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대자동차는 더 뉴 아이오닉 5를 출시하면서 B 필러와 앞뒤 도어의 강성을 높였다고 발표했습니다. 현대차뿐만 아니라 많은 자동차 제조사가 새로운 모델을 출시할 때 ‘차체 강성을 몇 퍼센트 높였다’ 또는 ‘이전보다 비틀림 강성이 좋아졌다’고 발표합니다. 자동차의 강성이 높아진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강성이 좋아지면 자동차에 어떠한 이점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차체 강성에 대해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차체 구조에 대해서 아는 게 좋습니다. 아주 쉽게 설명하자면, 자동차는 골격을 이루는 섀시와 실내를 구성하는 보디로 이루어집니다. 섀시 위에 보디를 얹어서 자동차의 기본 구조가 완성되는 거죠.
섀시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요. 승용차에는 모든 뼈대를 두꺼운 강철로 만드는 보디 온 프레임(body on frame) 방식과 각 차체 구조에 따라 섀시를 짜맞춰서 조립하는 모노코크 방식이 있습니다. 보디 온 프레임 방식은 강철을 통으로 사용하는 방식이어서 견고하지만, 차체가 많이 무거워지기 때문에 지금은 잘 쓰이지 않습니다.
반면 모노코크 방식은 구조적으로 보디 온 프레임에 비해 강성이 다소 약하지만, 차체를 가볍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 소재 기술이 발전하면서 모노코크도 강철 프레임에 버금갈 정도로 강성이 높아졌습니다. 때문에 지금 출시되는 대부분의 자동차는 모노코크 섀시를 사용합니다. 더 뉴 아이오닉 5도 전기차 전용 플랫폼 위에 모노코크 방식의 섀시와 보디를 올리는 방식입니다.
자동차에서 섀시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지탱력입니다. 자동차에는 수많은 부품이 들어가죠. 엔진, 변속기, 바퀴, 서스펜션 등 사람이 혼자 들기 힘든 부품과 부속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런 부품들 지탱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섀시입니다. 전기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엔진과 변속기가 없지만, 그만큼 무거운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지탱해야 하죠. 다만 내연기관 자동차와는 구조가 약간 달라 전기차 전용 섀시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더 뉴 아이오닉 5처럼 말이죠.
섀시는 자동차의 여러 부품을 비롯한 사람이 거주하는 보디까지 지탱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아주 단단해야 하죠. 자동차 제조사들이 해가 갈수록 차체 강성을 높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강성이 낮은 차는 어떨까요? 쉽게 예를 들자면, 건물을 지을 때 철근을 많이 쓰면 건물이 단단하고 오래 가겠죠. 반면 철근 사용량을 줄이면 그 반대가 됩니다. 소위 말하는 ‘순살 아파트’가 되는 거죠.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뼈대, 즉 섀시가 단단해야 안정성이 높아지고, 섀시가 단단하지 못하면 주행 안정성이 떨어집니다.
특히 자동차는 건물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물체입니다. 바퀴가 노면을 구르면서 지속적으로 충격을 만들고, 빠르게 달릴수록 더 많은 공기 저항을 받습니다. 또 가속과 감속, 좌회전, 우회전하면서 차체는 수많은 중력 변화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중력은 곧 저항이죠.
결과적으로 강성이 낮은 섀시는 주행 중 차체 흔들림이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곧 주행 안정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죠. 또 내연기관 자동차들은 엔진과 변속기가 차체에 완벽하게 고정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엔 성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더 큰 진동과 소음을 유발합니다. 승차감도 떨어지고 자동차 수명도 짧을 수밖에 없죠. 즉 차체가 단단해야 모든 요소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차체 강성이 높으면 어떤 이득이 있을까요? 우선 운전의 편의성과 조작성이 좋아집니다. 섀시, 즉 차체 하부가 단단하면 바퀴와 서스펜션의 결속력이 좋아지겠죠. 이는 바로 직진 안정성과 연결됩니다. 직진 안정성이 높은 차는 고속도로에서 높은 속도로 달려도 차체 흔들림이 적고 조작감도 안정적이죠. 특히 속도가 높을 때는 차체 밑으로 지나는 바람이 차체 바닥과 충돌하면서 차체를 흔들게 되는데요. 이때도 강성이 높은 차가 바람 저항에 훨씬 잘 버팁니다. 결과적으로 안정성뿐만 아니라 승차감도 높일 수 있는 거죠.
회전할 때도 섀시는 큰 역할을 합니다. 자동차가 회전할 때는 차체 앞쪽과 뒤쪽이 뒤틀리는 현상이 생깁니다. 휠베이스가 길수록 더 뒤틀림이 크죠. 이렇게 되면 바퀴의 노면 그립력이 떨어지고, 언더스티어나 오버스티어 등의 불안정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떄문에 섀시는 이런 비틀림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야 하는데요. 이것을 비틀림 강성이라고 부릅니다.
현대차의 승용 라인에서 휠베이스가 가장 긴 디 올 뉴 그랜저는 현대차그룹의 3세대 섀시를 사용합니다. 강성뿐만 아니라 구조적 안전성도 높인 것이 특징이죠. 휠베이스가 길면 직진 안정성이 높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회전 시 더 큰 비틀림 압력을 받습니다. 3세대 섀시는 이런 비틀림 강성을 월등히 높인 것이 특징입니다. 3세대 섀시는 동급 타사 차량 대비 평균 55kg 가볍고, 강성은 이전 세대보다 10% 이상 높습니다. 그랜저 외에도 현재 싼타페와 쏘나타 등이 3세대 섀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섀시의 역할은 지탱과 결속 그리고 저항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바로 안전입니다. 섀시는 차체 충돌 시에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합니다. 차체 앞부분, 즉 엔진룸은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크럼플 존(Crumple Zone)이 있습니다. 차체가 구겨지면서 충격을 흡수하는, 일종의 완충지대라고 할 수 있죠. 이때 섀시도 같이 구겨져야 충격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크럼플존 섀시는 강철 사용량을 줄이고 연성이 있는 알루미늄 등의 금속 사용량을 늘립니다.
하지만 사이드 충격이나 차체가 뒤집어졌을 때는 차체가 구겨지거나 찌그러지면 절대 안 됩니다. 차체가 무너지면 탑승자에게 더 큰 상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동차 제조사는 캐빈(운전자와 승객이 타는 공간)을 구성하는 섀시에는 울트라 하이 스틸 등의 고강도 재료를 사용합니다. 최근 출시한 더 뉴 아이오닉 5가 B 필러 강성을 높인 것도 사이드 충돌 및 전복 안전성을 높인 것입니다.
충격을 분산하는 것도 섀시의 역할입니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다중골격구조로 섀시를 설계합니다. 하나의 섀시가 충돌을 흡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이드 멤버나 서브 프레임 등에서 충격을 나눠서 흡수하는 방식이죠. 이는 안전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차체 강성도 높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아이오닉 5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사용합니다. 전기차 섀시의 역할과 중요성은 일반적인 내연기관 섀시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기차 전용 섀시는 다른 역할도 있습니다. 바로 배터리 보호입니다.
배터리는 전기차에서 가장 보호해야 할 부품입니다. 동력원이기도 하고 가장 비싸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현대차그룹 E-GMP는 충돌 시 배터리 손상을 막기 위한 특별한 설계를 더했습니다. 앞에서 충돌이 생기면 그 충돌 에너지를 분산해 사이드 멤버 등으로 흘려보내고, 사이드 충격엔 배터리에 직접적인 충격이 생기지 않도록 섀시가 버티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전기차 전용 플랫폼은 만들기도 어렵고 비싸기도 합니다.
자동차의 성능이나 승차감 그리고 안전성을 결정짓는 요소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서스펜션과 각종 부시, 어퍼 암 및 로어 암은 승차감에 영향을 줍니다. 엔진과 변속기는 성능을, 에어백은 안전성을 높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부품과 부속은 거의 모두 섀시로 연결됩니다. 섀시가 강건해야 온전한 성능이 나오고 승차감을 높일 수 있으며 안전한 차가 됩니다.
앞으로 출시되는 차들에 "섀시 강성을 높였다", "차체 강성이 좋아졌다"는 표현이 있다면 이는 곧 성능과 안전성이 높아졌다는 뜻으로 이해하셔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