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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고양이 Jan 25. 2021

[Mode_Kunst] 인간 실격자의 자화상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겨과 에곤 실레의 자화상 

 어떤 글은 유익하다. 어떤 글은 슬프기도, 읽고 나면 산뜻하게 기분 좋기도 하다. 그리고 어떤 글은 나를 부끄럽게 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유명한 고백으로 시작하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이 소설은 태어날 때 부터 "다른 인간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다. 보통의 인간 세계에 동화되고자 부단히 노력하지만 끝내 좌절하여 스스로를 '인간 실격자'로 규정하고야 마는. 서글픈 패배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다자이 오사무는 다섯 번의 자살 기도 끝에 생을 마감한다. 그의 자전적 고백이 담긴 이 작품에는 순수함을 갈망하던 젊은이가 인간들의 위선과 잔인함에 파멸되는 과정이 솔직하게 담겨있다. 우리는 살갗이 벗겨진 어린 아이처럼 작은 상처에도 크게 동요하는 주인공 요조의 모습에서, 그리고 동시에 타산과 체면으로 무장한 ‘인간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얼굴을 마주한다. 


작중 주인공 요조는 친구와 함께 한 장의 원색판 삽화를 보고 ‘도깨비 그림’ 같다고 말한다. (고흐의 자화상이다.) 정갈하고 반듯한 모습과는 거리가 먼, 뒤틀리고 불완전한 얼굴. 요조는 그 속에서 인간을 너무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무시무시한 요괴를 자기 눈으로 확실히 보기를 바라는 심리를, 신경이 날카롭고 쉽게 겁먹는 사람일수록 폭풍우가 더 강하게 몰아치기를 바라는 심리를 본다. 그러고는 덧붙인다. ‘아아, 이 일군의 화가들은 인간이라는 도깨비에 상처 입고 위협받다 끝내는 환영을 믿게 되었고 대낮의 자연 속에서 생생하게 요괴를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익살 따위로 얼버무리지 않고 본 그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음산한 도깨비 같은 얼굴. 명랑하게 남들을 웃기고 익살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지만 한 겹의 얇은 포장지가 바스락거릴 때마다 소스라치게 불안에 떨던 요조는 차라리 이런 자화상을 그리고 싶다. 그리고 그런 요조가 남긴 세 개의 수기는 가장 솔직한 자화상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1909년 아오모리 현 가타쓰기루의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집안의 부가 고리대금업으로 획득한 것임을 알게 되고 집안 내력에 대한 혐오감과 죄의식에 평생 괴로워했다. 자신의 유복함을 수치스러워 한 어린시절의 이야기로부터 , 그가 얼마나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좌익 운동에 가담하였고, 1935년 문예에 발표한 소설로 제 1회 아쿠타가와상 차석을 차지했다. 이후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몇 번의 자살 시도와 약물중독으로 방황의 시기를 보냈고, 일본의 패전과 함께 허무주의가 짙어지며 자기혐오에 빠졌다.  


‘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가 다섯 번의 자살 기도 끝에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이며, 자신의 삶을 물감으로 그린 듯 꼭 겹치는 부분들이 있다. 그의 작품 속 등장인물이 보여주는 인간적 연약함은 패전 후 혼란기의 많은 젊은이들과 연결되었고, 지금은 현대 사회에 대한 예리한 고발 문학이자 청춘의 한 시기에 통과 의례처럼 거쳐야 하는 문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민음사에서 출판된 ‘인간실격’의 표지에는 에곤 실레의 자화상이 담겨있다. 책을 읽다 한껏 물러진 감수성을, 책을 덮을 때 마다 마주치는 자화상의 비뚤어진 눈빛이 깊숙이도 파고들었다. 다자이 오사무와 에곤 실레, 그들이 그려낸 자화상은 마음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고 지나간다. 분명 우리의 정갈한 이목구비와는 다른 낯선 얼굴인데 왜 그런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의연한 척 꼭꼭 숨기고 살아가더라도 결국 인간이기에 걷어낼 수 없었던 나약함, 불안, 절망과 고통에 이들 예술가가 인생을 바쳐 천착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에곤 실레의 자화상


에곤 실레, 이중 자화상, 1915

에곤 실레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표현주의 화가다. 우리에게는 ‘욕망을 그린 그림’이라는 영화로도 익숙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아버지가 매독 환자였는데, 누나는 선천성 매독으로 사망하고 아버지는 에곤 실레가 고등학생일 무렵 사망한다. 당시 아버지의 죽음에 무덤덤한 어머니의 반응은 사춘기 에곤 실레에게 큰 충격으로 남는다. 그때부터 마음의 문을 닫고 어머니로부터 멀어진 것인지, 에곤 실레의 작품 중에는 어머니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시리즈가 있다.  


1907년 클림트와의 만남은 에곤 실레의 작가 인생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된다. 클림트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조력자 역할을 한다. 에곤 실레의 초기 작품에는 클림트의 화풍에서 영향을 받은 흔적이 많이 묻어있는데, 비슷한 시기에 유럽의 다양한 곳에 전시를 하고 돌아다니면서 고흐, 고갱, 자코메티, 뭉크의 작품세계에도 영향을 받는다. 


수줍음이 많고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 죽음의 이미지가 짙게 깔린 어린 시절, 성에 대한 충격적인 이미지는 그의 작품 전반에 우울하고 퇴폐적인 분위기를 드리운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다며 고백하는 다자이 오사무와 같이, 에곤 실레는 누드 자화상으로 내면을 고백한다. 그는 ‘누드’를 인간을 담아내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로 사용했다. 그에게 누드는 내면의 실체를 담아내는 가장 깨끗한 그릇이자 순수한 창구였다. 


에곤 실레는 자신을 바라보는 일에 몰두하였다. 오래도록 거울을 들여다보며 끊임없이 내면의 탐구에 집중했다. 그는 자신의 마른 체구를 스웨터 따위의 포장지로 가리지 않았다. 대신 마른 장작 같은 피부를 누드로 그려냈다.  그런 그의 자화상은 추하고,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서늘하게 뒤틀린 몸과 붉어진 피부, 그럼에도 시선을 피하지 않는 눈빛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가장 개인적인 트라우마와 욕망이 얽혀 탄생한 얼굴은 역설적으로 인간 보편의 추하고 더러운 부분을 예리하게 건들이며 광막하게 연결된다. 


에곤 실레, 누드 자화상, 1910

“그의 자화상 중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도 있다. 그가 지나치게 자신의 해체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서글퍼 보였다.”


 -프리드리히 스턴-


 

인간 실격자의 자화상


이들의 예술 앞에서 우리는 부끄럽다. 몇 겹의 옷가지 안쪽에 숨겨둔 날 것의 감정들이 모두 발각되었으므로. 그러나 부끄럽게 얼굴이 달아오르다가도 이내 뜨거운 위로가 스미는 걸 느낄 수 있다. 결국 마주함으로써 품을 수 있는 온갖 마주하기 싫은 나의 한 부분. 나약함, 불신감, 질투,  추악한 욕망, 그리고 그 아래 조용히 흐르는 ‘이해받고 싶은 마음’.


‘어른’이란 이름에 걸맞게, 성숙한 모습에 맞게, 외로움을 감추고 따듯한 스웨터로 여린 나를 감싼다.  그때 옷가지를 벗고 모습을 드러낸 인간 실격자의 예술은 물처럼 축축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가장 깊은 곳까지 천천히 스민다. 내가 되고자 하는 이상향을 쫓다 마음 한 구석이 시큰하게 시려온다면, 가장 마주하기 싫은 내 안을 한번 들여다보는 게 어떨까. 가장 피하고 싶었던 그 만남은 의외로, 가장 따듯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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