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유를 목표로 정하고 나서, 가장 먼저 손댄 것은 지출이었습니다.
앞서간 많은 부자들은 말합니다. 경제적 자유의 출발점은 시드머니 1억 원이라고요. 그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1억 원을 모으려면 상당 기간 지출을 줄이고, 예금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 사회초년생 같은 경우에는 돈을 모으기보다 쓰는 데 더 익숙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혼내는(?) 유튜브 영상도 적지 않습니다.
그 영상을 보며 묘한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나는 그래도 비용을 꽤 아끼고 있구나. 아직 더 줄일 수 있는 지출도 보였고, 실제로 생활비는 더 내려갔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법 근검절약하며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평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장기적인 투자보다 당장의 즐거움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도 돈을 함부로 쓰는 사람을 꾸짖는 영상은 계속 올라옵니다.
거기서 묘한 만족을 느꼈습니다. 나는 아끼고 있으니 앞서가고 있고,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이다. 더 아낄 수 있는 건 없을까. 어느 순간부터 그런 질문을 자주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불편함이 생겼습니다. 아끼는 데 집중할수록 삶에는 제약이 늘어났습니다. 외식 한 끼를 앞에 두고도 가격이 먼저 떠올랐고,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옷 하나를 살 때도 습관처럼 숫자를 계산했습니다. 필요보다 영수증의 합계를 줄이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사기 위해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고, 비교하다가 시간을 씁니다. 막상 사고 나면 이상하게 더 지쳤습니다. 아낀 돈보다 더 많은 시간을 써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때 처음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분명 자유를 목표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돈에 매여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경제적 자유를 꿈꾸며 살고 있는데, 정작 일상에서는 자유를 잃어버린 느낌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방어’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아끼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이후에는 아무것도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지출은 줄었지만 수익은 그대로였고, 자산은 정체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조금 바꾸기로 했습니다. 지출을 줄이는 일은 습관의 영역에 맡겨두고, 거기서 얻는 만족감은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대신 같은 에너지를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에 쓰기로 했습니다.
물론 절약 습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지출 통제가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절약의 루틴을 달성한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목표가 아니라 기본값이 됩니다.
처음 세웠던 목표가 경제적 자유였다면, 그다음 질문은 분명해야 합니다. 얼마나 더 아낄지가 아니라, 무엇을 키울 것인가.
절약은 나를 지켜주었지만,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지는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