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 속에 비극이 있고 비극 속에 희극이 있다.
영덕 대게타운.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대부분 들떠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평소에는 접하지 못할 대게를 맛볼 기대감에 한층 마음이 부풀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식감이 풍부한 대게를 섭취하면서 에네지를 보충한다. 무엇인가를 먹는다는 것은 살려는 것이다. 생존이다. 살게 해 준다. 상점들 그리고 장사하시는 분들도 넘쳐났다. 손님을 받으려 혈안이다. 상권이 크게 형성이 되어 있는 곳임에는 틀림이 없다. 경제적 순환이 돌고 도는 곳처럼 보인다. 그야말로 희극. 희극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불쌍한 대게들의 입장은 누가 대변해 준단 말인가. 대게들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비극 아닌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동족들이 처참히 먹이로 전락해 버리는 순간이다. 그것도 큰 촌을 형성해 가면서 말이다. 사람에게는 고마운 일이지만 대게들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즉, 사람에겐 희극이겠지만 대게에게는 비극이다. 희극 속에 비극이고 비극 속에 희극이다.
지금은 희극이지만 나중엔 비극이다. 희극 속 비극, 비극 속 희극.
희극과 비극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 듯하다. 동전의 양면이 항상 붙어 있는 것처럼.
태어남은 죽음이고 죽음은 또 태어남인 것처럼. 태어나면 반드시 육체적으로 죽어야 하고 또 죽으면 반드시 태어나야 하는가.
희극일 때는 비극이 올 것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또한 비극일 때는 희극이 올 것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태어날 때 죽음을 고려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죽을 때 태어남을 고려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희극이라고 좋아할 것도 비극이라고 처참해질 것도 없는 듯하다.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가다보면. 언젠가는.