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전시 리뷰
온 세상을 삼킬 듯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이 사내는 누구일까. 무엇이 우스워 웃고 있는 걸까. 진정 행복하고 기뻐서 웃는 것인가.
그에 대한 답. 그는 유에민쥔, 중국의 '냉소적 사실주의자'로 대표되는 현대미술가. '냉소적'에서 바로 유추할 수 있듯, 그 웃음은 진짜가 아니다.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찢어질 듯 크게 벌린 입과 그 얼굴이 담고 있는 무언가, 그리고 그 너머의 현실까지 폭넓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지금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전이다. 그의 웃는 자화상으로 유명한 대표작부터 최신작까지 모두 모였다.
국내외를 통틀어 최대 규모로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이며, 회화 작품뿐 아니라 대규모의 조형작품과 최신작에서 등장하는 꽃 형상의 얼굴 작품들, 한국의 도예가 최지만과 콜라보한 백자작품과 판화가와 콜라보레이션한 작품까지 감상할 수 있다.
냉소적 사실주의
그의 웃음은 '냉소', 즉 자기 연민과 비웃음이다. 그렇기에 심하게 웃다 붉어진 얼굴에서도 묘하게 낯설고 쌀쌀한 기운이 풍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 같은 얼굴, 같은 차림, 같은 표정이다. 개성이 사라지고 획일화된 인간 군상은 한 시대를 고스란히 담은 결과다. 유에민쥔이 대표하는 차이나 아방가르드는 중국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충돌과 공존을 체험한 작가가 현세대를 향해 날리는 자조적 웃음이다.
“내 작품 속 인물은 모두 바보 같다. 그들은 모두 웃고 있지만, 그 웃음 속에는 강요된 부자유와 허무가 숨어있다. 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표현한다. 이들은 나 자신의 초상이자 친구의 모습이며 동시에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 유에민쥔
중국의 공산당 체제는 미술의 역할과 기능까지 규정하였다. 1966년 시작된 문화 대혁명 시기 동안은 마오쩌뚱의 우상화를 위한 도구로써 미술의 기능하도록 강요되었고, 부르주아 미술은 금지되었다.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미술은 지도자의 우상화, 신격화, 정치를 위한 도구로써 사용되었고 그렇게 발전해왔다.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명화들만 해도 그렇다.
이때의 중국은 마오쩌둥을 위인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정해진 규칙대로, 붉은빛을 띠는 얼굴에서 빛이 나는데 크기는 또 엄청 크게 그리도록 지시되었다. 일하는 인민은 당연히 그 일을 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소명인 듯 기쁨에 찬 미소를 지녀야 했고 말이다.
강제된 일관성과 획일화, 똑같이 웃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유에민쥔은 차라리 더 크게 웃어 젖히기로 한다. 그렇게 캔버스에 담아낸 웃는 얼굴은 한 시대를 입 안 가득 담고 있다.
죽음을 기억하고, 삶을 사랑하라!
강요된 웃음으로 가득 찬 시대를 통과한 유에민쥔에게 죽음에 대한 감각은 자연스럽게 짙어졌을 것이다. 삶과 죽음은 본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떨어질 수 없는 것이며, 삶은 죽음을 전재로 존재한다는 사실. 유에민쥔은 그러므로 죽음을 기억하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외친다. 자신이 통과해온, 그 세대가 통과해온 세상 전부를 크게 냉소하고 비리게 보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사랑하라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에선 단단한 결의가 느껴진다.
시대의 고통과 불안에서 벗어나 이 순간을 만끽하라. 그것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저당 잡히지 말라는 뜻이다. 사회의 규칙이나 도덕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자유의지로 살아갈 것, 어려움에 적극적인 자세로 삶을 대할 것. 죽음을 기억하고 있다면 사회적 자아를 내려놓고 자기 자신으로 순간을 만끽하는 일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한 번 크게 웃으니 온 세상이 봄이다!
유에민쥔은 자신의 작품세계가 노장사상과 깊이 연결된다고 말한다.
"하늘과 땅은 나와 같이 생기고 만물은 나와 함께 하나가 되었다."
그는 괴로운 시대를 통과해 오며 크게 냉소를 남기는 방식으로 삶을 껴안았다. 그런 그가 도달한 세상에 대한 결론은 꿈도 현실도 죽음도 삶도 경계가 없다는 노장사상이다. 삶과 죽음이 함께 순환하고 슬픔은 웃음으로 변할 수 있다.
"만약 내 그림 속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면 그건 감상자가 행복하기 때문이 아닐까? 고독하거나 허무하게 보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중 어느 것도 오독이라고 규정짓고 싶지 않다."
그의 그림을 보며 올라오는 감정을 통해 나의 상태를 진단해본다. 그리고 이 사회에 대해서도. 웃을 수 없는 일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가득하다. 크게 한번 냉소를 보내더라도, 그가 사를 찬미하라고 전한 메시지를 잊지 말자. 냉소로 세상을 등질 것이 아니라, 이 순간을 사랑하고 껴안을 것. 눈감고 돌아서지 말고 삶의 주체로써 움직이고 그럼으로써 결국엔 빛나도록 웃어 보일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