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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고양이 Jul 27. 2020

우리의 아티스트 잭 스타우버를 아시나요?

맬론을 더 이상 들어가지 않은지 오래다. 검색창에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쳐본지도 오래다. 요즘은 그냥,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대로 음악을 듣는다. 알고리즘이 시키는 대로 취향이 조각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지만 취향을 저격하는 새로운 아티스트를 만나게 되면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도 든다. 똑똑한 알고리즘은 내가 좋아할 만한 영상을 알아서 피드에 띄워주니 플레이리스트의 주도권을 내주어도 괜찮을 것 같다. 요즘 꽂혀있는 '잭 스타우버'도 알고리즘 덕분에, 그렇게 알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애니메이터 '람다람'이 자신의 영상에 스타우버의 'Two Time'을 삽입한 게 계기가 되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람다람의 이 영상은 1년 만에 조회수 1000만을 기록하며 전 세계적으로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갔다. 또 다른 대표곡 'Buttercup'은 틱톡에 사용되면서 밈처럼 번졌고 나는 귀여운 퍼렛이 음악에 맞춰 춤추는 틱톡 영상을 통해 스타우버의 노래를 처음 듣게 되었다. 그 영상에 좋아요를 눌렀는지, 이후 내  피드에 잭 스타우버의 노래들이 떴다. 


잭 스타우버(Jack Stauber)는 1996년생, 올해로 25살인 미국의 팝 가수다. 유튜브에 음악과 영상을 올리고 있으며 구독자가 빠르게 증가해 2020년 7월 기준 130만 명을 넘었다. 나도 그 130만 중에 1명이다. 지금까지 올린 영상은 총 177개. 작성 중인 7월 27일 기준으로 오늘도 새로운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미국의 팝 가수라 소개했지만 뮤지션으로 한정하기에는 그의 영상들이 꽤나 고퀄리티라, 애니메이터로 칭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의 팬들은 그를 아티스트, 넘어서 천재 아티스트라고 여긴다. 



스타우버의 음악이나 영상(뮤직비디오) 등의 작업을 한 단어로 함축한다면 '기괴함'이다. 그의 영상 밑에 댓글창에서도 기괴하다는 단어가 가장 많이 보인다. 시각적으로 불편함을 주는 잔인하거나 무서운 이미지들이 부유하기에, 장르에 내성이 없다면 꽤나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클레이 애니메이션, 2D/3D 애니메이션, 스톱모션, 그가 직접 등장하는 실사 영상, 여러 기법을 혼합한 영상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중간중간 VHS 화면 특유의 지지직 거리는 효과를 넣어 레트로한 느낌도 난다. 


스타우버의 노래는 대체로 맬로디 라인이 생소하고 가사도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일부러 흥얼거리듯이 불러 가사를 따로 보지 않고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듣기도 힘들다. 그가 제작한 영상들도 모호한 건 마찬가지다. 여백을 많이 남겨두는 그의 작업들은 꽤나 시적이고, 때문에 보는 사람들의 해석하고자 하는 욕구를 자극한다. 어린 시절이나 아이와 부모의 관계, 죽음의 이미지가 짙게 깔린 음울한 영상들은 누군가의 트라우마를 건드리기도 하며 저마다의 의견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잭 스타우버는 한국에서도 꽤나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한 것 같다. 국내에서 이름을 알리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유튜브 번역 채널인 '희귀종 비둘기'엔 50개가 넘는 스타우버의 한글 번역 영상이 올라와 있고 조회수도 1만~3만 정도로 적지 않다. 다른 번역 영상과 눈에 띄는 차이점이 있다면, 댓글들이 범상치 않다는 점이다. 


글로써 자신의 의견, 감상, 비평을 적어 내놓는 건 어딘가 거부감이 생기는 일이다. 하지만 유튜브의 댓글창은 다르다. 누구나 부담 없이 감상을 남기고, 생각을 적어 내려 간다. 덕분에 영상을 재생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댓글을 스크롤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같은 영상이라도 댓글이 없으면 허전한 느낌이다. 댓글의 타임라인을 클릭하면 영상의 한 부분을 특정해 다시 볼 수 있는데, 나는 가끔 사람들이 달아놓은 타임라인만 클릭해 전체 영상의 하이라이트만 보기도 한다. 여백이 많고 모호함이 특징인 스타우버의 영상을 보다 보면 자꾸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지고, 그래서 댓글창이 더욱 중요하다. 


스타우버의 영상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추리력을 뽐내며 그의 작업이 어떤 메시지를 가진 것인지 해석해 내놓는다. 비평가 못지않은 수준의 해석들 덕에 스타우버의 작업은 단지 짧은 기괴한 영상에서 '삶과 죽음의 순환과 우주의 원리를 담은 이 시대 대단한 철학적 예술작품'으로 탈바꿈한다. 사실상 별 의미가 없는, 스타우버가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낸 결과물일 수도 있는 영상 하나를 가지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이건 이런 의미다, 아니다 저건 저런 의미다 하며 댓글창을 채운다. 그렇게 사람들이 공유하고 형성한 해석으로 스타우버의 작업은 완성된다. 


이 사람들은 촘촘히 타임라인을 표시해가며 디테일하게  장면 하나하나의 의미를 파악하는 등 수준 높은 비평을 선보이며, 개인적 경험에 빗대어 작품을 뛰어넘는 감상평을 남기기도 한다. 다양한 해석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고 사람들은 잭 스타우버 이거, 천재 아니야? 이 많은 사유를 이렇게 짧은 영상에 담다니! 하며 그를 천재 아티스트라 칭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의 작업에 풍부한 담론을 담고 그를 천재 아티스트로 만든 건 댓글을 단 사람들이다.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써 내려간 의견들을 그의 작업을 다른 차원의 것으로 옮겨놓았다. 


예술에 있어 평론과 담론이 중요한 이유는 다들 알 것이다. 예술 자체가 가진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걸 향유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유튜브를 통해 작업을 선보이는 잭 스타우버는 그 특유의 기괴한 감성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겼고, 사람들은 댓글을 통해 반응했다. 나는 그의 음악과 영상이 가진 특유의 매력, 그 자체가 담고 있는 내용을 높게 산다. 하지만 영상 하단 댓글창에서 놀랍도록 기발한 해석을 보는 맛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그에게 빠져있진 않았을 것 같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대로 콘텐츠를 소비하다 보니, 주체성을 잃은 건가 싶어 잠시 헛헛했으나 잭 스타우버와 댓글의 관계성을 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유튜브에서 아티스트를 아티스트로 만드는 건 사용자 들의 몫이다. 작품을 소비하는 방식에 있어 우리는 더 이상 수용자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좋아요를 많이 받은 코멘트는 한 영상의 정체성을 정의한다. 창작자 못지않은 기발한 아이디어나 재치 있는 맨트는 죽었던 영상을 살리기도 하니까 말이다. 잭 스타우버를 친구들에게 소개하면서, 나는 꼭 '희귀종 비둘기'의 한국 번역 영상의 링크를 보내준다. 사람들이 남겨둔 댓글을 보는 맛이 잭 스타우버의 진가를 완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잭 스타우버를 '우리의 아티스트'라고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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