햇볕에 말려도, 완전히 바싹 마르지 않는 이상은 다시 물에 넣으면 멀쩡하게 움직인다.
모기가 보여서 눈으로 쫓다가 보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는데, 이는 모기의 순간 선회 속도가 인간의 안구 회전 속도보다 빨라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파리도 마찬가지인데, 그나마 파리는 비교적 덩치가 커서 다시 바로 눈에 잡히지만, 모기는 호리호리해서 오히려 파리보다 느린데도 불구하고 놓치기 쉽다. 참고로 고양이는 움직이는 물체를 볼 때 사람의 두 배가 넘는 속도로 뇌에 시각 정보가 전달되기 때문에 모기가 이리저리 날아다녀도 놓치지 않고 다 눈으로 쫓는 모습을 보인다. 고양이가 보는 방향을 잘 주시하면 의외로 쉽게 모기를 발견할 수 있다.
약점으로 날개가 빈약한 데다 지구력이 안 좋아서 장시간 날지 못하고 반드시 근처 벽이나 천장에 붙어서 쉰다. 모깃소리가 들린다 싶으면 벽이나 천장을 살펴보면 대개 발견된다. 벽과 천장에도 안 보인다면 모기가 자신의 피부색과 비슷한 곳에서 위장했거나 어두운 곳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피를 흡혈한 암컷은 지구력이 더더욱 약해져 잡히기 더 쉽다.
선풍기의 미풍에도 버티질 못하고 빌빌댄다. 잘 때 모기가 귀찮게 하면 선풍기 바람으로 접근 거부 지역을 만들 수 있다.
또 다른 약점은 나쁜 시력이다. 야행성인 모기는 빛에 대한 안구 적응력이 형편없기 그지없어서 어두운 방에서 갑자기 불을 켜서 환하게 만들면 화이트아웃이 되어 순간 장님 상태가 되어버린다. 자고 있을 때 모깃소리에 놀라 불을 켜면 당황해서 벽에 붙어서 가만히 있는 모기들을 많이 볼 수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비행능력은 인간에게 알려진 지구상의 모든 비행생물 중 잠자리 다음으로 뛰어나다.
다른 비슷한 크기의 곤충들에겐 자살행위라는 빗속에서도 유유히 날아다닌다. 모기 몸의 털 때문에 몸이 방수이고, 비를 맞으면 빗방울과 함께 떨어지다가도 빠르게 탈출해 비행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모기는 바람이 불지 않는 정지한 공기 환경에서는 고층까지 올라갈 수 없다. 그래서 2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에서는 집에서 여름 내내 모기 구경도 할 수 없는 집이 많다. 하지만 고층 건물 주변에서 가끔 나는 상승 기류와 같은 바람의 도움을 받으면, 고층까지도 엘리베이터를 통하지 않고 올라갈 수 있다.
모기는 피를 빨면서 오줌을 싸는데, 오줌에도 말라리아 등 기생충이 가득하지만 말라리아는 피부를 뚫을 수 없기에 질병은 모기의 침을 통해 퍼진다.
약국을 방문하지 않고 가려움을 가라앉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본적인 방법으로 물린 직후에 비누로 씻으면 감염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으며, 가려움도 조금 나아진다. 이후 환부에 적당한 온도를 가하는 것이다. 얼음 팩 등으로 냉찜질을 해주면 해당 부위의 신경을 둔화시키고 체액 순환을 느리게 하므로 어느 정도의 효과를 볼 수 있다. 반대로 4~50도 정도의 뜨거운 물을 티슈에 적셔 환부에 문질러 열을 가하는 것도 가려움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소금물을 발라도 효과가 있다.
모기가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는 요인이 몇 가지 있다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
땀이 많이 나는 사람들은 모기에게 유독 많이 물리는데 모기는 땀에서 나는 젖산 냄새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모기는 시력이 안 좋기 때문에 체취가 강하면 이에 의존하는 모기에겐 1순위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모기에게 잘 물리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비만인 사람들이다. 체취가 강한 사람들도 잘 물리는데, 체취의 원인이 땀 때문이어서 그렇다. 때문에 평소에 잘 씻어두는 것이 조금이나마 덜 물린다.
대사량이 높은 사람
모기가 좋아하는 요인 중의 하나가 이산화 탄소인데, 대사량이 많으면 그만큼 이산화 탄소를 많이 배출한다. 거기에 대사량이 높은 사람을 소위 '열이 많은 체질'이라고도 하는데, 모기가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대표적인 사람은 임산부와 아기, 그리고 운동선수들이다. 또한 술 먹은 사람도 여기에 포함되는데, 알코올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이산화 탄소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
모기는 색맹이다. 그래서 명암 정도만 느낄 수 있는데, 형형색색의 밝은 빛을 모두 흰색으로만 인식한다. 모기는 검은색을 선호하는 편이라 다른 곤충들과는 달리 밝은 곳(모기 입장에서는 흰색으로 보이는 곳)을 피한다. 주로 밤에 나타나는 이유도 해가 지면 어두워져서 검게 변하니 유독 많아지는 것이다. 검은 옷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보다 피부가 검은 편인 사람들도 주의해야 한다. 때문에 초록, 노랑, 흰색 같은 밝은 옷을 입어야 모기에게 덜 물린다.
여기 오기 전에는 나는 모기에 잘 물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땀을 잘 흘리지 않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엄마가 현관 입구에는 돌돌이 모기향을 피우고 잘 때는 어릴 때 모기방장을 쳐주고 모기가 엥 소리 낸다고 하면 달려와서 불을 켜서 잡아주고 가고 혹 못 잡으면 방구석에 에프킬라 좀 쳐서 문 닫았다가 환기시키고 선풍기 틀어주고 그렇게 딸내미 모기 안 물리게 단속을 해주셨던 부분이 큰 것 같다.
엄마 나 낳아서 키워주고 또 긴 세월 곁에서 지켜줘서 고마워.
우리 김여사.. 건강히 오래오래 살아줘..
오늘은 Accrobranche로 출동했다.
아크로브랑슈는 한국어로는 숲속정글짐이라고 되어있는데 내가 어렸을 때 이런 곳을 일체 가본 적이 없어서, 정글짐만 아는 일인으로서는 '숲속 정글짐'이라는 단어가 꽤 생소하다.
암벽 등반처럼 로프로 고정된 판을 맨 꼭대기까지 직접 올라가거나 안전 강철 케이블을 따라 숲 속 놀이동산을 돌아다니는 어드벤처 야외활동인데 아이가 엄청 좋아한다. 올해만 해도 벌써 네 곳으로 숲속 어드벤처 공원 투어를 했는데 아이의 만족도가 매번 최상이었다.
그런데 오늘 새롭게 뚫으려고 하는 이곳이 위치하고 있는 작은 숲 속에 이르기 전에 아이 눈에 놀이터가 먼저 들어온 것이다. 다섯 개가 넘는 파트로 이뤄져 있는 커다란 놀이터가 눈앞에 펼쳐지니 아이는 일단 여기서 놀다가 아크로브랑슈 가자고 했다. 그런데 놀다 보니 아크로브랑슈 마지막 입장시간인 오후 다섯 시가 넘어 버렸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오늘은 그냥 여기서 놀고 거기는 다음에 가기로 한다.
놀이터 다섯 곳이 다 이어져 있기는 했지만 아이가 보이는 곳에 있기 위해 매번 나도 짐을 들고 따라다녔다. 그렇게 마지막 다섯 번째 놀이터인 모래놀이터로 이동했을 때 다행히 긴 의자 하나에 아줌마 한 명이 옆 자리를 비워놓은 것이 보였다. 그녀가 이어폰을 꽂고 음악에 맞춰 흥얼거리고 있기에, 여기 앉아도 되느냐 여기 비었느냐, 이런 말도 없이 그냥 앉았다. 제이는 근처 호수에 오리를 보러 갔기에 나는 혼자 거기에 앉아서 아이가 노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는 이 아이 저 아이와 함께 놀기도 하고 혼자 놀기도 한다. 거기에 땅 파는 굴삭기 기계가 세대가 있었다. 땅파기를 좋아하는 내 아이는 그중 한 곳에 줄을 서 있다가 자리가 나자마자 기쁘게 착석하여 꽤 정교하게 만들어진 그 기계를 조작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한 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애가 두서너 살 정도로 보이는 자기 여동생을 데리고 오더니 다짜고짜 굴삭기 기계 작동 손잡이 부분을 자기가 움켜잡고 조작하기 시작한다. 어딜 가든 정말 쎈캐들이 꼭 최소 한두 명은 있구나. 우리 딸은 그것을 보고 별 말을 못 하고 일단은 그렇게 가지게 놀게 두었다. 하지만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기도 그런 게 그 여자아이가 손잡이로 운전을 하면서 의자까지 막 돌아가니 손잡이를 빼앗긴 상태에서 균형을 잡기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제야 그만하라고 하는 얘기를 했지만 그 여자아이에게 씨알도 먹혀들지 않는 모양새다.
나는 아이들 불러서 모두 위험할 수 있으니 일단 그 아이에게 줘버리고 이쪽으로 오라고 했다. 그 조그마한 계집아이는 원래 임자를 쫓아낸 빈자리에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의 어린 여동생을 들어 올려서 거기에 앉힌다. 정말 쥐방울 만한 게 벌써부터 저렇게 억쎄서 어쩌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우리 딸내미가 저런 아이들 몇백 명 있는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몇 가지 옵션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여 살아야 하고 그 이후 우리 아이의 색깔은 어떤 색이 될까부터 해서 수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옆에 앉아 있는 애엄마는 음악 청취에 흥이 올라 의자까지 들썩거릴 정도다. 그런데 그렇게 큰 거부감은 없었다. 이 아줌마의 아들인 듯한 사내아이가 꽤 크다. 한 오육학년은 되어 보인다. 벗어놓고 간 운동화도 새것처럼 깔끔하고 애 엄마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세련되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그러고 보니, 어라.. 두 사람이 함께 놀기 시작한다. 모래를 운반하는 기계에서도 함께 흙을 통에 담아서 옮기고 이 아줌마 아들이 그것을 저쪽으로 옮기니 우리 집 딸내미가 총총 총총 가서 그것을 다시 다음 단계로 밀어 올리고. 한 이삼십 분을 그렇게 놀더니 갑자기 아이가 내게 달려와서 저쪽 미끄럼틀 놀이터에 가서 놀아도 되느냐고 물어본다. 그리고 그 아들도 보니 자기 엄마에게 저쪽 공원에 미끄럼틀을 타러 가고 싶다고 허락을 받으러 왔다. 아, 너희들 같이 가기로 했구나. 웃음이 픽 터져 나온다. 언제 그 사이 또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은 것인지. 정말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끌리는 모양이다.
이렇게 우리는 각자의 자식을 같은 곳으로 함께 보내놓고서야 인사를 하고 이름을 텄다.
나타샤라고 했다.
꼬디부와에서 살던 부모님이 이곳의 쌍모흐라는 곳에 자신이 4살일 때 왔고 자신은 집안의 장녀이고 아래로 남동생 셋이 있단다. 이 공원에서 자주 바베큐나 가족모임을 가진다고 자신이 주로 행사를 계획하고 준비한다고 하고, 오늘은 우리처럼 아크로브랑슈에 온 것인데 시간이 어중간해서 그냥 놀이터에서 놀리다가 택시 타고 집에 갈 거라고 한다. 오면서 남편이 태워주고 다시 일을 하러 갔다고 한다.
나타샤는 19살에 결혼하고 첫 딸을 낳았다고 한다. 법 공부를 하고 있는 첫 딸이 현재 22살이니 이 아줌마는 올해 41살이다. 이제 곧 42번째생일이라고 한다. 나는 좋을 때라고 공부도 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이 멋지다고 했다. 둘째 딸은 17살, 셋째 딸은 14살로 중3. 딸내미 사진을 보여주겠다며 음악을 듣고 있던 플레이리스트를 내리고 동영상을 클릭했다. 육감적인 모습 완벽한 화장 파티드레스. 세상에 딸들을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멋지게 키워냈냐고 했더니 참 행복해했다. 진심이었다. 그녀는 참 잘 살아왔다. 잘 견내내어왔다.
그리고 마지막인 넷째 아이가 저 아들인데 9살, 3학년이고 구월 새 학기에 4학년이 된다고 했다. 위로 누나들이 셋이나 되어서 사랑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아이가 참 선해 보인다고 하니 아무래도 막내다 보니 많이 귀여움을 받고 있고 차분한 성격이라고 한다. 애가 또 상당히 큰 편이라고 하니 애 아빠가 186이라서 아이들이 전체적으로 좀 큰 편이라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숨도 쉬지 않고 우리 둘은 이어나갔다. 그러다 나타샤는 자신이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깊은 속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마흔이 되는 시점, 그 해에 옆집에 살던 아줌마 친구가 이 세상 소풍을 갑자기 끝내고 하늘로 가버린 이야기를 이어갔다. 위로는 초증학교 아이들이 둘 있었고 막내는 생후 8개월이었는데 암으로 그 해에 죽어버렸다고. 그 이후로 건강을 최우선으로 두고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다시 공부를 시작하며 자신의 개인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집과 마찬가지로 2022년에 이사를 하면서 2018년부터 집을 지어서 하면서 세금이라던가 돈 들어갈 일이 너무 많아서 남편이 투잡을 뛰고 주말에도 한 번씩 일을 한다는 것이다. 자신은 초반에는 육아시설에서 일을 했었고 그다음으로는 병원에서 6년을 행정직으로 일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십 대 때 대학에서 전공한 관련일과 무관한 다른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했다.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나는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백번 말하는 것보다 효과가 훨씬 좋다고 했다. 자신도 강하게 느끼고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나타샤는 땅을 사서 그곳에 새 집을 지었다고 한다.
4년 동안 코비드도 있고 해서 공사기간이 길어서 힘들었지만 결국은 기다리고 인내했고 공사비를 다 마련해 넣었다고 한다. 그 인내와 수고로움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커플이 죽이 잘 맞아야 그것을 견뎌낼 수 있으니 이 여인이 아이를 길러내고 일을 하고 또 집에서 장녀의 역할까지 해내는 이야기를 듣고 내면이 참 단단한 이라고 생각했다. 새 집의 난방은 뽐쁘샬러흐로 하는데 여름에는 에어컨 효과도 있고 좋다고 했다. 우리 집에는 아직 기름 넣는다고 긴 겨울에 거의 이백만 원을 호가하는 기름을 넣고도 4개의 라디에이터까지 구석에 놓아도 바깥바람이 슝슝들어온다고 했더니 뽐쁘샬러흐를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어떠냐고 조언을 주었지만 새 집에 설치한 것만큼의 효과를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르고 앞으로 내 인생이 어찌 될지도 모르는데 집에 다시 뭘 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한번 알아봐야겠네, 하고 말았다.
거의 한 시간을 수다를 떨다가 나는 '프랑스에는 최저시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라는 화두를 던졌다. 각 나라의 상황이 어떻든지 그래도 좋은 직업을 가지면 살기가 좀 수월한 듯하고 좋은 것은 가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법이라는 생각에 우리는 너무 공감했다.
또한 프랑스의 지극히 소수를 위한 엘리트교육과 극명하게 차이가 있는 순응교육에 관해서 또 화두를 던졌다. 프랑스에서 네 살부터 살면서 자신도 이곳의 공교육으로 컸고 아이들 넷의 학부형이기도 한 나타샤는 외국인 신분인 내가 어쩌면 확실히 파악하지도 못하고 또한 일반화시키기 솔직히 어려운 혹은 불가능할 수도 있는 '교육' 문제에 대한 내 장황한 의견에 그래도 상당히 공감한다는 식으로 받아쳐주었다. 자기가 최초 직업으로 육아시설에서 일할 때 만 두 살인데도 욕을 하는 것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던 일화를 시작으로 우리는 프랑스 공교육의 사각지대에 대해 숨 가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무래도 아이들은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고 부모들이 삶이 팍팍하니까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지만 시설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기계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던 시간들도 있었다는 실토까지 했다.
나타샤에게 그 집 아들은 사립 보내냐고 물으니 공립이라고 한다. 나에게 우리 아이는 그럼 사립 보내냐고 또 물어온다. 솔직히 사립으로 바꿀까도 생각했지만 어딜 가든 문제는 발생하고 일단은 생각 중이라며 내 심경을 솔직하게 전했다.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하고 보니 우리 아이 학교 아이들이 이사 오기 전의 그 동네 애들에 비해 좀 센 편인 것 같다 하니 꺄 쏘시알이 많은가 보다 하면서 다행히 에므릭은 이사 오고 나서 상황이 더 나아졌고 새 친구들이 처음부터 잘 챙겨주어 편안한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사립 기본 학비를 일 년에 거의 사오천유로는 생각해야 하는데 그 집이나 우리 집이나 이사하면서 돈이 너무 깨지고 있는 상황이라 참 마음 같지 않은 현실을 함께 나눈다.
인연을 꼭 엮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도 서로 참 잘 통하고 나타샤가 유년시절을 보내며 성장한 곳은 우리가 이사오기 전 살던 동네 바로 옆이고, 지금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은 또 우리가 살고 있는 근처 동네이다. 한 번씩 서로 연락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가고 있음을 한번씩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 좋은 그런 친구로 천천히 가까워지면 될 것 같다. 오늘 하루도 잘 살고 있을 나타샤에게 응원의 마음을 보내고 또 그녀가 나의 삶도 응원해 줄 것임을 알기에 미리 감사하는 마음까지 전한다.
이제 곧 저녁 먹을 시간인데 밥은 해 놓고 왔냐고 물었더니, 아무래도 덩치 큰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라서 항상 대용량으로 준비한다고 한다. 오늘 저녁 식사는 어제 남편이 해둔 음식을 남은 걸 데워 먹을 거라고 하며 택시를 수색하는 그녀에게 잘 안되면 우리 동네 쪽 전철에 떨어뜨려줄까 했더니 그러면 너무 감사하단다.
거의 두 시간을 숨도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아줌마들 수다에서 생존하지 못하고 어디 산책을 갔는지 보이지 않는 제이에게 전화를 하니 저 언덕너머에서 머리를 쏙 내밀며 나타난다. 전화를 끊고 가는 길에 함께 가자했더니 오케이 한다. 그런데 가기 전에 여기 파도 수영장이 있던데 거기 가서 정보 좀 확인하고 가자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그냥 인터넷으로 확인하자고 했다. 그런데 우리 옆에서 함께 걷고 있던 나타샤가 이미 이곳 정보에 빠삭하다. 입장시간부터 시작해서 쭉 읊어준다.
집에 도착할 때 보니 사과꽁뽀트를 아이가 먹고 남은 껍질이 보인다. 이게 뭐냐고 물으니, 자기가 혼잣말로 '배가 좀 고프네' 조그맣게 말한 걸 에므릭이 듣고 줬다고 한다. 자기의 간식 가방은 자기가 짊어지고 다니다보다. 역시 아이를 넷을 키우니 자립성에도 상당히 신경 써주는 것 같다. 아이의 공감능력도 참 이뻐 보였다.
그렇게 우리 다섯은 길 위에 함께 있었다. 아이는 모두 다 같이 같은 차를 타고 집에 가는 이 길을 너무 행복해했다. 오늘, 최고의 하루였다고 한다.
점심은 큰 공원에 가서 먹기로했다.
물과 아이 요구르트만 준비하고 가는 길에 초밥, 바게트, 잠봉 그리고 에망딸치즈. 디저트로는 무스오 쇼콜라를 샀다.
식사 후에 는 아이와 모래밭으로 된 저번에 카반을 만들었던 그 놀이터에서 놀았다. 제이는 태워주고 집으로 일라러 갔다. 올림픽으로 인해 사이버테러를 염려해서 이번주에는 모든 정보망을 다 꺼버렸기 때문에 회사에 가서 일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서 이번주 수요일까지는 재택근무를 하고 목요일부터 바캉스가 시작된다고 한다.
아이는 학년이 똑같은 아이를 만나 저번에 파 놓은 캬반에서 즐겁게 놀았다. 이 아이는 남동생이 두명인데 엄청 똘똘하고 얼굴표정이 풍부한 것이 꽤 인상적이다. 오늘 이 곳엔 이모와 그녀의 두 살된 아들 그리고 남동생 둘과 함께 온 모양이다.
처음에는 웬 여자가 놀이터에 애들 데리고 들어서면서 너무 큰소리로 말해서 무식하게 왜 저러냐 나는 이제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보니 정신연령도 어리고 생긴 것도 어리고 한 이십 대 정도인 듯 보인다. 사탕봉다리도 거기 있는 한 스무 명의 아이들에게 끼부봉봉이라며 아니마트리스처럼 골목대장노릇을 하는 모양새다.
저 집의 네 명의 아이들은 다 내쪽에 와서 놀고 있다. 이모라는 이는 누구랑 큰 소리로통화하느라 정신없다. 아이들은 우리 삽 가지고 놀고 옆에 앉아 있던 프랑스 할머니 손자의 모래모양 만들기 키트도 다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정작 그 집 손자는 공원을 빙빙 돌아다니며 여기 끼지 못하니, 처음에는 사용하라고 손수 장난감을 그 아이들에게 쥐어주더니 안 되겠다 싶은지 서너 개를 빼서 아이들 없는 내 왼쪽으로 놓으며 자기 손자를 불러서 놀라는 뜻으로 놓아주었지만 여기도 아이가 끼지를 못하니까 그냥 가자고 한다. 그런데 또 손자가 안 간다고 하니 일단 장난감을 다 모아서 양동이 가방에 담아둔다.
두시반 반이 흐르고 제이가 왔다.
세 명의 흑인 꼬마아이들이 우리집 아이에게, 너희 아빠야? 하면서 약간 놀란다. 푸른 눈의 큰 백인 남자가 나타나니 뭔가 예상외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렇게 블랑 죤 누와흐가 대화합의 장을 만드는 듯 하다가 얼마되지 않아 한살과 두살인 꼬맹이 둘이서 모래를 서로의 얼굴에 뿌려대더니 또 눈을 막 비벼댄다. 하나는 눈을 뜨지 못하고 있고 또 하나는 눈에는 모래가 들어가지는 않지만 한 움큼 입에 털어 넣는 폼이 무슨 가루약이라도 먹어 본 폼이다. 안되겠다싶어 여전히 통화중인 아이들 이모에게, 네 아들 눈에 모래 너무 들어갔고 조카아이는 모래를 너무 많이 먹었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 그 아이들도 가고 우리도 마네쥬 비행기 한번 타고 공원을 나왔다. 그리고 어김없이 근처 슈퍼를 들러 오늘 저녁거리와 내일 점심거리를 샀다.
오늘도 장보러 수퍼를 두 번 오는 구나.
장보기의 굴레, 밥의 굴레..
빙글빙글 잘도 돌아간다.
징글징글 잘도 돌아온다.
정말 이건 아닌 것 같다.
매일 아이에게 직간접적으로 전파되는 그의 언행과 또한 나까지 열받아서 둘이서 사이 안 좋은 것을 보여주는 것도 그렇고 정말 이번에는 행동을 좀 취해야 한다. 혹은 어떤 습관적인 행동을 없애야한다. 정말 나까지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지면 아이가 어디 비빌 구석이 없지 않은가.
음악원과 예술원도 재학생 우선등록 기간을 그냥 지나쳤다. 지난 겨울에는 일 년 등록비를 내놓은 것이 아까워서 보따리를 못 샀다. 지난봄에는 외교관인지 주재원인지를 하고 한국 들어가는 엄마에게 그릇을 산 것부터 해서 물건을 다 두고 가기가 그래서 보따리를 못 샀다.
나, 내일 집 나가니까 그런 줄 알아
내가 저 말을 해도 보따리 안 살 거는 알지만 뭔가 상황을 악화시키고 싶진 않은지 제이는 이층으로 자러 올라간다며 호기롭게 사라졌다.
아.. 진짜 이건 아닌 것 같아.
이혼해서 어려운 삶이나 이렇게 대충 밥만 먹고사는 삶이랑 비교해서 크게 나은 것도 없는 것 같다.
내가 이혼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어서 또 인터넷을 한번 찾아보았다.
어느 나라 법으로 이혼할지
두 사람의 국적이 다른 경우 어느 나라 법대로 이혼해야 할지가 문제 됩니다. 배우자의 나라에 직접 가서 이혼을 하는 게 유리할지 아니면 한국에서 이혼할지 고민 중이라면 이혼전문변호사의 상담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국제결혼한 부부는 국제사법에 따라 준거법이 결정됩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고,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해서 살고 있었다면 대한민국 민법에 따라 이혼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굳이 외국으로 가서 이혼판결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현재 외국에 살고 있는 분들이라면 살고 있는 국가에서 이혼판결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해외에서 받은 판결로 한국에서는 간단히 이혼신고만 마쳐도 됩니다. 다만, 해외에서 받은 판결이 무조건 한국에서 효력이 인정되지는 않습니다. 외국 판결의 효력은 민사소송법 217조를 만족해야만 집행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내일 아침이 되면 크와쌍과 홍차를 준비해 두겠지. 그러곤 별일 없이 오늘 하루도 다시 시작되기를 바라겠지. 마누라는 여느 때처럼 모든 것을 다 잊은 것처럼 아이를 돌보고 밥을 짓고 그렇게. 십 년을 내가 어떻게 개선과정에 집중하지 않고 또 다른 문제 해결방법을 고민하고 진행시키지 않고 그냥 살았나 생각했을 때 지난 연재에서의 그 백치미 부분이 떠올랐다.
젊은 여인의 백치미는 짐짓 매력으로 이해되는 측면도 있었으나 중년의 여인에게는 그것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 이제 좀 알겠다. 하지만 어느 하나 같은 사람이 있던가. 이런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어떤 틀 속에 끼워 넣고 개념정리하는 것은 정말 아니지.
하지만 세상 사람들 다수가 어떤 얘기를 한다면 일단 관심은 가져봐야 하고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참고할 것은 참고해야 한다. 이 일기를 적고 있는 시점에도 난 여전히 내가 백치미와 관련되었다과 절대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알아둬서 나쁠 것은 없지 않겠는가.
아래는 인터넷에서 어떤 사람이 저렇게 백치미를 정의하고 있기에 긁어와 봤다.
현실에서 백치미를 가진 사람은 최대한 어린 나이에 빠르게 고치는 게 좋은데 좋게 말해서 백치미 나쁘게 말해서 둔함, 멍청함은 사회생활, 연애, 결혼에는 지장이 매우 크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4차원에 백치미면 20대 초반까지는 그려려니하고 귀엽게 넘어갈 수 있어도 20대 중반 이후부터는 '나잇값 못하는 사람' 취급받을 확률이 매우 크다.
중년의 이 나이가 되어서는 저런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지만 어찌 생각해 보면 이 격동의 결혼시기 이전, 그 순진무구했던 시기에는 약간 저런 측면이 없지 않았던 것도 같다. 하지만 각자의 색이 워낙 다양하니. 저 백치미라는 것에도 오색빛깔이 있지 않을까 어찌 인간을 하나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새 아침이 밝으니 어제 저 바닥까지 떨어졌던 그 마음이 사라져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제 아시아마트까지 운전해서 가족이 총출동해서 갔는데 부침가루도 없고 라면도 제이가 바구니에 너무 많이 넣고 결국 제대로 된 먹거리를 산 것도 없이 백 유로를 지불한 것에서 일단 화가 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거기다 제이가 마지막에 생뚱맞게 거기서 만들어서 어떤 봉지 같은데 넣어서 파는 베이비 핑크색 아이스크림을 나도 모르는 사이 보냉가방 안에 넣어 두었고, 집에 와서 장본 것을 하나씩 꺼내다 보니 하나같이 뭔가 젖어서 끈적끈적했다.
결국은 그 모든 것을 하나씩 하나씩 다 씻어서 물기를 털고 닦고 나서야 냉장고에 넣었다. 그래서 대놓고 그에게 너무 크게 화를 냈다. 그런데 제이도 강하게 반발을 했던 것이다. 흔한 상황은 아니 없다. 아까 마트에서 산 센 맥주 두 캔을 그 사이 마신 걸까. 저 담력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싶었지만 나도 그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반응했다. 아이에게 정말 좋은 교육 시켰다. 두 덜떨어진 인간들이 아주 그냥 잘하는 짓이었다.
아무래도 몸이 뻑쩍찌근하고 에너지 소비가 안되니 무기력하고 뭔가 감정컨트롤도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여 운동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제이가 저번에 나타샤 만난 그날 궁금해하던 그 파도수영장에 가는 것이 어떨지 제이와 아이에게 물어봤다. 둘 다 대찬성이었다.
도착했다. 아. 파도풀이 실내가 아니었다.
야외 물이 상당히 차가웠다. 오늘 최고 기온이 23도인데 야외인 줄 알았다면 뻬뉴와를 가져왔을 텐데.
풀장 펜스 밖으로는 잔디밭인데 옷을 입고 있거나 비치용 타월로 온몸을 꽁꽁 감싸고 있는 이들이 햇빛을 찾아 거기에 앉아서 아이들이 펜스 안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있거나 신생아같이 조그마한 아기를 돌보는 경우도 보인다. 물기가 마르기 시작하니 춥지도 덥지도 않고 딱 좋다.
수영을 제대로 하기에는 실내수영장이 맞는 것 같다. 그래도 샤또 공플라블르도 있고 터널 미끄럼틀도 있어서 아이는 추워서 벌벌 떨면서도 재밌다고 했다. 발리 비치 볼을 위한 모래장은 공만 가지고 왔으면 너무 재밌었을 것 같은데 이것도 다시 생각해 보면 어린 딸내미 또 멍들게 안 하려면 살살 놀아야 하니 그렇게 운동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오는 길에 까르푸를 들러서 제이가 바베큐 기계 중 하나를 환불받으러 가는 동안 나와 아이는 hm비키니 6-8세 바비. 8-10세 인어공주비닐반짝이를 샀다. 세일기간이라 할인가에 더해서 2+1 행사 중이라 제이의 43 사이즈 양말 5개들이도 하나 골랐다. 아이가 물 들어온 김에 노 젓는 식으로 바비목걸이세트도 하나 들기에 반지 5개 한 세트와 바비물통까지 바구니에 담았다. 아이는 엄마가 왜 이렇게 쉽게 무언가를 사주나 싶어서 상기된 표정이다.
저녁에는 바베큐 기계를 개시했다.
나는 수영장도 갔다 왔고 시간도 늦었는데 그냥 남은 거 먹자고 했다. 뽀로퉁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기계를 사용해 보고 물건을 파악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제이는 저녁 8시 넘어서 숯에 불 붙이기 시작했다. 뭔 일을 하든 뭔가 미덥지가 않아서 할 수 있겠느냐, 잘 되겠느냐 류의 말을 던지니, "넌 나에 대한 믿음이 없어"라고 하며 수제 소시지 8개를 냉장고에서 꺼내고 불쏘시개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나도 피망 세 가지 색을 씻고 잘라서 빨리-노랑-초록-빨리-노랑-초록의 순서로 꼬치에 꽂아서 준비해 두었다. 또 내일 점심 식사를 위해 돼지고기를 얇게 썰고 거기에 설탕을 조금 넣어 버무려둔다. 사과 마늘 양파를 갈아서 거기 추가하고 간장 생강가루 참기름 후추를 넣고 조물조물해서 랩을 씌어 냉장고에 넣어 두고 나니 제이가 부엌으로 다 타버린 소시지 그릇을 들고 승리자의 모습으로 의기양양하게 들어온다.
역시 불맛이었다. 잘 먹었다.
나와 아이는 남은 밥과 함께 먹었고, 제이는 오리엔탈 스물을 곁들였다.
또 내일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나..
눈을 떴다.
사방이 고요하다.
몇 시니.
그러고 보니 폰 충전을 거실에서 하고 있다.
이 방에는 전등이 없다.
그래서 책상 램프를 켜서 온습도계에 있는 시간을 봐야 하는데 코드자체를 빼고 일체의 전기도 흐르지 않은 상태에서 자다 보니, 시간을 보려면 일단 일어나서 암막커튼을 열고 창문을 열고 다시 덧문을 열거나, 전기코드를 꽂아 책상 등을 켜야 한다. 그냥 아이나 제이 둘 중의 하나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리면 그때 일어나야겠다 싶어서 그냥 있었다. 그런데 다시 잠들었나 보다. 아이 소리가 났을 때 분명히 깨어있었던 것 같은데 다시 조용해지면서 잠이 든 것 같다.
9시 반이다.
제이는 아직 자고 있는지 방문이 굳게 닫혀있다. 아이는 부모가 자고 있으니 티브이를 보고 있다. 스펀지밥이다. 엄마가 아침밥을 안 주니 저거라도 보고 있는 것인가. 갑자기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저번에는 일어나서 bd를 보고 있었는데..
아이가 깨 든 말든 8시에 내가 내 아이보다 먼저 일어나 있었어야 했다. 그리고 좋은 활동을 권유해야 했다. 내가 좀 느슨해졌다
방학 3주 차.
이제 뭔가 느슨해진 고삐를 당겨줘야 하나. 아직 방학생활리스트도 못/안 만들었다. 아직 5주나 남았으니 일단 이번주도 매일 놀면서 때워나가야겠다.
일단 어제 아침에 오븐으로 구워놓은 옥수수와 고구마를 꺼내놓고 수건류를 싹 모아서 프로그램을 60도 물높이 최대 속도 수건류로 해서 빨래를 돌려놓는다. 2시간 40분이라고 나온다. 옛날 엄마들은 빨래거리를 들고 강가에 가서 빨았는데 우리는 여하튼 물과 전기를 참 많이도 사용한다 싶다.
어제 수영장에서 사용한 후 씻어말려 둔 아이 망토식 수건과 수영복은 바깥바람을 좀 쐬도록 밖으로 내어 넣고 들어와서 물을 끓여 홍차를 우려 두고 우유도 좀 데운다. 그 사이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한다. 로션을 바르며 거울을 보는데 헉 얼굴이 거뭇거뭇하다. 어제 야외에서 물놀이를 하면서 다 탔나 보다. 별로 더운 날도 아니었는데 이러기 있기 없기. 여튼 춥기도 춥고 수영하는 공간도 없고 다음에는 그냥 실내수영장으로 가야겠다.
10시 반. 제이가 내려온다.
얼굴이 따갑다고 한다. 선크림 바르라고 했는데 왜 말을 항상 듣지를 않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나도 안다.
"괜찮니? 진정크림 줄까?"류의 멘트가 훨씬 낫다는 것을. 나 또한 아이 선크림 발라주면서 약간 발랐던 정도라 딱히 할 말도 아니었지. 나는 그래도 타기는 탔어도 따갑지는 않다 적어도.라고 생각하지만 다 그 나물의 그 밥이다.
어른이 기본을 지키는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이가 지금은 어려서 몰라도 이래라저래라 말로만 하고 정작 부모 자신은 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 아이가 보고 듣고 흡수하고 있다.
아이는 부모의 표정과 말과 행동, 감정과 감성과 사랑 그리고 자존감을 같이 사는 어른들에게 배운다. 제대로 사는 법, 삶을 충만하게 즐기는 법을 배울 수도 있고 하루하루 생존해 나가는 삶, 힘들고 지친 일상에서 인간의 바닥을 보여주는 부모에게서 삶과 죽음의 혼돈함을 배울 수도 있다.
수건류를 널러갔다. 지면이 슬슬 달궈지고 있다. 오늘 한 삼십 도까지는 올라갈 모양이다. 커튼을 2차로 빨아야겠다. 거실에 흰색 투명 커튼 한 세트와 두꺼운 붉은 커튼 한 세트를 일단 내려야겠다. 소파 앞에 둔 낮은 테이블을 거실 창문으로 끌고 가서 그 위에 튼튼한 나무 의자 하나를 추가로 더 올려서 안전하게 커튼 살이 있는 천장 근처 높이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한다. 해가 갈수록 높은 데 올라가서 중심 잡는 게 좀 부담스럽긴 한데 그래도 한 번씩 계절 바뀔 때 바꿔줘야 기분 전환도 되고 커튼 뒤에 한번씩 들어가는 딸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일 년에 적어도 두어 번은 세탁해야지. 제이는 높은 데 올라가는 것도 좀 무서워하고.. 누가 하겠냐. 나중에 딸아이가 커도 못 시킬 것 같다. 위험해서.. 몇 살까지 내가 이렇게 이단으로 올라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티브이에서는 내일 la journée noire를 예고하고 있다. 개막식 때문에 내일 오후에는 정말 힘들 거라고 도로 상황이 완전 안 좋을 것이란다. 바캉스 내일 가면 Île de france 일드프랑스에서는 빠져나가지도 다시 들어오지고 못하고 정말 고생할 거라고 오늘이나 내일 오전 일찍 떠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나저나 어디로 바캉스를 가나.
제이는 바캉스 이번에는 꼭 가고 싶어 하면서도 특별히 찾아보지는 않는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금이 부족하다고 한다. 내가 백만 원 보탠다고 했잖아 하니 그래도 계좌에 먼저 들어있는 상태에서 예약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한다. 그럼 나는 일단 예약하면 내가 우체국 가서 현근 찾아서 우리 계좌에 넣으면 되지 10분이면 되지 나는 네가 프랑스 토종이니까 더 잘 알잖아 그러고 좀 맡겨두었고. 아.. 21세기에 카드로 돈 찾지 않고 인터넷 계좌이체도 안 되는 베이직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 아내도 좀 답답할 터이겠으나, 우체국 계좌는 응급상황에서 사용하기 위해 카드도 신청하지 않고 인터넷 계좌이체도 안 되는 월정액 0인 거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이번에 한국을 갔으면 또 남은 금액이 0이 되었을 정도로 많은 돈이 든 것도 아니지만 간간이 알바하는 것으로 모아서 그래도 샘이 마르지 않게는 유지하고 있다. 인생 화려하게 살아보려고 마음먹어본 적도 없지만 아주 조그마한 샘물이 쫄쫄쫄 흐르는 것이.. 참으로 겁나 소소한 삶이다.
그나저나 바캉스..
최고의 숙소 최고의 음식 최고의 액티비티..
이런 것으로 지르며 사는 인생도 있겠지만..
일단 현생에는 저것이 내 것은 아닌 듯하다.
이 금도끼가 네 도끼냐
아닙니다
그럼 이 은도끼가 네 도끼냐
아닙니다 제 도끼는 그냥 쇠도끼예요
그러면 이 것이 네 것이겠구나
아 너무 감사합니다 그것이 제 것입니다
참 착한 청년이구나 이 도끼 모두 너에게 주겠다
이 이야기도 내 이야기가 아닌 듯 하지만 만약 돈이 엄청 많다면, 돈에 구애받지 않는 삶을 산다면, 아니면 한 번도 사보지 않은 로또 같은 걸로 세금 떼고 30억 정도가 생긴다면.. 이번 여름방학에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하고 상상해 본다.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서 뭔가 머릿속에 리스트도 없다. 여름방학 할 일 리스트도 없는데 저런 리스트를 만들리 만무하지만..
일단 집을 에펠탑 동네로 이사해서 8시부터 점등하는 점등쇼를 한 시간에 한 번씩 보고 싶다 이사는 이삿짐센터를 한번 불러보고 싶다. 한국에서는 가능한 그 풀서비스가 여기서는 금값일 것은 당연지사
또 써머하우스를 하나 사고 싶다. 근데.. 30억으로 파리에서 집과 세컨하우스까지 살 수는 없을 것 같으니 이건 빼고, 그럼 앞으로 남은 4주는 영국문화원에서 하는 언어와 문화 수업을 등록해서 아이에게 질 좋은 교육을 좀 시키고 싶다.
그리고 오페라와 각종 문화 공연을 최고의 자리로 예약해서 그 예술적 감동을 아이가 누리도록 해주고 싶다.
물론 제이의 저 중독 증상과 결핍쑈는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다.
능력 있는 아내에 대처하는 자세. 지금과는 완전 다를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시부모들도 풍족한 삶을 사는 며느리에게 결혼 선물로 플라스틱 열쇠고리 하나 주는 그런 기막힌 퍼포먼스는 지양할 것이다. 없는 것들이 있는 것들을, 없는 것들이 없는 것들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 있는 것들이 없는 것들을, 있는 것들이 있는 것들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라니.. 나는 어차피 이 결혼 전에 돈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고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결혼 후엔 달라졌다. 나는 어느 한 쪽에 소속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삐딱하게 색안경을 한번씩 끼고 세상을 바라보는 못된 버릇까지 프롤레타리아의 그 불우한 습관까지 생겨버렸다. 할 줄 아는 건 징징거리는 것과 세상을 비판하는 것 그 외의 어떤 것이 그들에게 남아있냐,라고 매도할 순 없지만 한번도 리더가 되어보지 못하고 빙빙 그 주변만 멤돌며 가족의 삶의 질까지 떨어뜨리고 입에 날만 세우는 이중적 인간들. 파괴적 본능이 강하고 모순된 삶을 살며 가식적 관계를 맺는 이들. 발을 빼려하면 할수록 점점 그 수렁에 더 깊이 빠져드는 그 곳에 자식들을 넣는 부모도 있다니. 상상도 못해본 세상이다
이번주는 제이재택이라 둘이서 놀이터를 좀 가면 식사준비할 시간도 좀 생기고 식사도 늦어지지 않을 텐데 아이가 아주 노래의 후렴구처럼 반복한다.
-엄마 같이 안 가면 안 갈 거야
-그럼 가지 마
-갈 거야
-그럼 가
-엄마랑 같이 가
-나도 숨 좀 쉬자
-놀이터에서 숨 쉬면 되잖아
-...
-가방 준비할게
-뭔 또 가방이야
-그럼 그냥 갈게
-알았어 가자
우리가 가는 세 개의 수영장 중에서 남녀 샤워실이 분리되어 있는 수영장 앞에 놀이터가 있다. 오늘을 여기로 갔다. 중학생 남자아이하나가 차고 넘치는 에너지를 방출해 냈던 그네 밀어주기 활동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둥근 그물망 그네에 적게는 둘 많게는 여덟 명 정도를 태우고 그걸 밀어주는 데 아슬아슬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일단 아이를 내리지 않고 그냥 두었는데 아이들은 무서우면서도 신이 나서 환호성과 탄성을 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참 신기한 세상이 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공원 쪽 저 편에서는 아이인지 아기 하나가 자지러지게 울고 있다. 너무 심하다 싶어서 제이에게 그네를 좀 보고 있으라고 하고 그쪽으로 가보았다. 아기의 누나로 보이는 여자 아니 하나가 애를 달래려고 하지만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세 살 정도의 남자아이다. 오리진이 이쪽은 분명히 아닌 것 같다. 바로 곁에 한 아이엄마도 좀 그만하라고 하기에 그쪽으로 가서 이 아이 엄마냐고 물어보니 아니라고 한다. 이 아이들 부모는 어디 있냐고 하니 저쪽에 저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 상황을 방관하는 '부모'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들은 꽤 멀리 앉아 있다. 나무 그늘 밑에 있는 긴 의자를 찾아간 듯하다. 스타일이 나이가 꽤 들어 보여서 조부모인 것 같아하니 부모 맞다며 여기 자주 와서 안다고 한다. 우리가 대화하는 와중에도 남자아이는 자지러지게 울다가 소리를 지르다가 아주 정서가 엉망진창인데 부모들은 이야기하느라 바쁘고 시선도 아이들이 있는 이 쪽으로 두고 있지도 않다. 무슨 이런 거지 같은 시추에이션이 다 있나 싶었다. 첫 아이도 아직 어린데 저 여자 아이가 어린 남동생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내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아이에게, 너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엄마한테 가서 동생 좀 돌보라고 얘기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별 일 아니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했다. 그 아이는 이런 식으로 시선을 받는 것이 자기 남동생이 울며 불며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그냥 두었다. 옆에 아줌마에게 이 여자아이도 아직 초등학생인 것 같은데 너무 안쓰럽다고 하니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한두 번이 아니고 매번 저래서 안타까워죽겠다 한다.
오늘 절제의 삶이 또 한 번 무너져 내렸다.
오후 4시 아이간식시간에 맞춰 갑자기 아시아 마트에서 라면 산 게 생각이 났다. 그래서 두 개를 끓였다. 거기다가 피망 모양의 작은 빨간 고추도 하나 썰어 넣었다. 아이는 맵다면서 몇 젓가락 먹지 못하고 물 반 두 컵 마시고 남은 면은 내가 다 먹었다. 아이에게 이렇게 간식 시간에 라면을 준건은 처음이고 나 또한 이렇게 간식으로 라면을 끓여 먹은 것이 처음이었다.
왜 그랬을까.
약간 나사가 풀렸던 듯하다.
윗배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솔직히 상황이 이러하여 저녁은 먹고 싶지 않았으나 두 사람에게 식사를 준비해줘야 했다. 면을 삶으면서 청경채도 같이 넣어서 건져두고 고기를 볶고 굴소스와 간장 베이스로 중국식 면 볶음을 해주었다. 배가 부풀어 딱딱한 상황에서 이것도 그냥 먹어버렸다.
그 결과로 아이 취침시간이 되어도 나는 체한 건지 배가 아픈 건지 소화불량인지 모를 그런 불편한 증세에 시달렸다. 거실에서 줄넘기를 삼사십 번 뛰었다. 일이 층 계단 오르내리기도 열 세트 했다. 그래도 많이 불편한 상태는 여전했다.
문득 엄마가 어느 날 저녁을 먹으면서, 도시 사람들은 뭐를 잔뜩 먹고는 많이 움직이지도 않고는 소화를 시키려고 소화제를 먹는 것이 참 신기하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우리 엄마. 내가 반백이 되었을 때 팔순이 되겠구나. 잔치해줘야 하는데.. 풍수지탄이로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등마사지 해줄까 물어온다.
갑자기 십년 전 결혼 당시 제이에게 물어봤던 혹은 요청했던 유일한 문장이 하나 떠오른다.
-내가 프랑스에 살면서 샵에 못 가게 되는 경우가 오면 네가 마사지 좀 해 줄 수 있니
제이는 그렇다,고는 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영혼없는 대답이고 신혼 때 해라고 하면 뭔가 많이 부족했다. 좀 적극적으로 영상을 찾아본다거나 책을 찾아보는 것도 없고 나름대로 해도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줄 수 있는 그런 센스가 전혀 없는 그런 사람이 제이다. 이것은 확실하다.
근데 예상치 못한 이런 일도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구나. 우리 아이에 의해 내 소망이 실현되다니..
손도 야무지고 너무 시원하다. 딸내미가 톡톡톡톡 두드리고 주물러주는 팔과 어깨와 등허리가 사랑으로 가득차고 순식간에 체한 것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어릴 때 아빠에게 베풀었던 사랑, 그 지극정성을 내 아이에게 돌려받게 될 줄이야. 전혀 바란 적이 없었기에 더욱 감사하다. 내리사랑만 있는 게 아니고 연어식사랑도 있구나. 위로 위로 올라오는
음.. 우리 시선 그 외의 사각지대에 더 나쁜 일도 있을 수 있겠으나 생각지도 못한 더 좋은 일도 있겠구나 하며 아이에게 고맙다고 했다. 아이는 너무 뿌듯하고 자랑스러워했다.
우리 둘은 동시에 큰 행복감에 퐁당 빠졌다.
즐거운 기쁜 풀장으로 다이빙. 쓩~ 푱푱
어제 파리에 코리아하우스가 오픈했다고 한다.
주프랑스한국대사관이 있는 파리 7구이다. 앙발리드역에서 내리면 금방인데 오늘 개막식이 있는 날이라 다른 역에서 내려 두 번을 갈아타야 한다. 떡볶이도 있고 아이가 좋아하는 사진 찍는 기계도 있다고 한다.
중독과 결핍에 이어 공황장애까지 있는 제이에게 같이 갈 건지 물어본다 그냥 예의상.
코리아하우스 생겼다는데 너도 갈래?
사람 너무 많을 거야
사람 구경 가는 거지
둘이서 갔다 오던가
아니 또 둘이만 보내고 또 술 퍼마시려고?
아니 아이가 듣고 있는데 그렇게 말해!
안 마신단 얘긴 안 하네?
안 마셔! 안 마신다고!
진짜 그럴 수 있어?
사람 좀 믿어!
알았어 그래도 개막식인데 애가 그 분위기는 좀 느껴봐야지
사람도 엄청 많을 텐데 꼭 가야겠어?
벌써 출입카드도 신청했어
그냥 보드게임하면서 노는 건 어때?
무슨 보드게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알았어 그럼 역까지 데려다줄게
8시부터 비 온다니까 그전에 올게
알았어 도착 한 코스 전에 문자 보내
그럼 저녁은 닭 양념해 둔 거 있으니까 그거 오븐에 넣어서 구워. 예열 충분히 해야 하는 거 잊지 말고.
알았어
그래 그럼 일곱 시 반쯤 저녁 먹으면서 개막식 보면 되겠다
그래 역에 도착 전에 문자 보내 내리러 갈게
알았어 그럼 편히 쉬고 있어 맨날 자기 시자기 없다고 노랠 하더니 잘 됐네 술 안 마시는 거 확실하지
사람 좀 믿어!
19시 26분
한 코스 전에 제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 코스 전이야 주차장에서 보자
19시 40분
십여분 주차장에서 기다렸지만 감감무소식이다. 문자를 다시 보냈지만 응답이 없다. 전화를 했다. 받지 않는다.
아.. 데자뷔 같은 영상들이 눈앞으로 스쳐 지나가간다.
아이 손을 잡고 그냥 걸어서 갈까 싶었지만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운동화를 신지 않고 맨발에 샌들을 신고 있는 아이와 걸어가면 15분에서 20분 정도 걸린다. 저번에 이런 경우에 우리는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걸어서 집에 가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 그는 없었다. 문은 꽁꽁 잠겨 저 있다. 집에 제이가 있다고 그 무거운 열쇠꾸러미를 가지고 가지 않아서 한참을 그렇게 문 앞에서 아이와 기다렸던 적이 있다. 폰 상태도 안 좋아서 배터리는 벌써 방전되었었다. 그는 또 그 나름대로 나에게 전화해도 받지 않고 주차장에서 한참을 기다리다 열받아서 돌아왔다. 그렇게 역에 내려서 주차장에서 한 십여분 기다리고, 집까지 한 이십 분 걷고, 집 앞에서 또 한 이십여분, 토탈 한 시간 가까이 암 유발 상황이 벌어졌다. 비슷한 상황이 여러 번 있었고 한 번은 술이 떡이 되어서 기둥을 들이박아서 범퍼가 나가서 오십만 원 정도 공중으로 날아간 적이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음주운전은 살인행위나 다름없음을 인지하고 웬만하면 집으로 걸어온다.
그런데 오늘은 절대 술 취하지 않겠다고 하늘에 맹세라도 할 듯하지 않았는가. 오늘도 약속은 깨라고 있는 것일 뿐일까. 정말 너를 어쩌면 좋겠니. 술 귀신에라도 씐 것인지. 저녁만 되면 인간이 괴물로 변하는 마법을 부리는 약이라도 먹는 건지. 난 이제 정말 모르겠다. 저녁이면 이혼하고 아침이면 다시 새 하루를 시작하고 그러기를 십 년. 수동차라고 운전을 하지 않는 너나 술 마시고도 핸들을 잡는 구나. 먼저 변화를 시작한 이는 누구일까.
19시 50분
저기 그 인간이 오고 있는 게 보인다. 주차장에서 나와 차가 나오는 도로 쪽 거리로 올라가다가 개똥까지 밟아버렸다. 기분이 정말 꽝이다. 거기에 대고 한다는 말이, 보드게임이나 하지 뭐 하러 그 복잡한 곳에 갔느냐이다. 그다음 문장은 왜 운전은 하지 않느냐였다. 이 두 문장이 지금 이 상황에서 할 말이니. 너의 뇌 회로에는 정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이며 그런 네 곁에 붙어 있는 나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
20시. 드디어 모두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오븐은 예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다. 거기에서 닭이 생고기 그대로의 모습으로 붉은 자태를 뽐내고 있다. 티비로는 개막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마크롱이 싫다더니 그 개회사를 보느라 마누라와 딸내미를 그렇게 내팽개쳐놓고 있었던 거네. 그걸 보면서 술을 마셨고 화와 함께 마신 그것은 무엇이든 독주로 변한다.
나는 냉장고에서 흰밥 남은 것을 꺼내서 몇 분 만에 만들 수 있는 계란덮밥을 만들어서 아이에게 주었다. 그리고 나는 라면을 또 끓였다. 고추를 세 개나 넣었다. 그냥 이렇게 망가지려는 건지 요즘 내가 왜 이렇게 통제를 스스로 하지 않는지 너무 한심하다.
아이는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개막식이 자정까지 이어졌는데 저번 월드컵처럼 이번에도 '세상 사람들'의 즐거운 시간이 흐르는 시계와 우리의 시계는 반대방향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술을 들이켜고 뇌가 스스로 통제가 안 되는 저 입. 정치가 어쩌니 저쩌니 프랑스는 더 이상 프랑스가 아니다 프랑스 국기는 유럽연합 국기에 대체되었다 마크롱은 변태다 하지만 마리르펜보다는 낫다 러시아는 초대받지 못한 정치쇼다 저 입에서 나오는 중얼중얼 나오는 어떤 말도 다 거슬린다. 이런 나의 불행은 개막식의 런웨이의 화려한 워킹과 마리 앙투와네뜨의 머리를 가지고 조리돌림하는 이상한 퍼포먼스의 잔인함에서 견딜 수 없는 슬픔까지 머금게 된다. 난 소리를 질렀다.
-그 입 좀 다물어 제발! 그만 말하라고 그만!
-넌 날 사랑하지 않아 넌 이제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제발 그만! 아무 말도 듣기 싫어!
-악! 넌 나치야 여자 나치!
우리 딸은 나중에 커서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식을 어떻게 기억할까
출처: 네이버 블로그 우공 뇌과학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게 되면 성격이 변하는데 사람답지 않은 언행을 일삼는 성격, 즉 본능이 제어되지 않는 성격으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이유는 술의 알코올 성분이 전전두엽을 이루고 있는 신경세포들을 억제 시킴으로 해서 전전두엽의 기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뇌 안에서의 신경세포들이 복잡한 회로를 이루어 몸을 통제하는 시스템은 아직도 과학이 밝혀내야 할 많은 과제들이 남겨져 있으나 뇌가 마음과 몸을 제어하는 데에는 딱 두 가지의 방식이 있을 뿐이다. 억제와 흥분, 이 두 가지이다.
뇌는 흥분성 신경세포와 억제성 신경세포들의 집합체로 상상도 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신경회로를 형성하고 있다. 뇌 안에는 이들 신경세포들을 흥분시키거나 억제시키는 화학물질이 존재한다.
신경세포를 흥분시키는 화학물질은 글루타메이트이고 억제시키는 물질은 가바이다.
이들 두 개의 화학물질(신경전달물질)이 뇌 안에서 복잡 미묘하게 얽히고설킨 신경회로들에 작용하여 마음과 같은 생각을 만들어내고 몸을 목표에 따라 정교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제어하는 것이다.
그런데 술을 마시면 알코올 성분이 전전두엽을 이루는 신경세포의 가바수용체에 작용하여 전전두엽의 회로망을 억제시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커피에 함유되어 있는 카페인은 글루타메이트라는 신경전달물질의 수용체에 작용하여 신경세포들을 더욱 흥분시킨다.
결론적으로, 술은 전전두엽을 이루고 있는 억제 신경세포들의 수용체에 작용하여 전전두엽의 기능을 억제하는 것이며, 이에 따라 전전두엽이 본능적으로 작동하는 다른 뇌의 신경시스템을 제어하지 못해 사람다운 언행을 하지 못하고 짐승 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술을 마시면 사람들의 성격을 변하게 하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그릇되거나 이상한 언행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경우의 사람들은 그들의 전전두엽이 잘 발달하지 못해서이다. 전전두엽은 본능적인 뇌를 이루는 시상하부나 뇌간과는 달리 후천적으로 발달되는 뇌이다.
어렸을 때부터의 양육 과정이 올바르지 못했거나 학교에서의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건전하지 못한 나쁜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전전두엽의 발달에 나쁜 영향이 끼쳤기 때문에 건전한 마음과 생각을 형성할 수 없으며 목표 설정도 잘할 수 없는 것이다.
전전두엽이 잘 발달되어 있는 사람들은 성격이 온후하고 이지적이며 의지가 강하고 목표의식이 뚜렷하다.
전전두엽이 잘 발달하지 못한 사람들의 성향은 우유부단하고 아무런 생각 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함부로 하여 남에게 피해와 상처를 주며, 의지가 약해서 약속 따위를 지키지 못하는 등의 일관성이 있는 언행을 실천하지 못해 주위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는 한다.
이렇게 사람답지 못한 언행은 본능의 뇌인 시상하부와 같은 뇌로부터 유발된다.
본능의 뇌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의식적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본능적으로 유발되는 짐승 같은 행위를 다스릴 수 있도록 진화된 것이 전전두엽이다. 고도로 진화된 전전두엽으로 인해 사람이 이성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집을 짓고 자동차를 만들고 비행기를 하늘에 날게 하는 고차원의 생각이나 행동을 하기 때문에 지구라는 행성에서 인간은 아주 특별난 존재인 것이다.
술을 마시면 누구나 성격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술을 마시든 안 마시든 일관되게 언행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전두엽은 의식적으로 작동되기 때문에 술에 취했다 하더라도 의지가 굳은 사람들은 술에 의해 의식이 억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 된다는 말이다.
의지가 약한 사람들은 이런 것을 못하므로 이성을 잃고 짐승과 같은 추태를 일삼는 것이다.
의지가 강한 사람들은 술로 인해 본능의 뇌가 이성의 뇌를 장악하려고 해도 이를 극복할 수 있지만, 의지가 약한 사람들은 결국 이성의 뇌가 본능의 뇌에 지배당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본능으로부터 우러나는 마음을 지나치게 억제를 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을 흔히 가식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본능적인 마음이 만들어내는 본질적인 성격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람도 있고 반대로 거칠고 추잡스럽고 간사스러운 성격도 있다. 이런 걸 의식적으로 감추어 멋지고 근사한 사람으로 보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또한 이성의 뇌인 전전두엽이 꾸미는 일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성품을 파악하기가 어려울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의 본심을 알아보는 데 한 가지의 방법은 술을 마시게 하여 술에 취했을 때 나오는 언행을 보면 된다고 했다. 이래서 취중 본심 취중진담이라는 기가 막히는 말이 있는 것이다.
술 마시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술을 마시고 이성의 뇌인 전전두엽이 본능의 뇌에 지배당하는 것은 의지적으로 피해야 한다. 문제는 의지이다.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셨더라도 일관성 있게 언행을 지키려는 의지만 있으면, 즉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 술 마시고 이상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에게 '중독'과 '결핍'은 태중에서 이미 시작된 태초의 원형과 같다. 그냥 왠지 그렇게 태어나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죽을 것 같다. 이미 그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법이니 그가 말한 저 문장이 그대로 실현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제 이쯤 되면 그가 미친놈인지 내가 미친년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불나방에게 미쳤다고 손가락질하지는 않는다. 아마 그런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어떤 이는 행복한 삶의 길 위에서 마냥 행복해서 또 누군가는 힘겨운 시간을 버텨내느라 타인의 불행에 관심을 가질 여지가 없을 것이다. 혹 관심을 가진다고 해도 그것의 성격도 다양하고 그것이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다 자기 밥그릇 자기가 챙기면서 그렇게 잘 살아가는 '척'을 하는 훈련된 연습생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이는 이미 자신이 소멸되어 없어질 때 자기 곁에 누가 있어줄까에 대한 걱정이 생기는 것 같다.
내가 풍성하지 못한 그의 마음밭 위에서 쟁기질을 한 것도 어언 공식적으로 십 년, 비공식적으로 십오 년이다. 이제 이 놈의 쟁기질도 지긋지긋하다. 논 바닥에 이노무 연장 모조리 집어던져버리고 나면 속이 시원해질까. '그것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유사정언명제 정도는 된다.
결국 얽히고설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변화를 꿈꾼다는 희망적인 이 메세지가 한 사람만의 의지와 결단으로 수행되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잠시 반짝할 수도 있겠지만 지속가능한 형태가 되기 위해서는 그와 관계되어 있는 모든 선들이 빛을 뿜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희망적인 것은 이 모든 선들의 중심에 '나'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는 이 미션도 결국은 개인의 의지에 의해 실현 가능하다는 생각에 이른다. 과연 이 '의지'에 점화할 수 있는 것은 또 무엇이 될까?
오전에 아이 데리고 파리 핫플레이스 곳곳에 설치된 팬존 중의 하나를 골라 가려고 했다. 여러 군데 있지만 제이는 샤틀레 파리시청에 가보고 싶다고 한다. 어제 개막식을 하고 난 후라 사람들이 미친 듯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파리 3구에 일터가 있어서 매일 그 근처로 가다가 안 간 지 열흘이 지나니 뭔가 허전하니 물어보니 그런가 보다 한다. 첫 팬존 방문으로 에펠탑을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공황장애 있다는 저 인간의 마음을 좀 헤아려주기로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제 코리아 하우스에 오고 가면서 찍은 사진을 좀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십 분이면 될 줄 알았던 업로드가 삼십 분 이상 걸렸다.
나가서 먹으려고 했었는데 점심시간이 되어 버렸다.
제이는 감자튀김과 오믈렛을 준비해 놓고 계속 내려오라고 얘기했지만 사진 저장이 잘못되어 다시 올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꾸물거리고 있었더니 이 인간이 밥 먹으라고 소리를 지른다.
"빨리 내려와 점심준비했다고!"
하.. 나를 따라 하네... 용감해졌네 이 아저씨.
여하튼 어린것들이 꼭 나쁜 건 기가 막히게 잘 따라 하지.
근데 뭐야 벌써 한 캔 딴 거니.
아침에 그렇게 다짐을 해 놓고, 내가 잠시 이층에 와있는 사이에 또 약속을 산산이 부서진 이름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언제나처럼. 그냥 알아서 술의 잡신에게 무릎을 굽혀버린 건가.
그래도 아직 저녁시간이 아니라서 술의 기운과 피곤함이 쌍으로 이 남자를 덮치진 않은 듯 그렇게 상태가 나빠 보이진 않아 보인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있는데 비가 점점 더 많이 내린다.
야외 활동을 하는 팬존은 내일 가기로 하고 오늘 오후에는 수영장을 가자고 했더니, 제이는 뭐 허구한 날 거길 가냐고 그냥 자기는 그 옆 공원에 있는 동물들을 보면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아이는 수영장 너무 좋다면서 며칠 전 비키니를 두 개 사줬는데 그걸 입어보려고 최대한 빨리 가자고 한다. 바비 핫 핑크 비키니와 수경과 모자 수영장 수건 옷들을 가방에 넣어 가지고 나비처럼 이층에서 내려온다.
그사이 제이와 나는 대화 같지도 않은 대화를 하고 있다.
"혼자서 몇 시간 혼자 있으면서 또 취해서 뭘 어쩌겠다는 건데?"
"왜 사람을 믿어주질 않아?"
"약속을 못 지키니깐 그러지"
"넌 날 사랑하지 않는구나"
이것이 내가 저 말하면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히는 것을 알아서 인지 진짜 사랑에 너무너무 목이 말라서 그러는지 요즘 꽤 자주 사랑타령을 하고 있다. 또 갑자기 저 결핍인간이 안타까워서 알았다고 하고 만다.
행복의 바이러스로 넘실대는 풀장으로 풍덩.
그렇게 시간 가는지 모르고 놀고 또 논다. 입장 후 세 시간이 훌쩍 지난 18시까지 놀았다. 아이는 더 있고 싶어 했지만 폐관 시간이 18시 30분이다. 이제는 집에 가야 하는 시간이고 여기 직원들도 집에 가서 쉬어야 하고 저녁 시간도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수영장은 남녀 샤워실이 분리되어 있어서 따뜻한 물에 샤워도 제대로 좀 하고 나가고 싶다며 풀에서 나왔다. 아이도 나를 졸졸 따라 나왔다.
항상 내 뒤에 그림자처럼 붙어있는 이 꼬맹이도 조만간 알아서 한다며 엄마 엄마 찾지 않는 날이 곧 올 것을 아직은 상상하기 어렵다. 쪼그마한 궁둥이를 실룩거리며 걷는 폼도 귀엽고 각자 샤워부스에 들어가서 씻는데 벽 아래 틈으로 샴푸는 있는데 폼클렌저 없다고 달라고 미니미한 손을 들이미는 것도 웃기고 여하튼 지가 아주 청소년인 줄 안다. 그냥 흐르는 물로만 샤워해도 충분할 텐데 뭘 굳이 독한 거품으로 몸을 다 닦아내려고 하는지.
아.. 물도 따듯하고 오늘 최고기온이 21도였던 덕분에 이 시간까지 남아있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샤워장은 거의 텅 비어있고. 너무 편안하고 느긋한 하루로 장식되는구나. 오늘은 특별히 풀장의 가장 깊고 사람들이 한 명도 없던 3.80m 쪽에서 놀기도 했기에 운동량도 상당했다. 또 1.20m 쪽에서는 아이가 배영을 혼자 터득해서 나에게도 가르쳐주겠다며 양팔을 편안하게 옆으로 펴고 물 위에 스르르 눕듯이 힘을 쫙 빼고 요가에서 눕듯이 누워보라고 그리고 발을 살살 움직여보라고 그럼 자연스럽게 뜨면서 안정감이 느껴질 거라며 시범을 보인다. 그대로 따라 하면서 네가 너무 쉽게 잘 가르쳐줘서 이렇게 성공한 것 같다고 고맙다고 하니 엄청 행복해했다.
아이를 보면 정말 행복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확실히 느낀다.
아까 문자로 약속했던 시간에서 10분이 지나버렸다. 그래서인지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재다이얼을 눌러서 지금 나간다고 했다. 근데 뭔가 혓바닥이 상당히 꼬여있음이 전화선 상에서도 숨길 수가 없을 정도다.
나왔을 때 내 눈앞에 큰 장정 셋이 모여서 얘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둘은 여기 보안직원 옷을 입고 있었고 아주 건장했지만 제이는 근육도 없고 정신도 없어 보였다.
나는 두 사람과 제이를 동시에 바라보며 아 지금 이 상태로 누구랑 또 뭔 얘기를 하고 있냐고 했고, 두 남자는 바로 눈치를 채고 싱글실글 웃음 띤 얼굴로 남자들은 한 번씩 술도 취하고 좀 이렇게 풀어질 때가 있다가 제이를 변호해 준다. 무료를 좋아하는 제이는 이 무료변호에 자기도 덩달아 싱글벙글이다.
두 남자는 한국어를 10년이면 좀 하겠네 이렇게 물었고 어벙한 표정을 짓고 있던 제이를 보고 상황 파악을 하고는 말을 바꾼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이런 기초회화는 할 수 있지 않냐고 예스라는 대답을 할 기회를 준다. 이 발언기회를 내가 이어받아 적어도 한국어 욕은 찰떡같이 알아듣고 내 욕했냐고 묻을 정도의 어휘는 장착했다고 했고 박장대소한다.
제이에게 눈치를 주며 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그들과 헤어진 후 주차를 해 둔 곳으로 가기 위해 우산을 받쳐 들고 가면서, 아까 약속 또 깨 먹었냐며 어디서 무엇을 얼마나 사 마셨기에 점심때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냐고 잔소리를 했다.
당나귀를 보면서 놀았다고 자기의 눈을 바라보는 눈빛이 따뜻해서 참 좋았단다.
사랑받는 느낌이었단다. 여하튼 참 한마디 한마디가 안습이다.
정말 이런 음주 운전은 웃어넘길 상황이 아니다.
아이는 부모가 이러다 보니 자기가 알아서 자신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차에 타자마자 안전벨트를 하도 당겨보고 이중 체크를 한다.
또한 중독은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또한 거기에 결핍이라는 요소들이 군데군데에서 번개탄 역할을 하면 상황이 아주 위험할 수도 있겠다 싶다.
저녁 시간에 함께 올림픽 경기를 보았다.
남자 수영선수 입장이 꽤 파격적이다.
원래 이렇게 재미있었던가. 과거에는 올림픽 경기를 관심 있게 지켜보지 않아서 이 재미를 몰랐던 것인지, 전에는 재미가 별로 없어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흥미롭다. 나오는 것이 무슨 파리 패션위크 런웨이를 방불케 하는가. 또 와중에 중국남자애가 갑자기 혼자 무슨 붉은 망토 같은 걸 입고 나오기에 쇼맨쉽 장난 아니라서 제이랑 거의 동시에 웃었는데 얘가 금메달 따버리네.
프랑스와 홍콩 선수의 펜싱 경기도 거의 드라마 수준이었다.
여자 4명 릴레이 수영에서 호주가 금메달을 획득했다.
20년 전 호주에서 오전 7시 30분에 바다에 수영하러 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땅덩어리 중심은 황무지나 진배없지만 그 너머로 바다가 있다는 사실. 삶은 이 아름다운 나라에서도 각양각색이지만 여유로운 계층이었던 내가 함께했던 그 집에서는 휴가도 빈야드에 있는 별장으로 가고 식사도 그 근처의 상업적인 식당이 아니라 시골 어느 집밥 같은 그런 곳에 미리 며칠인지 지금 기억이 나질 않지만 삼일정도는 매일 점심에 갔었던 것도 뜬금없이 생각났다. 드미페어로 3개월이 지나고 마지막날 저녁에 공동거실로 나왔더니 혼자 티비를 보던 바네사. 집이 워낙 커서 내 거실과 욕실 화장실 침실 공부방 옷방 등을 누리고 있었다. 지금생각하면 서른여섯의 젊은 여자가 밤마다 그렇게 있었다는 것. 남편은 회계법인의 공동소유주라 저녁에 아이들이 7시 30분에 자러 가고 나면 그 이후부터 서재에서 남은 일을 처리하였던 것. 뭐 여하튼 바네사는 이른 아침에는 바다수영을 하고 아이들이 유치원과 학교를 가고 나면 근처 공원 잔디에서 긴 팔다리를 요리저리 쭉쭉 늘려가며 요가를 즐겼다. 나도 책을 가지고 따라가서 드러누워서 독서를 했다. 참.. 인생이 바뀔 수도 있었던 나의 이십 대... 지금 와서 후회하진 않지만 아쉽긴 하다. 참 천진무구하기만 했던 나의 이십 대.
여자 발리볼도 너무 보고 싶었는데 슬리만 mon amour 뮤비 보느라 놓쳤다.
그러다가 제이가 입장티켓이 개인당 2700유로라고 하면서 혀를 차는 것을 보면서 아예 개막식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 생각났다. 이제야 올림픽 티켓 정식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그 2700유로 드립은 과장이 많이 섞여있는 헛소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50유로 짜리도 있었다는 것을 보고 혈압이 확 올라간다. 이 sk 내가 저혈압인 거 기억하고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닐 테고..
나도 문제였다. 진짜 직관하고 싶었으면 직접 알아봐야지, 근력 단단한 놈도 아니고 비실비실한 인간을 바라보고 무슨.. 하늘에서 떡이라도 떨어지기를 바라고 있었던 건가. 가스라이팅은 아무나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내가 이런 개떡 같은 상황에서 허우적거리고 있게 될 줄이야. 물론 나도 적극적으로 찾아보지 않았던 것은 2700유로 때문이 아니라 20시부터 비도 예보되어 있고, 문제는 여기서는 기본 두세 시간은 줄을 서야 하는데 그 긴 기다림도 아이가 있다 보니 좀 그랬고 자정에 마치고 대중교통으로 집에 가면 한시 잡고 이러고저러고 하다 보면 두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최초 야외 개막식이고 센 강이 뭐 십여 미터도 아니고 앉아서 볼 수 있는 쇼도 한정적일 것 같아서라는 여러 가지 이유가 혼합된 것이다.
그래서 여러 경기들의 상황은 어떤지 보니 가격은 자리에 따라 경기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50유로 정도면 충분히 관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예를 들어 수영 같은 경우만 봐도 티브이로 보면 훨씬 더 잘 보이고 설명과 그래픽까지 있어서 편하고 실용적이지만 현장의 분위기라는 것을 아이가 느끼면 또 좋을 것 같아서. 이것은 아직 물색해보지 않은 그 바캉스라는 것과 일정을 맞춰보고 한 경기는 꼭 경기장에서 보는 것으로 해야겠다.
어제 수영이 숙면에 300% 도움이 되었다. 1시 반에 자서 7시 반에 있어 났다. 개운하다
어제는 낮 최고 기온 21도고 비도 오고해서 빨래를 못했는데 눈 뜨자마자 겨울 커튼을 빨아야겠다 생각하며 벌떡 일어났다. 벌써 해가 중천에 뜬 느낌이다. 어제 수영장에서 사용한 수건을 밖에다 널어놓고 세탁기 색깔옷 세제를 넣고 더럽지은 않으니 와이셔츠 프로그램을 선택했더니 1시간 30분 완료다. 너무 길지 않아서 딱 좋다. 물온도도 그냥 30도로 설정했다 속도는 1400으로 최대로 했다. 아무래도 커튼이 조금 두꺼워서 돌리는 건 좀 쌩쌩 돌려야 할 것 같다.
예열해 둔 오븐에 크와쌍을 넣고 잘 익은 멜론을 손질해서 반은 냉장고에 반은 식탁에 첫 번째 검은 접시에 두 번째 검은 접시에는 천도복숭아가 너무 물컹해지기 전에 3개를 손질해 놓는다. 아까 수건 널러가서 딸기 딴 거 두 개도 씻어 놓는다. 개미가 다 파먹어서 한발 늦으면 구멍만 숭숭 남아 있는 뼈다귀 같은 것만 남아있다. 일개미들.. 어찌나 열심히 사는지.. 혀를 내두르겠다 진짜
오븐 윗부분은 고장이 나서 작은 부분으로 굽는데 금방 타버려서 또 중간에 한번 뒤집어주고 십 분지 나서는 끄고 잠열로 익힌다. 이런 자잘한 일들까지 기억해야 하니 아침부터 작은 뇌가 풀가동이다. 세탁기가 지하에 있어서 됐는지 안 됐는지 마침 노랫소리가 안 들려서 알람도 설정해둬야 한다. 몇 분이 그새 지났는지 몰라 그냥 1시간 20분으로 맞춰주고 홍차를 우려 둔 것에 생우유를 붓는다. 뽀얗게 색깔이 변하는 이 순간이 참 좋다. 그나저나 내가 최애 하던 내 까만 도자기 머그컵은 손잡이가 떨어져 버렸다. 옛날 같음 접시에 이가 나가거나 이렇게 손잡이가 떨어지면 바로 버리는데 제이가 본드로 손잡이를 붙여놓거나 부엌구석에 둔 이난 접기를 계속 수납장에 다시 넣어놓아서 이제는 그냥 안 버린다. 제이가 그런 작은 일에도 너무 속상해한다. 이거는 뭐 마흔 갓 넘은 것이 벌써 남자갱년기가 온 건가
그나저나 어제저녁에 비치발리볼 못 봐서 아쉬웠는데 에펠탑 앞에 설치된 머래밭에서 이탈리아와 스페인 여자 선수 경기가 한창이다. 에스파냐 빨간 수영복 입어서 이탈리아 이길 것 같은데 하며 나도 모르게 스페인을 응원하고 있다. 중계에서 저 선수는 범죄학을 전공하고 그쪽에서 일한다고 하는 것 같은데 본업도 저 운동선수역할처럼 잘하고 있을 것 같다.
완전 만족이다. 온몸에 적당한 근육과 빵빵하고 탱탱한 엉덩이는 하나의 처짐도 없이 탄탄한 큼직한 체격의 여자 넷이서 마음껏 에너지를 팡팡 품어내는 것이 오늘 일요일 아침 빛나는 날의 첫걸음을 딛는데 비타민처럼 탁 쏜다. 완벽한 시작!
이 모든 것이 경험의 부족이다. 내가 내 성향을 미리 알았더라면…. 적어도 가깝게는 이 비치발리볼 티켓을 예약했겠지. 그 이전에 가정법은 재쳐두더라도
아이가 일어났다. 나보다 늦게 일어난 걸 보니 어제 수영이 꽤 운동되었었나 보다. 역시 아이들은 운동으로 굴려야 된 걸로.. 그래도 수영은 남자운동이라고 안 해서 다행이네
10시다.
아직 제이는 자고 있다. 오늘은 낮기온이 꽤 올라가고 이 느낌 그대로 쭉 상승곡선 타다가 모레는 34도인가 35도 찍는다던데. 오늘은 오전에 나가서 점심은 밖에서 그냥 때워야겠는데… 안 일어나면 그냥 애 하고만 갈까 싶은데.. 또 혼자 남아서 슬퍼하면서 술에 째릴까 싶기도 하고.. 하여튼 손 많이 가는 인간이 아닐 수 없네
일단 커튼 널어놓고 어찌할지 결정해야겠다
그나저나 바캉스를 그렇게 가고 싶어 하면서 그리고 약속한 휴가비도 공동계좌에 넣었는데 왜 아직 찾아보질 않고 저렇게 비실대고 있는지 모르겠다.
일단 10시 반까지 기다리고 안 일어나면 둘이서만 가는 갈로. 또 자기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냐고 또 쓰잘 떼기 없는 소리를 하겠지만 일단 우리도 살고 봐야지. 또 네 곁에서 멍 때리고 있다가 점심시간되고 또 치우고 어쩌고 하다 보면 세시. 그렇게 나가서 좀 돌아다니다가 외식이라고 맥도 가거나 아니면 집에 늦게 와서 힘들어죽겠는데 저녁 준비하고 또 아이가 밤 열 시가 되어서야 자러 가는 루틴, 난 좀 이제 안 하려고. 안녕. 잘 자.
10시 반. 그래도 다시 이창으로 가서 잠자는 숲 속의 사십 대 결핍남을 깨워본데.
우리 놀러 간다. 점심 나가서 먹을 거니까 일어나든가 말든가.
내려간다고 해놓고 감감무소식이다. 그래도 저렇게 한 번씩 병신짓거리를 해도 외국인 마누라가 도망 안 가은 거보면 나름 재수는 있는 놈 이것 같기도 하고. 촌에 베트남마누라들도 케바케겠지만 도망가는 여자들 욕할 거하나 없지. 물론 사기 치려고 작정하고 달려든 케이스 빼고.
11시. 다시 이층으로 올라간다.
이제 안 기다린다 마지막 호출이다. 혼자 찌지든 볶든 알아서 점심 챙겨 먹어라. 우리는 간다. 더 이상 같이 똥구덩이에서 같이 뒹굴지 않겠다. 너의 물귀신 작전에서 드디어 십 년 만에 벗어나는 법을 깨닫는 중이구나. 그냥 발의 방향만 살짝 바꾸고 그 발을 들어 빼내면 되었던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